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출애굽기서에서 히브리 민족을 번창하게 하시고(출1:7, 12, 17, 20) 함께 해주신 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통해서 약속의 자손이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훼방자로 등장한 애굽의 바로는 하나님의 적으로 둔갑한다. 하나님의 적은 곧 이스라엘의 적이다. 마치 하나님과 적인 적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의 적인것과 같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학대한 애굽의 바로에게 심판하시므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준다. 바로가 하나님이 함께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느냐를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곧 그들의 삶 깊숙한 곳에 임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요셉을 알지 못한 애굽의 바로가 나서서 히브리인을 핍박한다. 애굽에게 복을 주신 것은 그 애굽에 있는 야곱의 후손들 때문에 부강해 진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이 죽고 난 뒤 애굽의 바로는 자기들의 힘으로 부강해 진줄 알고 착각한다. 그래서 요셉에게 입은 은혜를 무시하고 오히려 그 후손들을 핍박하고 있다.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인들을 고역으로 인하여 억압하므로 그들의 번창을 막고 멸절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욱 번창하게 한다.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창해 지는 축복이 임한다(출 1:12).
우리가 남들로 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고난을 부끄러워 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더욱 부끄러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의 고난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능히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는 언젠가는 헤어지도록 되어 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함께 공존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 반드시 헤어진다. 가는 곳이 다르다. 이 세상에서도 멍애를 같이할 수 없는 것이며 반드시 가는 길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과 세상이 가는 길은 반드시 다르기에 세상은 결코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세상이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요한복음 15:18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했다.
모세는 아무런 이유없이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자기민족을 위해 보다 못해 일어선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출 2:11-12)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보려는 인간 모세의 한계가 드러난다. 적을 치기도 전에 오히려 자기 백성들로부터 그 뜻이 거부당하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만다. 인간적인 힘, 세상적인 힘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보려는 심산이었다.
세상은 힘이 있어야 살아가게 되어 있다. 힘이 없이는 남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다르다. 이스라엘은 달아야 한다. 모세는 이 부분에서 오해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모세의 뜻을 좌절시킨다. 그런 힘의 법칙이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이 우리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세상적인 힘을 저축하여 그런 힘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인 자비와 우리들에게 기적으로 주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대결이 결코 우리들의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경쟁의식이 우리들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비와 긍휼의 정신이 우리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 준다.
결국 모세가 실패하게 된 원인은 히브리 민족으로서 선택된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애굽 방식으로 자기 민족을 구출하려고 했다. 히브리민족의 구원방식이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구원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며 그분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그들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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