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은 교회 안에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부한 자들을 차별하는 자들을 비판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과 라합을 제시합니다.
1. 이웃 사랑의 법(1-13)
야고보는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합니다(1). 당시 교회 안에서 가난한 자들과 부한 자들에 대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교훈한 것입니다. 성도 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차별을 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보고 좋은 자리에 앉으라 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서 있든지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고 하면 서로 차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되는 것입니다(2-4). 부한 자들에게는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낮은 자리, 나쁜 자리를 주는 것은 차별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셨습니다(5). 하나님은 당시 지휘가 높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보다 어부들이나 비천한 자들을 택하여 사도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 안에서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부자는 가난한 성도를 억압하고 법정에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름이 비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6-7).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됩니다(9-13). 성도 간의 차별은 곧 이웃 사랑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2. 행함이 없는 믿음(14-20)
만약 사람이 믿음(피스티스)이 있다고 하고 행함(에르곤)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자기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구원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즉 거짓 믿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누구든지 그에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만 하고 쓸 것을 주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입니다(14-16).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17).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은 오직 믿음 즉 은혜로 주어진 믿음입니다. 행함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열매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함입니다. 믿음의 행위입니다. 행위 즉 열매가 없으면 그 믿음은 거짓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18).
믿음은 행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행함의 열매가 없으면 그 믿음은 거짓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습니다. 잘하는 것이고 진리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도 이것을 믿고 떱니다.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입니다(19-20).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믿음이 있다 하고 실천이 없으면 그것은 헛된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 이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 바른 믿음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껍데기 신앙을 가지고 산다면 그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서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바로 헛된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진실로 그 믿음의 행위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믿음의 열매가 행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뿌리와 나무가 죽은 것과 같이 죽은 믿음입니다. 따라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예(21-26)
이제 야고보는 믿음의 예를 들어줍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21).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십니다. 이것은 실제로 이삭을 번제로 받으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창 22:1-2절에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22).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찬을 받았습니다(23). 이것은 창 15:6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이런 행동을 하게 한 것입니다. 즉 그의 행동은 믿음이 근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닙니다(24). 이 구절을 오해하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오석하게 됩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행하므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면 행함의 열매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행함의 열매가 없으면 그 믿음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즉 행함은 믿음의 열매인 것입니다.
또 한 사람 기생 라합의 예를 들어줍니다. 라합은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25). 이것은 여호수아 2:19-21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26). 이것이 2장의 결론입니다. 야고보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은 행함이 나타나게 되어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가짜라는 말입니다.
결론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믿음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바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까? 말로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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