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열왕기하 7장 9절)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은 야곱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며,
창세기 32장 28절 말씀과도 같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자인데,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태중에 잉태할 때에
창세기 25장 22절의 말씀처럼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하나님께 묻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창세기 25장 23절에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 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창세기 25장 26절에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 입니다.
야곱은 어머니인 리브가의 태 속에서부터 자신이 형보다 먼저 나오려고,
자신보다 먼저 나가려는 형의 발꿈치를 잡은 자입니다.
이러한 야곱은 호시탐탐(虎視眈眈) 형 에서의 장자권을 탐하였고,
사냥하고 돌아온 형 에서의 배고픔을 통해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형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와 배가 고픈 나머지 동생인 야곱에게
창세기 25장 30절의 말씀처럼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고 하자
야곱은 창세기 25장 31절의 말씀처럼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에서는 창세기 25장 32절의 말씀처럼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기회를 놓칠세라 창세기 25장 33절의 말씀처럼 "오늘 내게 맹세하라" 고 하자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야곱은 형 에서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리브가는
창세기 27장 42절의 말씀처럼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한다고 하며,
창세기 27장 43절로 44절의 말씀처럼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를 떠나게 되었고,
형 에서를 피하여 창세기 28장 5절의 말씀처럼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 곳에서 얻은 네명의 아내들과 12명의 아들들과 많은 재물을 가지고
다시 아버지 이삭이 있는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에 동생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형 에서는
창세기 33장 1절의 말씀처럼 사백인을 거느리고 야곱에게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큰 난관에 봉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갈수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앞으로도 나아갈수도 없고, 뒤로도 물러날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저 형 에서의 선처를 구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얻은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효력을 주지 못하는
무용지물(無用之物)에 불과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홀로 남게 된 야곱에게 어떤 사람이 나타나셨고,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고 자신에게 복을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야곱은 전심전력(全心全力)을 다하여 그에게 매달렸습니다. 아니 그와 씨름하였습니다.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아니하였습니다. 날이 새도록 그와 끈질기게 씨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창세기 32장 25절의 말씀처럼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게 되었고,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창세기 32장 32절의 말씀과도 같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창세기 32장 26절에 야곱에게 말하기를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말하기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야곱에게 창세기 32장 27절의 말씀처럼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물어보자
"야곱이니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창세기 32장 28절에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야곱과 씨름한 어떤 사람은 바로 제 2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 시대에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시지만,
구약에도 간혹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三位一體)로써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신 보혜사가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일위일성(一位一性)이시고, 성자 하나님은 일위이성(一位二性)이시며,
성령 하나님은 일위일성(一位一性)이십니다.
이는 삼위 중에서 각각 일위( 一位)로써 계시고,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신성(神性)으로써만 계시기에 일성(一性)이시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으로 계시기에 이성(二性)이십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 중에서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시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도 같이 이스라엘은 야곱의 12아들인 12지파로써 이루어진 나라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열왕기상 11장 33절로 34절의 말씀과도 같이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여
다윗과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기에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로 나뉘어지게 되었는데,
북쪽은 10지파로, 남쪽은 한 지파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남쪽의 한 지파는 바로 유다지파인데, 베냐민 지파도 유다 지파 속에 포함되어 분리되었기에
두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남쪽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 다스리게 되었고,
북쪽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 증거로써 열왕기상 11장 29절로 32절에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저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아히야가 그 입은 새 옷을 잡아 열 두 조각에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찢어서 나누신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국명은 에브라임인데, 이는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장자인 므낫세와 차자인 에브람임이 야곱에게 축복을 받을 때에
차자인 에브라임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에브라임이라고 한 것이며, 수도는 사마리아입니다.
남쪽 이스라엘의 국명은 유대인데, 이는 야곱의 4번째 아들인 유다 지파의 이름을 따서 유대라고 한 것이며,
수도는 예루살렘입니다.
