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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의 특징들과 주요 교훈들

김재성박사

by 김경호 진실 2020. 7. 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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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청교도에게서 답을 찾다 (10)

 

 

 

▲김재성 박사(조직신학,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청교도 운동과 청교도 지도자들이 출판한 저서들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사상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어떤 면에서 청교도 신학이 개혁신학의 발전에 기여했는가를 주목해서 살펴보면서, 한국교회에 유익한 자양분을 공급받았으면 한다.

첫째, 청교도 운동을 주도했던 지도자들의 가슴 속에 있던 신학사상은 쉽고 열정적이며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설교를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둘째, 청교도들이 지속적으로 성경적인 설교를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경 연구를 뒷받침하는 칼빈주의 개혁신학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주목해야만 한다. 깊은 뿌리가 놓여있었기에 시냇가의 나무처럼 무성하게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셋째, 청교도들은 엄청난 고난과 핍박 속에서 굴하지 않고 성경적인 교훈들을 지켜나가는 불굴의 믿음이 있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한 방울도 헛되지 않았다.

넷째,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거짓과 오류를 분별해 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청교도 운동의 중요한 가르침들을 모아서 이 핵심교리로 집약해 보면, 가장 복음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체계를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신학은 잉글랜드를 넘어서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고, 뉴잉글랜드와 네델란드에 확산되었으며, 전세계로 퍼져나가서 더 진일보된 교회를 세우도록 도움을 주었다.

 

1. 실천적이며 체험적인 생활에 관한 가르침

첫째, 청교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향한 삶의 교리, 생활의 교리 (practical divinity)를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다. 청교도는 추상적인 토론에 초점을 두었던 중세 시대 스콜라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며, 신학 논쟁을 통해서 정립된 유럽의 종교개혁자들의 저술보다도 훨씬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복음을 제시했다. 신앙이란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평안을 찾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매우 구체적으로 신앙의 내용들을 풀이하되, 경건과 거룩한 삶을 추구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서 2백 여 년 동안 구체화된 청교도 신학이 기독교 신학의 발전사에서 가장 기여한 부분은 “체험적인 신학”을 “경험에 근거한 설교”(experimental preaching)로서 표출했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애정이 넘치는 신학, 혹은 사랑의 감격 속에 있는 신학” (affectionate theology)"이다. 청교도들은 성경주석, 교리문답서, 설교, 경건서적들을 통해서 성도들의 인품과 덕성을 고양시키고자 노력했다. 청교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교훈들 (practical and edifying works)이 담긴 저술들을 마치 거대한 물결처럼 쏟아놓았다.

“경건한 삶” (devoted life)에 관한 저술을 펴내서 영향력을 발휘한 청교도들이 수 백 명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한국 교회에 잘 알려진 분들은 윌리엄 퍼킨스, 윌리엄 에임즈, 존 코튼, 리챠드 십스, 새뮤얼 러터포드, 토마스 굳윈, 토마스 쉐퍼드, 존 밀튼, 리챠드 백스터, 존 오웬, 존 번연, 토마스 왓슨, 존 플라벨, 존 호웨, 매튜 헨리, 앤 브래드스트릿, 에드워드 테일러, 토마스 보스톤, 요나단 에드워즈 등이다.

최근 여러 청교도 신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집대성 되면서, 오 백 명 이상의 청교도들의 생애가 밝혀졌다. 주요 지도자들로서 저술들이 소개된 이름들을 영어 사전에 나오는 알파벹 순서대로 정리하면 백 오십 여 명에 이른다.:

성경적 교훈과 교리를 실천적으로 재구성한 최고의 걸작이 청교도의 특징이라고 할 때에, 그 대표작으로 평가를 받는 저술에 대해서 살펴보자. 과연 어떻게 해서 이러한 신학이 나왔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청교도 신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학식이 뛰어난 박사’(the Learned Doctor)라는 칭호를 가진 윌리엄 에임즈 (William Ames, 1576-1633)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 마디로 에임즈는 날마다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바른 신앙을 지켜나가고자 노력하였다.

 

▲2백여년의 청교도 운동에서 가장 탁월한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윌리엄 에임즈.

