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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과의만남'「열린예배」, 새로운 대안인가?(2)

예배학

by 김경호 진실 2022. 9. 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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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린예배가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2. 열린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3. 기독교의 예배는 원래 열린 예배이다



4. 열린예배의 수용과 적용을 위한 제안







이제 우리는 열린예배를 어떤 방식으로 한국 교회 예배에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은 불신자들만을 위한 전도집회적인 행사(Event)로서 열린예배의 형태와 기존 신자들과 초신자들이 함께 행하는 예배로서의 열린예배, 두 가지 형태에서 우리의 기존 예배를 반성하고, 새롭게 하는 차원에서 그 수용과 적용가능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열린예배의 혼란과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되기를 바란다.







1) 새신자를 위한 전도집회로



미국의 윌로크릭 교회가 행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교회도 초신(불신)자들을 중심한 열린예배를 선교전략적 차원에서 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현재 열린예배 선호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것처럼 이러한 예배가 참으로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다기보다도 복음선교적 관심과 큰 교회의 수적 현상을 유지되게 하기 위한 선교전략적 차원에서, 열린예배의 프로그램은 예배라는 이름보다는 전도집회의 행사(Evangelical Event)라는 면에서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예배를 실행하게 될 때에 나타나는 문제는 미국 교회의 현상처럼 참으로 초신자나 불신자들이 중심이 된 예배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는 새신자들보다 다른 교회의 기존 신자들이 모여드는 예배로 바뀌어질 위험이 있으며, 큰 교회들에는 또 하나의 부별 예배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의 열린예배는 큰 교회나 작은 교회들이 자유로이 교회의 성장과 선교적 관심과 함께 선택하고 적용해야 할 일로 생각한다. 특별히 이러한 적용가능성과 함께 한가지 생각되는 것은 기존 교회는 성장 세대들을 위한 예배를 이미 주일학교에서 허용하고 있으며(어린이 예배, 유아, 유치부 예배), 청소년들을 위한 예배를 교회의 제1부 예배나, 또는 독립된 그들의 예배로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배를 청년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성인 초신자들의 모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2) 기존 예배를 열려있는 예배로



기존 예배가 실제로 세상의 불신자에 대하여 열려있는 예배이며, 누구나 참여하도록 개방된 예배라는 것을 전제할 때 교회의 예배는 참으로 열려진 예배가 되도록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기존 신자들만 모여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예배하는 환경이 되도록 예배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배는 실제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이요, 교제이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대화의 과정이며, 생각과 뜻을 나누는 의사소통의 과정이다. 예배의 순서란 바로 그것을 도우기 위한 수단들이다. 그것이 기도와 말씀 찬송과 고백, 그리고 성례의 관계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는 어느 사이에 새로운 사람들이 전혀 이해될 수 없는, 그리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존 신자만을 중심한 행사로 닫혀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존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언어와 그 동안 반복된 습관으로 예배가 진행되기 때문에 초신자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회의 예배를 완전히 새로워진 개방된 열린예배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존 예배의 변화는 새신자(불신자)들을 중심한 열린 예배를 만들어 시도하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된 모습으로 기존 예배를 열려진 예배로 바꾸기만 한다면 기존 신자와 새 신자의 기존 예배에서의 만남은 더 의미 있는 예배가 될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기존 예배가 새로이 개방된 열린예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 점에서 예배신학적이며, 예배문화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교회와 목회자들이 이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예전 언어로







이러한 변화는 예전 가운데서 행해지는 기도의 언어와 찬송의 시적인 언어의 표현, 그리고 설교의 언어적 표현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다. 대체로 열린예배가 새로운 음악과 가스펠 송을 부르게 함으로 감동과 은혜를 끼친다는 것은 가스펠 송 자체이기보다는 그 찬송의 간결한 시적인 표현과 부르는 자들에게 쉽게 뜻이 전달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찬송에서 뿐 아니라 공중의 기도와 신앙고백, 그리고 설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일차적 과제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성도) 사이의 대화의 과정(Dialogproze)이며, 의사소통의 과정(Kommunikationsproze)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기도와 찬송과 신앙고백과 설교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회중의 두 국면의 의지와 감정을 잘 표현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며, 간구하는 성도들의 하나님을 향한 진솔한 마음의 표현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음악과 잘 어울린 시적 표현의 새로운 가사는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며, 영성의 풍성함과 영적인 치유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신세대들은 옛세대가 표현하여 즐겨 부르던 찬송과 시적인 것보다는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시대에 그들의 경험과 의지와 감정에 맞는 마음을 언어적으로 음악적으로 표현하기를 본성적으로 원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서의 기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배인도자의 기도이던, 대표자의 기도이던 기도의 내용은 순전히 하나님의 마음과 예배에 참여한 회중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기도는 듣는 자의 마음에 공감을 주거나 쉽게 이해된 쉬운 내용의 기도가 언어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때, 회중은 무이해와 무의미를 통한 혼돈과 시간의 낭비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교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하나님의 뜻을 수사적인 기술을 동원하여 모든 백성들이 잘 이해하도록 이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언어적 표현은 필수불가결한 예전의 요소요,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인도자와 설교자와 역할 자들이 바로 이점을 깊이 보완할 때 거기서 예배의 활짝 열려진 모습으로의 산 예배가 기대된다.







