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청교도에게서 답을 찾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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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설교자로 유명한 마틴 로이드 존스(1899-1981)는 청교도 신앙을 강력하게 되살려내고자 노력했던 분이다. 그는 청교도에 대해서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강연에서, 여왕이 강력한 권세를 근거로 삼아서 국가교회 체제를 만들어서 교회를 장악하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이 왜곡된 신앙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었기에, 청교도 운동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트터 채플”에서 오랫동안 성도들에게 감동적인 설교를 했던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는 청교도에게서 배우고, 청교도의 신앙을 열정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래 병원에서 육신의 질병을 고치던 의사였는데, 워낙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노회에서는 그를 권유하여 설교자가 되도록 했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영혼의 의사”가 된 그는 오직 청교도들의 설교집과 경건서적들을 모조리 섭렵해서 새로운 강해설교의 금자탑을 이뤘다. 청교도 목회자들은 자신들을 “영혼의 의사” (the physician of the souls)라고 불렀다.
청교도들은 엄청난 정치적 대격변기를 거치면서 왕권과 로마 교황청이 대립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왕실의 권세가 급격하게 변하는 특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를 장악하려는 세력에 타협을 거부하면 곧바로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청교도들은 타협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거기에서 양심을 가진 성도들이청교도 목회자들을 도왔다. 여왕이나 군주로부터 독립된 교회를 세우고자하는 열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청교도운동은 여러 차례 교황의 권세와 영향으로 인하여 부패한 교회를 개혁했던 유럽의 종교개혁자들과 똑같은 정신을 발휘하였다.
메리 여왕이 교회 체제를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회귀하려할 때에 거부하다가 7천 명의 청교도들이 살해를 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체제 하에서는 수 백 여명이 설교하는 직분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1660년 왕정복고가 이뤄지자, 다시 2천명의 목회자들이 국가교회체제를 거부하다가 쫒겨났다. 영광스러운 국가를 더 옹호하려는 자들은 절충의 길(Via meida)를 받아들이고 타협을 하라고 촉구했지만, 과도한 권력의 조치 앞에서 청교도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한국교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청교도들과 유사한 결단의 시기가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1937년,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신사참배”를 강요받았다. 모든 교회가 분연히 일어나서 싸워야 했는데, 주기철 목사의 순교에도 불구하고, 총회에서는 이를 따르기고 가결했다. 당연히 한국교회도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 평양신학교는 1938년 자진 폐교하고, 조선 총독부의 조치를 따르지 않던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고 말았다. 지금도 비슷한 질문이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갈 것인가? 아니면, 철저하게 믿음을 지키며,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할 것인가? 순수한 믿음의 길을 따라가기를 다짐하고, 이런 마음을 배우고 간직하기를 원한다면, 청교도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오늘날에도 우리를 혼란케 하는 동일한 문제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성경에 담긴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오늘의 교회도 역시 가장 중요한 사명을 잃어버리고, 혼돈에 휩쓸려가고 말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참된 신앙을 갖추도록 복음만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목회자들이 영적인 도덕성을 회복하고 건전한 목회방향을 설정하려면, 청교도 신앙 속에서 소중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회심을 강조하고, 직업에 귀천이 없이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양심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에게 그 해답이 들어있다고 확신한다. 청교도들은 이 세상 속에서 검소하고 순수하며 거룩한 성자처럼 살려고 노력하면서도, 새로운 공동체 사회와 국가를 건설하였다. 청교도들은 권력에 아첨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서 애매모호한 기독교로 변질돼버린 영국 국가 교회 체제를 거부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청교도들은 국왕이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최고의 권위자이시다는 교회론을 근간으로 하여 참된 신앙을 생활 속에서 회복시키면서, 마침내 신대륙 뉴잉글랜드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했던 용감한 행동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말씀탐구에 진력하면서 확고한 개혁주의 신학을 터득한 신학자들이 되었고,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지켜나가고자 노력했던 결과로 거룩한 삶을 영위하였다. 평양신학교와 총신대학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조직신학을 체계화한 박형룡 박사는 한국교회가 물려받은 신학은 “유럽의 칼빈주의 개혁신학과 영국의 청교도 신앙”이라고 역설하였다. 한국교회가 청교도의 신학과 삶을 배우고 익혀야할 이유는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기독교 신앙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18세기에 대각성 운동을 주도하면서 부흥운동에 앞장을 섰던 죠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왜 청교도를 존중하는가를 간명하게 피력했다.
청교도들은 환하게 밝히면서 타오르는 불꽃들이었다.
시골 창고에서나 들판에서나, 큰 길에서나 산 울타리에서나,
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권위를 갖고 설교했다.
비록 그들은 죽었을지라도, 그들의 저술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 그들은 감동적인 어조로 동참하고 있다.
휫필드가 청교도들의 저작물들은 세상의 끝 날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참된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자양분을 얻어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 한국교회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있다. 유럽 전 지역에서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 이처럼 참담한 상황 속에서,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주일학교에 사람이 없는 한국교회의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할 때에, 지금 살아있는 우리라도 깨어있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청교도 신앙을 배우고 익혀야만 할 때이다.
청교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서로 상반된 두 가지 평가를 하고 있다. 하나는 청교도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평가다. 왕권신수설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대 속에서도, 청교도들은 단독 통치자이자 절대권을 가진 군주에게 저항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세웠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잉글랜드에서 건국의 조상들이 되었고, 그 바탕에서 민주국가인 오늘의 아메리카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청교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더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서술된 것이다. 근면과 절약정신으로 갖고 살았던 청교도들은 마음속에 직업의 소명의식을 기본으로 품고 있었고, 하나님의 예정 교리를 신뢰하고 살았기 때문에,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사회적인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형성이 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베버의 분석요인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로마 가톨릭 교구의 주민들과는 달리, 청교도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서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평가라고 본다.
그런가 하면, 정 반대로 청교도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혹평하는 입장도 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작품, 『주홍글씨』에는 매우 편협하고 좁은 종교중심 사회가 그려져 있다. 소설에 나오는 청교도들은 어둡고 우울하며 검은 색 옷을 입고 있다. 겉으로는 경건한 것 같지만, 주인공 호손의 보이지 않는 모습 속에는 위선과 죄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부조리를 고발했다는 면에서는 진한 교훈을 남긴 작품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를 들여다 볼 때에 과연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디에도 완벽한 에덴동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선과 죄가 뒤엉켜 있는 것이 인간의 모순된 진면목이다. 사실은 청교도들의 가장 특징적인 생활내용이 바로 이러한 죄와 더불어 싸우면서 경건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점이다. <계속>
www.christiantoday.co.kr/news/3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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