에임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1598년에 학사학위를, 1601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에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기를 시작했는데, 퍼킨스의 설교를 통해서 회심체험을 했고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영국 국교회의 규정대로 성직자 예복을 입는 것에 반대하였고, 예배 시간에도 공동기도서를 사용하지 않았다. 에임즈와 동료 목회자들은 곧바로 정부 당국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1609년에 학교에서 행한 설교에서 놀음하는 것을 심하게 비난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그의 졸업장과 목사 직책이 모두 다 취소되었다.

그리하여 1610년에 바다를 건너서 네델란드로 피신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케임브리지 대학 선배인 존 로빈슨 (John Robinson, 1576-1625)을 만나서 함께 “순례자들의 회중”을 지도하게 되었다. 로빈슨은 원래 영국 국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지만, 분리적인 회중교회에 속한 지도자로서 네델란드로 피신을 왔던 교인들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영국에서 온 피난민들은 네델란드에서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많은 고통을 당하던 중에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잉글랜드 플리머쓰에 정착한 “순례자들의 조상”(Pilgrim Fathers)이 되었다.

에임즈가 네델란드에 건너오던 그 시기에 라이덴 대학교의 교수이던 시몬 에피스코피우스가 알미니안주의를 확산시키면서 격론이 일어났다. 로빈슨과 같은 입장을 가졌던 에임즈도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주장하였고, 돌트 총회(1618-1619)에도 참가했다. 에임즈는 1622년 프라네커 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놀라운 학문적 업적을 성취했다. 에임즈는 영국 종교개혁의 초창기에 앞장서서 청교도 신학을 확고하게 세워나가면서 주도했던 중요한 신학자들의 저술들을 집대성하여 1620년부터 2년 동안 강의를 하였다. 이것을 라틴어로 집약해서 출판했고 (Medulla Theologiae), 영어로 다시 번역되어서 1643년에 『신학의 체계』 (the Marrow of Sacred Divinity)로 출판되었다. 현대 영어로 재편집되어서 최근에 『The Marrow of Theology』로 발간된 바 있다. 이 책에서 에임즈는 초기 청교도들의 저술들을 종합하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가 주로 참고한 위대한 청교도들은 리챠드 그린햄 (Richard Greenham, 1540s-1594), 리챠드 로져스 (Richard Rogers, 1551-1618), 윌리엄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 등이다.

에임즈는 17세기에 교회를 감당할 설교자들에게, 그리고 장차 뉴잉글랜드로 이민을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전적인 청교도들의 신학사상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앞선 선조들의 신학을 펼쳐놓으면서, 마치 위대한 합창이 울려 퍼지듯이 명쾌한 선율을 조화시킨 것이다. 에임즈는 『양심의 사례들』 (De Conscientia)라는 저서에서도, 경건 생활의 실제적인 지침들을 제시하였다. 에임즈가 사망한 후에,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미국 매사츄세츠로 건너가서 뉴잉글랜드 청교도에 합류했다. 에임즈는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에게 교과서와 같이 추앙을 받았으며, 큰 영향을 끼쳤다.

에임즈는 “신학이란 하나님을 향한 삶의 교리 혹은 교훈”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신학이란 믿음과 실천으로 나누었다. 전자는 외부적으로 발생한 의로움이요, 후자는 개인적으로 실행하는 부분이다. 신학의 중요한 주제들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타락,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구속이 있는데, 구원의 적용에 강조점을 두었다. 중보자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성도의 생활 속에서 점차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신학적인 지식은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사람의 인식 관찰 실험 귀납 등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다른 종류의 지식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신학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다고 하였다. 종교적인 지식을 지성 속에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의지에 연결된 것으로 규정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소명을 받았다는 점을 풀이하는 것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의 모든 주제들은 회의적인 추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실천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피터 라무스(Peter Ramus, 1515-1572)의 이분법을 채택해서, 이론과 실천이라는 구조를 단순하게 제시하였다. 프랑스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라무스는 나바르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반기를 들었고 개신교로 개종한 후, 성 바돌로매의 날 벌어진 대학살에서 희생을 당했다. 에임즈도 역시 라미즘(라무스의 논리적 방법론을 따르는 학파를 일컫는 말)의 이분법을 채택해서, 모든 신학의 주제들을 두 가지 소제목으로만 대조하면서 간략하게 전개해 나갔다.

 

www.christiantoday.co.kr/news/332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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