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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이 시대의 보편적 고통을 어떻게 보듬을까?

고난

by 김경호 진실 2021. 6. 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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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이 시대의 보편적 고통을 어떻게 보듬을까?

 

 

 

   미래교회 포럼이 주최하는 2021년 포럼 “복음과 보편적 고통”의 2번째 세미나가 2021년 5월 28일(금) 오전 11시 천안교회당에서 “보편적 고통에 대한 교회적 응답”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세미나는 유튜브(https://youtu.be/jtV7uZhBD8c / https://youtu.be/zbHRO0Vt1Ig) 를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미래교회포럼 대표 오병욱 목사의 인사와 기도로 시작된 이번 세미나는 하재성 교수와 김민석 박사가 발표했다.

 

 

   첫 번째 순서로 고려신학대학원 하재성 교수가 “목회적 관점에서: 가정과 관련해서 교회는 어떻게 보듬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하재성 교수는 자가격리대상자로 분류되어 온라인으로 발제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양떼를 먹이는 목자의 핵심 임무는 혼란스런 삶의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석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순수한 복음으로 먼저 목회자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이어서 그 복음을 전달받는 성도들의 삶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그런데 “목회적 돌봄과 상담에 있어서 보편적 기독교 진리보다 개별적 돌봄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본문을 저버리고 현실 문제만을 풀어주려고 설교했던 과거 뉴욕의 Harry Fosdic 목사나, 동성애와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성경의 기준을 재고해야 한다는 Larry Graham과 같은 목회신학자들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성경 본문과의 진지한 씨름의 부재, 전통의 본질적 연속성과 그로 인한 양육의 상실, 진정한 필요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필요들만 치유함으로써 기독교의 궁극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하였다. Anthony Thiselton은 성경 텍스트보다 현재의 상황에 더 큰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성경 텍스트를 도구적 ‘자료’ 정도로 취급하는 현대 실천신학에 대해 경고한다. 비록 그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상황적 개별성과 공감과 들음의 목회적 민감성에 대해 이해하지만, 성경 텍스트가 개인화 되거나 성경 자료와 현재적 상황을 등가의 대칭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한다.”라고 했다. 또한 하 교수는 “영혼을 돌보는 것과 돌봄의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더군다나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성경의 성령 영감성을 부인하고 돌봄의 상황에 따라, 혹은 돌봄 대상자의 형편에 따라 진리의 기준을 변경한다면, 그것은 더는 기독교일 수 없다. 코로나 19라는 심각한 보편적 전염병 상황에서 교회가 가정과 성도를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 돌봄의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변함없는 복음의 해석과 순수한 선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라고 본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상담에 있어 위로와 공감은 경청의 핵심이지만, 복음으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분별력이 있어 진리가 없거나 왜곡된 달콤한 위로가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비록 달콤하지 않더라도 말씀의 책망을 받는 것에서 오히려 영혼의 참된 위로를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코로나 19 상황에서 교회와 목회자가 성도들과 그들의 가정을 보듬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설교를 통해 순수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어떤 돌봄이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돌봄은 진리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며, 고통의 상황과 무관하게 삼위 하나님만이 예배자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실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하 교수는 개별적인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목회자의 설교는 보편적이지만 돌봄은 개별적이어야 한다. 목회자는 최선을 다하여 성도들의 개별적 고통에 경청하고 거기에 공감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개인과 가족에 따라 코로나를 경험하는 강도는 다르다. 내성적이고 관계 자원이 충분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따로 예배를 드리는 전염병 상황에 더 잘 적응할 수도 있다. 반면 외향적이며 관계 의존적인 사람들에게는 비대면 예배가 답답하고 공포스러우며, 자녀들의 공부마저 책임져야 하는 새로운 임무들이 큰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가 공동체 전체의 일상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종류의 트라우마는 “의미생성(meaning-making)의 파열”과 “자신을 보는 방식, 세상을 보는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보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람 돌봄이며,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돌봄이란 곧 “이야기 들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 교수는 “비대면 시대를 견뎌낸 교회와 목회자들의 창의성은 이제 곧 목회일상의 재적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비대면 돌봄이 대면을 통한 심층 돌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사람 돌봄은 단편 정보로 해결할 수 없는 정서적 복합성을 가졌고, 더구나 영적 돌봄은 또 다른 차원의 집중과 이해가 필요하므로 기본적으로 충분한 시간의 대면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후에 목회자는 자신을 분주하게 하는 많은 행사 중심의 사역을 재고하고, 더욱 순수한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와 성경 해석과 설교 연구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의 심방이나 상담 역시 성도 개개인의 이야기를 경청할 겨를 없는 형식적인 만남이나 행사가 아니라 개개인의 사정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깊이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라고 발제를 마무리 했다.

 

 

   이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김민석 박사가 “공공신학적 관점에서: 시대적 고통에 공감하는 교회인가?”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김 박사는 “지난 1년간 교회는 한국 사회에 ‘공감’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 국가적 재난과 같은 시기에 온 국민들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국가의 방역 방침에 적극 동참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교회는 대면 모임을 강행하여 집단 확진자를 만들어 내는 매우 이기적인 단체의 모습으로 세상에 비쳐졌다. 물론 방송 매체들이 일부 교회의 문제를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했다거나, 교회들의 결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교회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화와 협의보다는 정부와 대결하는 구도의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제하며, “교회는 항상 공적 교회였으며, 사회를 향한 교회의 공적 발언은 교회가 가진 사명의 핵심이다. 교회는 공론장에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고, 시민사회를 위한 정치적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다원주의 사회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복음으로부터 도출된 지혜에 근거하여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의 논의에 기여해야 한다.”면서 공공신학의 중요성을 전제했다.

   이어서 김박사는 경제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접근, 심리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접근을 다뤘다. 김 박사에 의하면 “교회는 정부를 향하여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돌볼 것을 강력하게 촉구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정책 결정 과정이나 공론장에서 기독교 윤리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교회가 위치한 지역 사회 내에서 직접적으로 봉사할 수도 있다. 정부가 지원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서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는 이웃이 있을 수 있다.”고 경제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책임에 대해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김 박사는 “교회는 그 사용하는 언어를 듣는 대상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전문적인 신앙의 언어, 성경의 언어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회와의 대화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설득되지도 않고 결국 대화는 그대로 종결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비기독교인을 포함한 사회와 대화 할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한다. 이것이 공공신학이 추구하는 지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발제자의 발제에 이어 채충원 목사(한밭교회)와 배정환 목사(대전서교회)가 각각 논찬했으며,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에 포럼을 마쳤다.

 

고신 - 교회가 이 시대의 보편적 고통을 어떻게 보듬을까? (reformedj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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