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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혁(히 9:8~10)

기도

by 김경호 진실 2022. 9. 21. 09:21

본문

진정한 개혁은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10)


채이석 목사(비전교회)
자연계 생명체는 대부분 허물과 껍질을 벗어야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병아리들은 딱딱한 계란 껍질을 벗어야 병아리로 태어납니다. 매미는 십여 년 가까이 나무껍질과 땅속에서 유충으로 있다가 허물을 벗으면 매미로 태어나게 됩니다. 보리새우는 껍질 벗기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데, 어릴 때는 자주 껍질을 벗고 또 쉽게 벗습니다. 그러다가 늙어가면서 껍질 벗기가 쉽지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어느 날 껍질을 벗지 못하면 보리새우는 그 껍질에 갇혀 죽게 된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교회가 변화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스스로 틀에 갇혀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사데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씀으로 새롭게 되지 못하여 생명력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삼 년 가까이 우리를 힘들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교회의 전통과 성장이라는 자랑과 교만의 허물을 벗겨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채찍인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입니다.(엡 2:20) 그리고 개혁주의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단순히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세워서 새로운 교회정치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형태(form)를 성경의 가르침대로 고쳐서 처음과 같은 형태로 다시 세우려고 한(reform) 것입니다.

코로나와 싸우면서 생각해보니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본래의 교회 모습을 잘 지키지 못하고 변형되고 변질되게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세워주셨는데 그동안 우리는 교회를 다른 용도로 잘못 생각하고 영혼구원을 등한히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로 세워주셨는데 코로나19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동안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일에 우선하다가 진리를 사수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세상에 진리의 기준이 되어주는 일을 등한히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으로 세워주셨는데 코로나19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우리가 세상일에 너무 분주하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등한히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민의 기도하는 집”(사 56:7)으로 세워주셨는데 코로나19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우리가 기도하는 일을 너무 등한히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교제 공동체”로 세워주셨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거리두기를 하다가 성도의 친밀한 교제를 등한히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예배드리는 곳”으로 세워주셨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모이기를 폐하는 데 더 익숙하게 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구약시대 제사법으로는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없고,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실 때까지 기다려두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모든 율법과 규례를 완성하시기까지 기다려두게 하신 것입니다. “개혁할 때까지”라는 말씀은 “똑바로 바로잡는 일을 통하여”(디아 오르도세오스)라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우리는 구약의 율법으로는 전적으로 새롭게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36장 26~27절을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새 영을 부어주셔야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세워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form) 이것이 종교개혁(reformation)입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구습에 사로잡히고 전통에 사로잡힌 교회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약속하셨습니다.

참된 개혁은 기존 질서를 뜯어고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이라고 해서 교회를 해체하고 새롭게 세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은 내가 먼저 내 심령으로부터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세기 종교개혁을 혁명(revolution)이라고 하지 않고, 개혁(reformation)이라고 합니다. 혁명은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이고, 개혁은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혁명은 겉을 바꾸는 것이고 개혁은 속을 바꾸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가 부패했으니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리더십이 무능하고 부패했으니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자는 것이 종교개혁의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종교개혁은 우리의 사고의 틀을 시대에 맞추어 바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개혁은 기존 질서를 바꾸라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기존 인물들을 물갈이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얻은 교회가 이제 말씀과 기도의 터 위에 내 심령을 새롭게 세우라는 것입니다. 내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세상이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 10절을 보겠습니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구약시대 제사로는 우리의 양심을 새롭게 할 수 없고,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새롭게 되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나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재창조의 능력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고, 우리가 날마다 성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세상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점점 각박해져 가고, 이웃에 대한 배려의 손을 점점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들려주는 자장가에는 귀를 기울이지만, 교회가 전해주는 좋은 소식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있습니다. 의로운 태양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따뜻한 성령의 바람을 보내주셔야 사람들은 그 심령으로부터 새롭게 되어 무거운 불신앙의 외투를 벗어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처음 열심과 처음 믿음이 식어져가고 있습니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사망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기회입니다. 교회는 환난과 핍박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가장 맑고 순수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해골의 골짜기에 생기가 사방에서부터 불어왔을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의 심령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서 한국교회가 생기를 되찾고 믿음의 사람들마다 마음이 새롭게 되어 마지막 때에 열방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힘 있게 쓰임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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