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겪는 가족 갈등과 해소 방법
박창원 목사
(포항장로교회 담임)
# 갈등, 모두의 문제
죄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듯, 갈등 역시 사람의 모든 관계 속에 있다. 죄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자신을 망치듯, 갈등 역시 가까이 있는 사람과 자신을 상하게 한다. 이러한 일은 태초의 동산에서부터 시작했다. 죄는 갈등을 야기했고, 갈등은 가족 관계를 깨트렸으며, 사람은 고통을 짊어졌다. 그렇게 태초로 시작된 고통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많은 갈등 속에 신음하며 산다. 조직에서는 갑을관계로, 개인 간에는 여러 이해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불통이 커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슬픔은 가정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갈등이 봉합되고 상처가 치유 되어야할 가정에서 오히려 갈등이 시작된다. 존경과 사랑으로 아름답게 맺어져야 할 부모 자식의 관계가 오해와 질타로 얼룩진 관계가 되어 간다.
# 갈등에서 희망을 찾다.
그래도 너무 인상 쓰진 말자. 그나마 갈등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갈등조차 없음이다. 수년 전 식당에서 이상한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청년 자녀를 둔 4인 가족이 식사를 하면서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는 거다. 각자 자기 먹을 것만 먹으며, 자기 할 일(휴대폰 들여다보기)만 하다가 식당을 나섰다. 나는 이 광경이 낯설었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그때 알았다. 갈등이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갈등이 있다는 것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고, 관계가 있다는 것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관계 회복을 위해 서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 갈등의 요인
청년 세대와 부모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는 대부분 진로와 취업과 결혼에 관한 것이다. 부모는 빠른 결과를 원한다. 또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을 기대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예전에 비해 세분화된 사회 속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민한다. 또 길을 찾아도 턱없이 높은 진입 장벽 때문에 낙담한다. 그들은 결과를 내기 위해 수고하지만 결과가 없는 현실에 지쳐간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자신의 필요도 채우기 어려운 현실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러기에 부모가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록 현실이 어렵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각오와 열심을 보여주면 좋겠다. 예전 본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자녀들은 나약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필요만 채워주길 바란다. 이러니 자녀들이 곱게 보일 리 없고,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이렇게 살아온 시대, 경험한 역사가 다른 세대는 갈등의 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은 세대차이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죄에 있다. 죄는 자신의 관점으로 남을 판단하게 만들어, 상대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촉발시킨다. 갈등은 남이 아닌 내 속의 죄로부터 시작 한다. 가인이 아벨을 향한 분노로 낯빛이 변했을 때, 하나님은 마음속에 있는 죄를 먼저 다스리라 하셨다. 자기 안의 죄를 다스려야지만 갈등과 분노를 이길 수 있음을 가인에게 가르쳐 주신 셈이다. 애석하게도 그는 이 교훈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교훈을 받아야 한다.
# 갈등 극복, 은혜의 방편 활용하기
갈등의 원인이 죄에 있다는 것은 그 해결 방법이 은혜에 있음을 보여준다. 은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해소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은혜의 방편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말씀과 성례, 기도라는 세 가지 방편을 주셨다.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가르쳐 주고, 성례는 구속 사역을 보여주며, 기도는 구속의 섭리를 누리게 한다. 그런데 세 가지는 은혜의 방편인 동시에 교제의 방편도 된다. 사람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또 사람 간에도 풍성한 교제를 나눈다. 가족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은혜의 방편을 잘 사용하면 관계의 어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1. 말씀, 함께 들음
은혜의 방편으로서 말씀은 예배의 자리에서 출발한다. 성도는 예배의 자리에서 선포되는 말씀 안에서 상호 교제를 나눈다. 믿음의 가정 역시 마찬가지다. 예배를 통해 한 말씀의 교제를 나눌 때, 건강한 가족 관계가 시작된다. 매일은 어렵겠지만 일주일에 2-3회라도 함께 예배 한다면, 영적 유익을 누릴 뿐 아니라 서로 얼굴을 대면하는 교제의 기회도 생기며, 평소 하지 못했던 대화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성도는 예배하도록 지음 받았기에, 예배하는 가정을 세우고, 식구들과 함께 예배할 때, 평안의 복과 관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청년 세대가 부모와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럴 경우 공예배 때라도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날 저녁 들은 말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부모와 떨어져서 생활하는 경우에도, 주일 저녁에는 각자 들은 말씀을 통화나 카톡 등의 방법을 통해 나누며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며, 주중에도 예배와 말씀의 유익을 서로 나눠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여도 예배와 말씀이 교제의 중심이 된다.