이렇듯 범죄로 나뉘어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며,
북쪽 이스라엘인 에브라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이방인과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쪽 이스라엘인 유대 사람들은 북쪽 이스라엘인 에브라임 사람들을 개로 취급하게 되었고,
그들을 하나님께 저주받은 민족이라고 규정해 버렸으며, 그들과 상종을 하지도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민족이 죄를 범할 때마다 어김없이 진노의 채찍을 드시고,
그들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은 저주와 멸망을 촉구하는 채찍이 아니라 돌아옴을 촉구하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인 에브라임 사람들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아람왕 벤하닷을 사용하여 수도인 사마리아성을 에워싸게 하셨습니다.
이제 아람의 군대들이 사마리아성을 포위하자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양식은 고갈되어 갔고,
그 결과로 인해 그들은 심히 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하 6장 25절 말씀처럼 나귀 머리 하나가 은 80세겔 팔렸고,
합분태 사분 일 갑이 은 다섯세겔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합분태는 비둘기 배설물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11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먹을 수 있는 정한 짐승과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짐승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레위기 11장 27절에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나귀는 율법에서 금지한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짐승인데,
이 부정한 나귀머리 하나가 은 80세겔이라는 고가에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사마리아 성안의 기근이 심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비둘기의 배설물도 은 다섯세겔에 팔린다는 것도
사마리아 성안의 기근이 심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비둘기 배설물이 필요한 이유는 그 배설물 속에 있는 곡식을 골라서 먹고자 한 것입니다.
그토록 심한 기근이 사마리아성을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왕이 성위로 통과할 때에 너무나도 심한 기근에 시달린 한 여인이 열왕기하 6장 26절 말씀처럼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너무나도 심한지라 왕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열왕기하 6장 27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 여인에게 열왕기하 6장 28절 말씀처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여인이 왕에게 대답하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열왕기하 6장 29절에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고 하자 자신의 아들을 숨겼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을 듣게 된 왕은 자신의 옷을 찢으면서 통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당시에 이스라엘 왕은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 바알과 아세라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섬기도록 권장한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인데, 이 왕은 기근의 탓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 때 당시에 선지자인 엘리사는 이 왕을 가리켜
열왕기하 6장 32절에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까지 하면서
기근으로 인한 백성들의 굶주림을 애통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너무나도 굶주림이 심한 나머지 사마리아 성안에서는
도저히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레위기 26장 29절에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앞서 레위기 26장 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찌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또한 신명기 28장 57절에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앞서 신명기 28장 15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남쪽 이스라엘인 유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자신의 책인 유대 전쟁사에 예루살렘 성의 기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요세푸스는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사실대로 기록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근으로 사람들은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음식물을 빼앗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강도들은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몸 속 까지도 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혹시 그들이 몸 속에 먹을 것을 숨기고 죽은 척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강도들은 너무나도 배가 고픈 나머지 입을 벌린 채 갈지자로 걸으면서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때에 요단강 건너편에 살던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루살렘으로 도망왔다가
로마군의 포위로 말미암아 성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게 되었고,
기근으로 인해서 그녀의 창자는 말라 붙었고, 그 고통은 뼈 속까지 사무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배고픔보다 이제는 분노로 말미암아 가슴이 타게 되었고,
격분한 나머지 인간의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에 어긋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어린 아들을 붙잡고 말하기를
"오 불쌍한 아가야! 전쟁과 기근과 내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너를 보호해야 하겠니
로마군이 성안으로 들어올때까지 우리가 살아있다고 해도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이고,
노예가 되기 전에는 기근으로 인해 죽게 될 것 같단다
그러나 노예 신분과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도들이란다
자 아가야! 이리 와서 내 음식이 되어 다오 그래서 강도들에게는 복수의 분노를 보여 주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의 재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다오."
