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헌신 두려워 하지 않는 희망의 소수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삿 7:7)
오종영 목사(대전 영성교회)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 예언자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약 35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암흑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땅을 분배 받고 안정된 삶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생활을 그치고 갑자기 편안한 삶에 안주하다보니 하나님도, 신앙도, 다 버리고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져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삶이 윤택해지고 부유해질 때 생길 수 있는 성도들의 삶의 위험성을 경고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방족속인 미디안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십니다. 미디안은 매년 추수기만 되면 군대를 이끌고 와서 곡식과 양떼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추수를 하면 산과 굴에 구멍을 파고 곡식을 숨겨둔 뒤, 곡식을 빻아서 겨우 살아가는 생활을 7년이나 반복합니다.
이에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결국 미디안이라는 세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각성시키시기 위해 악하게 사용하신 도구였던 셈입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미디안을 물리칠 수 있는 전략을 기드온에게 말씀해 주셨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전략을 통해 400:1의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본문을 보면 기드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치러 가는데 3만2000의 군사들을 동원해 미디안 공습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갑자기 기드온에게 전투의 방법과 군사력의 재배치에 대한 명령을 하시는데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드온아 너희 군사 3만2000명이 너무 많다. 줄여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하나님 얼마나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를 돌려보내라”고 하셨고, 이때 2만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3분의 2가 빠져나간 것입니다. 그러니 기드온이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 순간 “어! 이게 아닌데.” “너무 빠져나갔는데.” 아마도 이게 기드온의 반응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다음 말씀이 더 충격입니다. “야! 지금도 많다” “예? 겨우 1만명인데요?” 결국 하나님은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사람을 세우셨는데 몇 명이 남았습니까? 바로 300명이었습니다. 단 1%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면 물어봅시다. 이스라엘이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이겼습니다. 단 1%의 일꾼들을 통해, 그것도 완벽한 승리를 거둡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내가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서 이겼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오직 믿음으로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경험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미디안의 군사가 어느 정도였을까요? 8장 10절을 보면, 미디안 연합군의 숫자는 13만명이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거 말이 안 되지요. 3만2000명으로 싸워도 4:1인데, 300명으로 싸우면 400:1이 되는 겁니다. 절대 열세의 군사들과 기드온이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단 300명으로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는 놀라운 승리를 주셨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대부분의 교회는 약 5%의 성도들을 통해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창조적 소수가 교회를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창조적 소수들은 1당 100이요, 1당 1000이요, 1당 1만의 역할을 합니다. 바로 새로운 역사의 창조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창조적 소수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삶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바꾸는 사람
믿음의 싸움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군대는 단 300명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겼습니다. 그 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략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싸움에 앞서 경계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군대의 힘과 능력을 과신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 없는 싸움으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는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군사력과 능력으로 싸워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셔서 승리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어를 ‘내가’에서 ‘하나님’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승리의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싸워주시고 승리케 하시는 공동체가 되어 기적의 역사를 써가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지켜보며, 신앙의 간증, 승리의 간증을 써가는 주인공이 됩시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일하는 사람
우리는 본문에서 안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승리의 현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두려워서 돌아간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두려워했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전쟁에 나가면서 어쩔 수 없어서, 남의 이목을 피할 수가 없어서 전쟁에 참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방해꾼’입니다.
교회 안에도 믿음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이목을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의 일꾼이 아니라 방해꾼입니다. 주의 일은 믿음으로 하는 겁니다. 신앙인들의 믿음은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진가가 드러납니다. 믿음의 척도는 그 사람의 행동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려움이라는 시금석을 통해서 그 사람의 믿음의 진실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에 평상시에는 최고의 일꾼인 것 같고,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인 것 같다가도 인생의 풍랑을 직면하면 그 사람의 믿음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마지못해 싸움에 참여했다가 두려우면 돌아가라고 하니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간 그런 수치스런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코로나19가 두려워서 예배를 회피하는 3040세대들이 많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가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300용사의 법칙’은 현대 교회에서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교회에 성도들은 많지만 결국 죽도록 충성하고, 목숨 걸고 전도하며, 내 삶의 모든 것을 드려 봉사하는 사람은 결국 1%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1만명이 모이는 교회도 수백 명의 헌신된 리더들에 의해서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늘 성장하는 교회의 목회자들 곁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 100명이 있다고 다 전도하는 것 아닙니다. 다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참여하는 것도 아닙니다. 헌신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모든 시스템이 돌아갑니다.
예수님도 12명의 제자들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 12명이 세계를 뒤흔들었고, 뒤집어 놓았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은 마지막 테스트에서 기드온에게 1만의 군사들을 데리고 물가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이후 군사들 중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냈고, 손으로 물을 핥아먹는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선택하여 미디안과의 전쟁에 나가도록 했습니다. 결국 3만1700명의 군사들을 돌려보내시고, 단 300명의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단 1% 미만의 사람들로 13만명이 넘는 미디안의 군사들을 물리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성도는 많으나 일꾼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편리주의라는 우상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기 우선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쓰임 받은 사람들, 그들은 결코 대중이 아닌 1%였습니다. 소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와 공동체 안에는 시대의 소수자들이 필요합니다. 1%가 한국교회의 희망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탁월한 지식이나 지위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희생과 헌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동구밖 정자나무처럼 큰 나무가 되어 (0) | 2021.10.15 |
---|---|
희생타자 우리아 장군!(삼하 11:1~21) (0) | 2021.10.13 |
성경이 가르치는 좋은 성도의 자질 (0) | 2021.10.01 |
신앙생활의 결산 (0) | 2021.09.29 |
하나님의 나라 (0) | 2021.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