예배환경과 시설구조를 변화시켜야







이것은 예배장소와 예배공간과 예배시설에 대한 변화이다. 누구든지 예배실에 들어왔을 때, 아늑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떠나고 싶지 않도록 예배실이 좋은 장소와 공간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처음 온 새신자들에게는 더욱 필수적이다. 지나치게 교회와 예배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적어도 사회문화의 보편적 수준에서 좀더 나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예배인도자와 예배자들 사이의 간격도 좁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예배실에서의 활동과 행위는 진지하고 진실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일치점을 갖게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배의 구조와 시설과 기구의 재조정과 설치가 불가피해 진다고 하겠다. 예배실 구조에 관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배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고 경배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는 예배가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 현재 미국 교회의 열린예배가 보여주는 예배 공간의 모습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드라마나 쇼와 같은 공연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하여 강당이 필요하며, 무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배인도자의 복장이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엄연히 모든 예배의 공간과 예배의 기구들은 삼위 하나님의 상징적인 모습을 중심으로 예전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언어적 표현을 통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예배 환경적인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경험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예배실의 구도와 기구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강대상의 위치가 회중의 자리와의 관계에서 너무 높게 자리잡은 것을 회중과 더 가깝게 간격을 좁혀보는 것과 강대상의 뒷편에 놓은 의자의 위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강대상을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로 상징화한다면 예배하는 회중들만 바라보게 하지 말고, 예배인도자들도 회중의 편에서 강대상을 바라보고 나아가 역할 하도록 자리를 바꾸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성찬을 자주 행하지 아니함으로 아랫강단이 되어버린 위치를 강대상이 있는 자리로 다시 옮겨 성찬을 자주 행하도록 하고, 차라리 강대상은 좀더 높은 위치에 자리하여 설교 시에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보에 실려있는 예배순서에 따라 역할 시에만 역할자가 나가서 수행하고 지나치게 강대상 앞에서 목사가 머무는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예배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상징체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면에 걸어보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쉽게 이해하도록 접근하게 하는 긍정적인 상징물이다.







(3)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체를 적극 활용해야



과학이 만들어 낸 영상매체와 음향기계의 활용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를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현재 미국 교회의 열린예배에 적용하고 있는 드라마의 방법은 역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현대적 방법으로 여겨진다. 물론 예배를 항상 드라마로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 동안 청각사용에 의존된 기본예배의 획일적인 매체사용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새롭다. 그리고 청각사용에만 의존된 예배는 이성적 활동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성작용에 의해서만 무엇을 인식하고 더욱이 믿음(진리-하나님과의 만남)에 도달하려는 종교적 활동은 이제 그 한계를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으로서 감성에 의존된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직관적인 방법은 새로운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현대인들과 신세대들에게 역시 다원적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더 선호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 심리를 간파한 열린예배는 현대적인 과학화 된 새로운 매체들을 활용하여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며, 영상매체와 인터넷의 활용을 통하여 예배의 새로운 도구로 접목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예배를 드라마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도구들을 잘 활용함으로 복음의 의미전달이 더 효과적이라면 그것을 외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예배가 이러한 실제적인 모습으로 변화할 때, 열린 예배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4) 예전 중심의 예배로



내 생각으로는 한국 교회의 예배가 올바른 열린예배가 되기 위하여 이러한 변화 외에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초신자들이 쉽게 더 빨리 기존예배와 교회공동체에 합류하도록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성례(세례와 성찬)를 자주 행하는 일이다. 그것은 듣는 것에만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해하려 했던 지금까지 예배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아들을 통하여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가시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다원적이며, 원천적인 매체로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기 위한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새 신자들이 사모하고 부러워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전략적인 의미에서도 성례는 말씀과 함께 있어야 할 필수적인 예배의 요소이다. 특히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12신조 제9항에는 『령께서 은혜를 베푸는 방도는 성경말씀과 성례와 기도』라고 명시하고도 실제로 예전에서 성례를 자주 행하지 않음으로 신앙성장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 교회의 분열의 원인도 가르침의 일방적이며, 과도한 사용에서 연유하고 있으며, 가르침의 통일성과 표준을 잃어버린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성을 잃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도 여기에 연유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이해하는 한국 교회의 열린 예배는 역시 성례의 새로운 적용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열린예배가 지나치게 말씀 중심예배로만 획일화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지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열린예배를 구현하되 이러한 예전적인 의미를 전제하여 열려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성례의 가치를 새롭게 규명하고 그것을 자주 실천하는 예배의 모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별히 폰 알멘이 말씀과 성찬의 관계에서 『100번의 헌신을 강조하는 설교보다는 한번의 성만찬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 말은 성찬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도록 하는 유명한 말이다. 적어도 한국 교회가 아직 매 주일 예배에 말씀과 성례가 함께 있도록 하기에는 거리가 있다면 적어도 세례와 성찬의 회수가 현재의 년 2회를 극복하고 년 4-6회 정도 이루어지게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 대두된 열린예배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을 피력했다. 엄격하게 말해서 지금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가 행하는 수적 성장의 전도전략을 지향한 방법론으로서 예배까지 도구화하는 그러한 열린예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성경적인 예전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국 교회의 열린예배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 교회의 열린예배는 어쩌면 자유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인과 그 사회와 그 교회의 문화적 환경에 맞는 예배일 것이다. 그것이 액면 그대로 한국 교회의 예배의 전통과 문화 속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예배라고 보지 않는다. 아무쪼록 21세기의 한국 교회의 예배는 목회자 여러분들의 올바른 예배 신학적인 통찰에 의하여 참으로 바람직한 새롭고 열려진 한국 교회의 열린예배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이미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린 우리의 전통적인 예배의 모습을 존중하면서도 내가 제시한 몇가지 점에서의 변화를 시도한다면 지금 우리 예배에 심한 혼란을 주고 있는 열린예배의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고, 오히려 미국 교회가 한국 교회의 예배에서 배워가는 시대를 여는 기독교 영성의 참다운 저력을 갖추게 되기를 간절이 소원한다.

정일웅 교수(총신신대원·실천신학)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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