라고 하면서 마리아는 아들을 죽여서 그 몸을 구운 후에 반은 자신이 먹고 반은 싸서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 때에 강도들은 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다가와서 음식을 내 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그들을 위해서 충분한 양을 남겨놓았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이 뜯어 먹다가 남은 아들의 시체를 그들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강도들은 이 광경을 보자 어안이 벙벙한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강도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내 아들이요, 내가 손수 만든 요리란 말이요,
내가 금방 이 요리를 먹었으니 당신들도 먹어보시요,
여자보다 더 나약하거나 어머니보다 더 측은히 여기는 모습을 보이지는 마시요,
만약 당신들이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을 불쌍히 생각하고 양심에 가책이 된다면
당신들의 몫을 내가 먹었다고 생각하고 남은 조각을 그대로 손 대지 말고 가시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강도들은 겁에 질려 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도 같이 기근이 너무나도 심하여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삶아 먹을 정도로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는 문둥이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문둥이들은 불완전한 자이며, 죽은 자와도 같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과 죽음을 나타내는 숫자인 4를 통해서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문둥이들은 열왕기하 7장 3절로 4절의 말씀처럼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 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가로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한사람도 없었고,
아람 군대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둔채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열왕기하 7장 6절 상반부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아람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소리를 듣게 된 아람 군대는 서로 말하기를 열왕기하 7장 6절 하반부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문둥이들은 아람 군대의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욕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열왕기하 7장 9절의 말씀처럼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문둥이들은 자신들의 소위가 선치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배와 정욕만을 채우기 때문이기 보다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치 않는다는 말은 악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악한 것입니까?
우리가 지은 죄가 악한 것입니까? 그것보다도 복음을 먼저 들은 자들로써
그 먼저 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 바로 선하지 못하며, 악한 것입니다.
문둥이들은 아름다운 소식을 자신들이 전하지 않고 잠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악하다고 했습니다.
문둥이들이 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굶어 죽게 되고,
심지어는 아이를 잡아 먹는 끔찍한 죄를 짓게 됩니다.
만약에 이 문둥이들이 아람 진가에 가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사마리아 성의 주림과 살인의 책임이 없지마는 이제는 책임이 있습니다.
비록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살인을 하지마는 그 살인의 이유는 굶주림이기 때문이며,
그 굶주림을 해결하여 살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바로 문둥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둥이들이 살인을 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세상도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결과로 말미암은
영적인 기근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 결과로 인해 이성이 실추되어 버려서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 서슴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근은 아모스 8장 11절의 말씀처럼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픔이 있고,
삶의 의욕이 상실되며,
서로가 서로를 말과 칼로 죽이고 죽임을 당합니다.
지금의 시대가 바로 이러한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들도 예전에는 죄악으로 인해 영적으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고 그 말씀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어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시어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어 먹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 가운데 복음을 먼저 들은 우리들의 입이 침묵한다면
그 만큼 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죄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죄이며,
영혼을 죽이는 살인죄와도 같은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 눈에 지옥으로 달려가는 영혼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많은 기근과 환난과 아픔의 소식들이 매스컴을 통해 우리들의 귓가를 스쳐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여 많은 영혼들을 주 앞으로 인도하여 살리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들의 존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증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유혹의 바다 속에 빠져 허덕이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구원의 밧줄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아니하고 구원의 밧즐을 던지지 아니하면
그들은 죽어가고 말 것입니다.
끝으로, 문둥이들은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라고 했습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처소에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경성의 채찍이 우리를 몰아칠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주안에서 파숫꾼들입니다.
파숫꾼이란 높은 성꼭대기에 올라 서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적군이 쳐 들어올라 치면 나팔을 힘차게 불어서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입니다.
만약에 파숫꾼이 졸거나 나팔을 불지 아니하면,
그 성은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비록 파숫꾼이 깨어 있다고 할지라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늘 말씀에 등장한 문둥이들과 같이
이 죽어가는 세상을 향해 복음의 나팔을 힘차게 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는 결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문둥이들과도 같이 천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아름다운 소식인 복음을 먼저 접하고 들었다면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먼저 접하고, 들은 자들로써 전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제부터 여러분이 복음을 전할때마다 주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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