2. 성례, 함께 먹음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바는 성찬이 아니라 교제의 방편으로서 함께 먹는 식사를 가리킨다)
성례는 보다 직접적인 교제의 방편이다. 성도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한 식구가 된다. 먹음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오래되고 또 효과적인 교제의 방편이다. 식구는 한 식탁에 둘러 앉아 밥 먹는 관계를 가리킨다. 언약의 가정은 함께 먹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먹는 것으로 교제의 기쁨을 나눈다. 함께 먹는 식탁을 가벼이 여기면서 관계의 회복과 증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가족 식사 시간을 정해서, 함께 먹으며 서로 이야기 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첫 성찬을 시행하시며 열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고, 거기서 서로 갈등하며 반목하던 제자들을 하나 되게 하셨다. 먹음은 교제를 위한 가장 좋은 도구며, 함께 먹는 식탁의 기쁨은 갈등의 긴장을 깨트린다. 가족 간에, 세대 간에 갈등은 일상처럼 늘 존재한다. 그와 같이 먹음도 일상이며, 그만큼 화해의 기회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화해의 식탁을 차리자.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때 갈등은 담장 너머로 도망칠 것이다.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3. 기도, 함께 부름
기도는 교제가 계속 이어지게 하는 방편이다. 기도로 나눠진 마음이 합해지며, 서로의 형편을 돕고, 떠나 있어도 서로를 계속 생각한다. 기도는 교제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며, 끊어진 관계를 봉합하는 실이다.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기도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하지만 청년들이 부모님과 함께 앉아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또 평소에 안하던 것을 하려면 영 어색하기도 하다. 그래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지 말고 처음에는 기도제목을 나누는 수준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얼굴을 대면해서 말하는 것이 어색하면 sns를 이용해도 되고, 가족 카톡방을 만들어 기도방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 그러면 면전에서 말하기 어렵거나 쑥스러운 이야기도 쉽게 내어 놓을 수 있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고민과 상황을 부모님과 나눌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기도의 마음도 서서히 예열 되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은 쟁반에 금 사과를 새겨라.
갈등의 원인이 마음의 죄에 있다면 갈등의 도화선은 입술의 말에 있다. 지혜롭지 못한 언어로 인해 원치 않는 갈등 관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오해를 쌓고, 감정을 자극하는 말은 안 하는 것만 못하지만 우리는 말에 실수가 많은 자들이라 늘 하고 나서 후회를 한다. 그러니 말실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을 줄이는 거다. 두 번 말할 걸 한번만 말하자. 듣기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싫은데, 아쉬운 소리를 자꾸 해서 좋을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단순히 말만 줄여서는 안 된다. 상황을 잘 살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한다. 성경은 경우에 합당한 말이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라고 한다(잠25:11). 상황에 맞는 말이 듣기에도 좋으며, 문제도 바르게 해결한다. 지혜로운 자는 한 마디를 해도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데, 이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온다. 그래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성경을 읽는 이의 눈에 있다. 성도는 성경으로 자기 현실을 살피고, 성경의 언어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입에서 자기감정이 아닌 말씀의 원리와 교훈이 나온다면, 그 말은 갈등의 촉매제가 아니라 완화제가 될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향해 부드러운 말로 격려하고 교훈하며, 자녀는 부모를 향해 공손한 말로 존경과 순종을 표하는 가정마다 은 쟁반에 금 사과가 아로새겨질 것이다.
# 교회와 함께 가라
청년들과 부모들이 겪는 갈등은 가족만의 문제도 아니고, 또 가족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성도의 모든 문제는 교회와 직결되어 있으며, 교회는 성도의 삶을 살펴 바르게 지도하고, 도울 책임이 있다. 교단 헌법에서는 장로의 직무가 교인을 심방, 위로, 교훈하고 권면하며, 성도들이 설교대로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살피며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라 말한다. 장로에게는 젊은 세대를 신앙으로 돌아보며, 그들을 바른 언약의 자녀로 길러야할 책임이 있다. 이에 직분자는 세대 간, 가족 간의 갈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성경적 원리에 따라 해결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교회는 확장된 가정이기에 성도의 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고스란히 발생한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교회는 가정의 요청에 민감히 반응해야 한다. 이때 개별 심방을 통해 가족들 간의 고충을 돌아보고, 문제를 해결해야하기도 하지만, 교회 차원에서 갈등 해소를 위한 장을 만들 필요도 있다. 집에서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도, 또래들과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며, 부모 역시 함께 모여 청년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 평화의 울타리를 세우라.
시128편은 성도의 가정이 누리는 아름다운 복을 노래한다. 식탁에는 풍성한 식물이 있고, 잘 익은 포도나무 같은 아내와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들이 거기 둘러 앉아 함께 먹고 마시며, 연합하고 동거하는 기쁨이 있다. 참으로 이런 가정을 만나보고 싶다. 말씀이 현실이 되는 그런 가정 말이다. 하지만 현실 가정은 긴장과 갈등에 둘러싸여 있으며, 늘 불화의 고통을 마주하는 지극히 연약한 가정이다. 언약의 복을 풍성히 누려야할 가정들이 다툼과 상처로 아파하며, 사랑의 울타리는 허물어져만 간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니 그러하기에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며,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되었던 우리를 자기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다. 교회와 가정은 그리스도의 언약 안에서 맺어진 평화의 집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집을 세우기 위해 피 흘리셨으며, 지금도 계속 우리를 위해 수고하고 계신다. 그러니 그의 은혜로 언약의 가정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이 가정을 평화의 집으로 세워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주께서 은혜의 방편을 주셨으니 우리는 이를 잘 사용하여, 주의 몸 된 평화의 가정을 세우는 일에 수고해야 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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