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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역사를 이루어내려면(대하 34:1~7)

섭리

by 김경호 진실 2022. 5. 23. 09:36

본문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고 기다리며 서로 조력하여 지혜롭게 준비합시다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대하 34:3)


이상화 목사(서현교회)
요시야 왕은 남유다왕국을 통치했던 20명의 왕 가운데 남유다왕국의 16대 왕입니다. 통치과정 속에서 남유다왕국의 여호사밧, 히스기야와 함께 하나님께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았던 왕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합격점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통치하는 동안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신뢰와 충성을 가지고 성전예배의 회복과 부흥을 꾀하고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봉사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격려하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우상숭배를 척결합니다. 또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그 이름의 의미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여호와께서 후원해 주신다”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밀어주시고, 지지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름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불과 8살입니다. 아버지 아몬이 24살에 심복의 반역으로 죽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위에 오른 순간부터 모든 개혁 작업을 완수할만한 역량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본문 3절은 “아직도 어렸을 때”로 시작하는데, 이 말씀을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8살 때 갑자기 왕위에 올라서 8년쯤이 지난 16살이 되던 해부터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고, 왕위에 오르고 12년 되던 해인 20살 때 우상을 척결하고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는 선한 일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이후를 계속 읽어가다 보면 성전 수리를 하다가 발견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역대 그 어느 왕보다도 영적 개혁과 부흥에 앞장선 왕으로 모두 31년간을 남유다왕국을 통치하다가 애굽왕 느고와의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전장에서 일생을 마감합니다. 역사가들은 요시야왕의 31년간의 통치 기간을 두고 “어두운 밤이 점점 다가오는 석양에 태양이 마지막으로 밝게 비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내용이 기록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선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선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협력하는 조력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팀은 개인보다 언제나 강합니다. 요시야는 8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6살이 되던 해부터 도탄 속에 빠진 남유다왕국에 생기를 불어넣는 개혁 작업을 시작합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였던 8년 동안 혼자서 잘 자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개혁을 완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에게 바른 의식과 삶을 살도록 도운 이름 없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조력자들의 헌신과 눈물의 기도가 요시야를 다윗의 길로 행하고 개혁을 성취하는 인물로 길러냅니다. 성경에 이름도 기록되지 못할 만큼 역사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무명의 헌신자들이지만 그들의 헌신적인 섬김이 캄캄한 시대 상황을 밝히는 개혁자 요시야 왕을 만들고 백성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요시야는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흐트러진 영적 상황을 수습하고, 개혁 작업을 해나가는 데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요시야는 그를 양육하고, 자신으로 하여금 선한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도와주고, 기도하며 축복해 주었던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선한 역사를 마침내 완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시야의 경우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면 선한 일을 성취하는 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는 아주 아름다운 장면들이 수없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바울의 사역 여정 속에서 그 실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을 향한 바나바의 동역이 그랬습니다. 뿐만아니라 초대교회가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에 빌립보교회를 세우는데 마음을 다한 자주장사 루디아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조력은 정말 멋있습니다. 실제로 평생 복음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바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자신과 함께 사역의 짐을 나누어졌던 고마운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에는 정말 물밑에서 수고한 조력자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여기에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까지 일컫는 루포의 어머니와 같은 조력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시야가 다윗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도록 긴 시간 동안 그 주변에서 헌신하고 그를 축복해 준 조력자들과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까지 일컬은 루포의 어머니를 묵상하면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가 요시야나 바울과 같이 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만, 한 시대를 책임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요시야 같은 인물을 길러내는 조력자, 루포의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런 조력자들이 있을 때 이 시대를 밝힐 요시야가 나오고, 바울과 같은 복음전도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소속해 있는 가정이든 교회든 나라든 좋은 지도자는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조력할 때 세워집니다. 이 원리를 깨달을 때 위법하거나 비진리가 아니라면 지도자를 돕고 세우는 일은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감당해야 할 책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선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 세워진 지도자를 위해서 더 깊이 기도하고 더 힘 있게 협력하는 조력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둘째, 선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기다림의 지혜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절을 모르고 피는 꽃을 ‘철부지’라고 일컫습니다. 칼 융이라는 학자는 “마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조급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은 기다림이다”는 말을 합니다. 영적으로 늘 깨닫는 원리가 있습니다. 조급함을 넘어 인내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을 더 많이 닮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다림에 익숙할 때 우리의 마음은 평안해지고 맑아집니다.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기다릴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결국을 보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요시야 왕이 8살 때 왕위에 올라서 개혁 작업에 착수하고 완수하기 위해서 8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분명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길 때까지, 어린 요시야와 그의 주변에서 그를 돕는 동역자들은 때를 기다렸습니다.

성경 예레미야애가 3장 25절과 26절 말씀을 보면 기다림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인생에는 밀물의 때가 있고 썰물의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밀물과 썰물의 때를 아는 사람은 밀물의 때를 만났다고 너무 좋아하거나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곧 썰물의 때가 올 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썰물의 때가 왔다고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머지않아 밀물의 때가 올 줄 알기 때문입니다. 준비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여진 아주 중요한 별명 한 가지가 있습니다.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입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사람들일까요? 주님의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늘 깨어 준비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인지라 마음에 불안이 없을 수 없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하심을 믿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하고만 있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때에, 가장 절묘한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 참 답답하고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지혜를 상실하는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육체도 상하고, 우리의 영혼도 미궁에 빠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존재를 영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의심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심과 회의가 들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과정을 통과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가 철이 들었다는 것은 엎드려 기도할 때와 일어나 행동할 때를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철이 들고 성숙했다는 것은 영적 흐름을 분별할 줄 아는 힘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시야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끌고 가시는 섭리를 영적인 깊은 안목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모든 상황에 대해 준비하고 대안적인 자세를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새로운 사회적 상황과 여건이 계속 펼쳐지고 있습니다. 서로 더 깊이 조력하며,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인내하며 준비하는 지혜자가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온전하게 성취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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