오늘날 장로교회들의 교회정치제도는 장로주의 원리를 잘 수립하고 정리한 마틴 부서(Martin Bucer, 1491-1551)와 장 칼뱅(John Calvin, 1509-1564)에 의해 그 기반이 세워졌지만, 실질적인 교회정치의 원리와 실천은 존 낙스(John Knox, 1513(?)-1572)가 중심이 되어 이끌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의해서였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고 실력 있는 교회의 지도자(신학자)들을 통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는 장로교회원리를 수립하도록 하시면서 그 구체적이고 모범적인 실천을 스코틀랜드에서 보여 주셨으니,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폐기되어 버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스코틀랜드에서 채택한 것에는 그와 같은 실천적 의지를 이미 갖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독특성에 기인성이 기인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장로교회들의 신학적 기틀을 확고히 세운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영국의 장기의회를 배경으로 5년 6개월(1643-1649)에 이르는 장로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긴 기간에 걸쳐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도출했지만, 당장의 시급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결코 침묵하고 미뤄 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총회는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에 앞서서 예배모범과 교회정치에 관한 것을 먼저 다뤘으니, 1644년에 “예배모범”을, 1645년에는 “교회정치”를 도출시켰던 것이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완성된 1647년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로교회 문서를 의결하여 인준하는데, 그것은 바로 “가정예배모범(The Directory for Family Worship)”이다. 즉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장로교회 교리의 표준으로 채택한 것보다 3일 앞서 가정예배모범을 인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뿐 아니라, 전반적인 장로교회의 기틀을 세우는데 가장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한편, 오늘날 소위 개혁주의 신앙을 논하는 자리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교회의 개혁은 그 분위기가 온전히 무르익기까지 기다릴 줄 아는 긴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예배모범, 그리고 교회정치와 가정예배모범의 채택과 인준에 있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는 그처럼 무르익는 분위기를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무르익게 할 당장의 현안들에 대해서도 결연한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부서나 칼뱅과 같은 개혁신학자들에 의해 신학적 기반과 배경이 충분히 제공되었기도 하지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는 그것을 적극 활용하여 분위기를 주도하는 데에도 박차를 가하는 의지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는 가운데서 우리들은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예배에 관한 것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던 사실이다. 신학적이고도 교리적인 표준을 위해서 긴 수고와 노력을 들임과 동시에, 가장 시급하게 생각한 것은 예배에 관한 표준, 즉 “모범(Directory)”이었다.
시급한 현안인 예배에 있어서 공적인 모범과 가정에서의 사적인 모범이 수립될 때에,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실질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과 배경을 이미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공적예배의 모범이 먼저 도출되어 채택되었던 것에 반해, 현대의 장로교회들이 그처럼 공적예배를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 따라 통일하는 일은 참으로 지난(持難)하게 보이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심지어 교단들에 따라서는 침수례를 여전히 고집하는 교회들의 문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여, 결국 침수례와 관련한 세례론이 장로교회에서 버젓이 가르쳐지는 일들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개혁된 신앙의 표준을 따르기를 원하는 장로교회의 신앙인들이라고 한다면 먼저 가정에서부터 얼마든지 예배모범을 따라 실천해 볼 수 있는데, 1647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채택한 가정예배모범은 가장 좋은 실천의 자료를 제공한다 하겠다. 그러므로 차제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정예배모범”의 내용들을 몇 차례에 걸쳐 공유해 본다.
“개인 및 사적 예배와 성도 간 상호 교화에 관한 경건과 일치를 목적으로, 1647년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 의해 인준된 가정예배 지침서. (1647년 8월 24일 스코틀랜드 교회 에딘버러 총회 제10회기)
개인 및 사적 예배와 성도 간 상호 교화를 위해, 그리고 가정예배를 소홀히 하는 일들을 책망코자 총회는 아래와 같이 지침을 마련하여 준수하도록 결의하는 바이다.”
이 당시에 “책망”한다는 것은 지교회가 공적으로 책망하는 것으로서, 공적인 치리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예배나 가정에서의 사적인 예배에 대해서 권장할 뿐 아니라,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공적으로도 치리하는 성격(물론 그러한 치리는 장로들에 의해 되도록 조용히 권면되는 형태다)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로 이 땅에 순결하게 세워진 교회의 공적 예배 외에도 각 개인은 개인 예배를, 또한 각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필수적인 것으로 큰 유익이 되는 일이다. 아울러 국가적인 개혁과 함께 개인 및 가정까지 다 함께 경건의 능력과 실천에 있어 진보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언급에 대해 우리들은 단순히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가 이뤄지기 전의 역사적 배경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건이 어떻게 국가적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원리로서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건과 실천이 없이 국가적 개혁(이는 사회·제도적 개혁이 아니라 통합적인 종교개혁의 맥락이다)이 이뤄질 수 없으며, 국가적 개혁을 지양(止揚)하는 개인적 경건도 긍정될 수 없는 장로교회 신앙의 실천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개인적인 예배는 필수적인 것으로, 모든 자들은 기도와 묵상으로 자기 자신을 드려야 마땅하다.
그처럼 개인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오는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며, 그것은 오직 이를 성실히 실행하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유익이다.
그 시간에 각 개인은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모든 의무들에 대해서도 바르게 준비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모든 사람들이 아침, 혹은 저녁으로, 또는 하루 중 다른 시간에라도 이를 반드시 실행하도록 권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각 가정의 가장들은 자신 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개인적인 예배를 성실히 실행하는지 세심하게 살펴 볼 책임을 지닌다.”
이처럼 예배모범에서 언급하는 신자의 생활에는 항상 예배가 중심을 이룬다. 즉 개인적으로 또한 각 가정마다, 그리고 공적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방식으로 개인의 신앙과 교회적인 신앙, 심지어 국가적인 신앙의 일치까지도 도모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바탕으로 이러한 예배모범을 살펴보면, 가히 황당한 수준이라 할 것이다. 각 가정에서의 예배는 고사하고 공적인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기도 버거운 현실의 엄연한 모습은, 가히 우리들도 출애굽하기 전 무거운 고역(苦役)에 시달리는 ‘노예(slave)’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탈출하려 한다면, 목적은 분명 우리 육신의 자유가 아니라 예배의 자유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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