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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히 4:12~13)

회개

by 김경호 진실 2022. 3. 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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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앞 어려움 돌파해 나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리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김종원 목사(경산중앙교회)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매년 한 해에 대해 전망하고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을 발간합니다. 센터장 김난도 교수는 2022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10대 트렌드의 앞글자를 따 ‘Tiger or Cat’이라는 단어를 제시했습니다. 한국사회가 새로운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포효하는 호랑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고양이로 전락할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의미입니다. 호랑이로 종종 비유되는 대한민국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복잡한 사안들을 극복하여 검은 호랑이처럼 힘차게 포효하는 2022년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우리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원래는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독수리 신앙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사라지고 없는 포장마차 참새구이 같은 참새 신앙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요?

‘돌파’에 대한 개념만 봐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전염병에 돌파당하는 수동적인 의미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백신을 맞았는데도 코로나에 걸리면 돌파 감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이제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던 돌파는 어떤 뜻입니까? 뚫고 나가는, 뚫어내는(break through) 능동적인 개념이었습니다. 저성장 돌파, 목표돌파 등등의 개념이 우세했습니다.

이처럼 세상도 Tiger or Cat이라고 하면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하는데, 우리의 신앙도 허구헛날 돌파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파해 내는 신앙으로 무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돌파해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히 4:12) 우리가 주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칼은 날이 한쪽이라 무엇을 베는 데 주로 사용합니다. 반면 양날의 칼은 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로 찌르고 쪼개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 듯 생각하면 찔러 쪼갠다고 하니 죽이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 깊은 곳까지 찔러 결국은 살립니다. 좌우에 날선 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리는지를 함께 살펴봅시다.

첫째로, 말씀에는 회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회개는 가던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불의의 길에서 돌이켜 의의 길로,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저주의 길에서 돌이켜 축복의 길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회개가 쉽지 않습니다. 운전의 유턴도 일단 지정된 차선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멈춰 서야 합니다. 그리고 180도 돌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두라고들 합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죽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려면 일단 내 인생의 방향이 틀렸다는 것,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부터 해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사법적인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찔러 쪼개는 일차적 대상은 죄인의 심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찔러 쪼개면, 속에 숨겨두었던 죄악의 보따리가 터트려져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고, 태양보다 백만 배는 더 밝은 빛 앞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히 4:13)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으로 내 죄가 깨달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내 추악함을 느끼게 되어 속에서 역겨움이 올라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묻습니다. 이 사람들은 조금 전에 예수를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말씀 앞에 꼬꾸라져 통회합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아서 완악한 심령을 녹여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망이 같아서 굳은 심령을 격파합니다. 바로 그 때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로, 말씀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찔러 쪼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에 들어와 믿음이 생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하고는 그렇게 생긴 믿음은 어디로 이끄느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로 위대합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 심히 강퍅하던 한 인간을 스스로 죄인됨을 인정하게 한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 무엇이 회개하게 하고 구원으로 이끈단 말입니까? 하나님 말씀 외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교만한 사람의 무릎을 꿇리고 구원의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롬 1:1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한편 강도도 살펴봅시다. 그에게 말씀이 들려졌고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그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시며 그의 구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말씀이 찔러 쪼갠다고 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임하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회당장 야이로가 등장합니다. 당시 회당장은 회당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지역사회의 대표였습니다. 존경받는 유지였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딸이 아파 죽게 되자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간절한 소원을 듣고 어린 딸을 살려 주십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막 5:41~42) 어린 소녀가 어느 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까? 타이밍이 언제입니까? ‘달리다굼 하시니’ 다시 말하면 ‘말씀하시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말씀 선포 자체로 권능이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렸고(행 9:40), 사도 바울은 유두고를 말씀으로 살렸습니다(행 20:11). 말씀이 능력이기에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는 영혼이 살아납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말씀이 살립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55:3) 그러므로 여러분도 말씀 앞에 여러분의 영혼을 살려내고 맡겨주신 영혼들을 살려내기를 소망합니다.

1866년 평양의 한 포구에 제너널 셔먼호가 개항을 요구하며 들어왔다가 모래톱에 좌초되었습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가 27세의 나이로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뎠다가 성경을 전해주고 순교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이 받은 성경을 박영신에게 전했는데, 그는 성경을 찢어서 벽에 도배를 했습니다. 성경으로 도배를 한 그 집을 최치량이 구입해 여관으로 운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벽에 발라진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서 겨자씨 만큼이지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선교의 역사가 시작될 때 평양에 도착한 마포삼열 선교사가 공교롭게도 토마스 선교사가 전해준 성경으로 도배된 방에 묵게 됩니다. 그 집을 매입하여 교회를 세웁니다. 널다리골 교회가 되고 나중에 평양 대부흥 운동을 이끈 장대현 교회가 됩니다. 또한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박춘권 그리고 여관집 주인 최치량은 장대현 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말씀으로 살려내야 합니다. 말씀은 회개하는 능력, 구원하는 능력, 죽은 자를 살려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 앞에 있는 모든 어려움을 돌파해 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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