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글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시험하는 질문을 합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5)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예수님은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8:6) 그들이 계속 재촉하여 대답을 요구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모두 흩어졌다는 내용인데 꽤 유명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주석가나 설교자나 평신도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내용의 글을 쓰셨을까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 싶습니다. 우선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내용을 전하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내용을 분명히 밝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한 데는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땅에 글씨를 쓰려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대기나 돌을 사용하여 땅에 쓰는 것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막대기는 몰라도 돌은 얼마든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여자는 모세가 돌로 치라 명하였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 손에 돌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을 것같은 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돌로 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아마 주변에 돌이 흔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함무라비 법전에는 돌로 치라는 말보다는 물에 빠뜨리라는 형벌이 많이 나옵니다. 거기는 돌보다 물이 흔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 흐르는 곳이므로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곤장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돌과 물보다 나무가 더 흔했던 것이지요.
하여튼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쓰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돌이나 막대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쓰셨을까요? 무엇을 쓰셨는가가 아니라 왜 손가락으로 쓰셨을까 하고 물으면 본문을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특별한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친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LXX 은 τῷ δακτύλῳ τοῦ Θεοῦ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로 옮겼는데 요한복음 8장 6절은 τοῦ Θεοῦ (하나님의)는 생략하고 τῷ δακτύλῳ (손가락으로) 만을 썼는데 굳이 "하나님의"를 생략한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두 돌판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중에 일곱 번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과 그녀를 고발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쓰신 것은 바로 이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즉, "내가 바로 십계명 두 돌판에 손가락으로 썼던 그 하나님이다" 라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땅에 무슨 내용의 글을 쓰셨을까에 초점이 있는게 아니라 "손가락 쓰기 퍼포먼스"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실제로 의도하신 것은 자신이 "시내 산 위에서 손가락으로 쓰신 두 돌판을 모세에게 주셨던 바로 그 하나님" 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일종의 "행위계시"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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