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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일꾼(행 6:1~7)

교회론

by 김경호 진실 2022. 9. 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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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에 연연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행 6:3) 


채이석 목사(비전교회)
2000년 전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 날 성령강림사건 이후로 부흥이 일어나서 “믿는 자가 많아져서 남자의 수가 약 5000이나 되었더라”(행 4:4)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까지 포함한다면 작은 도시였던 예루살렘에 믿는 자들이 1만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때에는 전교인이 한곳에 모이지 않았고, 주로 흩어져 가정교회로 모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일꾼은 여전히 열두 명의 사도들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이 기도하고, 설교하고, 양육하고, 훈련하고, 심방하고, 구제하고, 봉사하고, 일만 명이 넘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2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오는 모든 문제와 재판의 일을 처음에는 모세 혼자서 감당했습니다. 물론 아론과 미리암이 있긴 했지만, 그의 장인 이드로가 방문해서 모세가 아침부터 재판석에 앉아서 종일토록 백성의 송사문제를 맡아 재판하는 모습을 보고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출 18:17)라고 지적해주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권면하기를,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 18:21~22) 말해주었습니다.

모세는 자상하고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민 12:3) 마음으로는 모든 백성을 다 마음으로 품고 돌봄과 보살핌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혼자서 200만 백성을 다 돌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조언에 따라 모세는 백성들 중 신실한 자들을 택하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효율적으로 백성을 인도했습니다.(출 18:21~22) 공동체가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면 좋은 일꾼들을 제때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가 급성장해서 많은 일꾼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만 설교하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양육하고, 훈련하고,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드로의 조언을 받기 전 모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양육훈련 받은 제자들일지라도 열두 사도들만 교회의 모든 일을 맡아 했을 때 교회 안에 사도들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하는 목양의 사각지대가 나타났습니다. 교회 안에 구제하는 일에 원망과 시비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도, 현실적인 문제로 마음에 시험이 들 수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유무상통한 교회였지만(행 2:44~45), 외국에서 살다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보니까 헬라파 과부들이 교회에서 제공해주는 “매일의 구제”(the daily distribution of food)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고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지만, 본토박이 유대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해외에서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거주하는 유대인도 많았습니다. 본토박이 유대인들은 본문에서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하고, 해외에서 살다가 온 유대인들을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에서조차 차별대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일꾼 일곱을 세우기로 하여 우리가 아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공동의회에서 선출하였고,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재정과 구제와 봉사의 일을 하게 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행 6:3)을 선출하였고,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교회에 충성스러운 일꾼을 세워서 서로 짐을 나누어 질 때(갈 6:2) 교회에 돌봄과 보살핌과 같은 목양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곱 일꾼을 가리켜 ‘집사’(deacon)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사도행전 6장의 ‘일꾼’이 오늘 교회가 안수하여 세우는 안수집사와 같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집사’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놓고(행 6:2) 그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고 말했습니다.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성직 본연의 사명과 임무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주었습니다.(행 6:4)

사도행전에는 ‘집사’라는 말이 사도행전 21장 8절에 단 한 번만 나옵니다. 우리가 이 일곱을 지금의 안수집사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재정, 구제의 일을 맡았지만, 그들이 한 일은 사도와 같은 일을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사도와 같은 능력의 설교자로 쓰임 받았습니다.(행 7장) 빌립은 유대인 사도들이라도 꺼리는 사마리아 성에 가서 능력의 전도자로 쓰임 받았고(행 8장), 사도 바울의 훌륭한 협력자였고, 평생을 전도자로 쓰임 받았습니다.(행 21장) 재정과 구제보다는 사도들의 일을 나누어 함께했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사도들의 짐을 덜어서 사역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직분자들이었지만 그 명칭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역은 분명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직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직분만 받고 그 직분을 땅에 묻고 평생 살지 말고, 직분이 없어도 일꾼으로 섬긴다면 거기에 열매가 있고,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6장을 보면서 어떻게 하루아침에 성도들 가운데 분열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그들은 오순절에 다함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한몸 공동체 됨을 확인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령충만했어도 원망과 시비는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은혜가 충만했다고 해도 12명의 사도가 1만 명이 넘는 큰 교회공동체를 다 돌아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일꾼입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일꾼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권면하기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일곱 명 교회의 일꾼을 세우고 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6:7) 교회는 짐을 함께 지는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7장과 8장을 보면 이전에는 사도들의 몫이었던 복음 전도와 설교도 이 일곱 명 교회의 일꾼들이 함께 감당하게 되어 교회가 더욱 힘 있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 같으면 사도들이 설교하다가 체포되어 공회에 잡혀가게 되면 복음전도가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스데반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 함께 사도들의 짐을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함께 짐을 나누게 되니까 감당할 짐이 줄어들게 되었고, 복음은 점점 더 힘 있게 확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일곱 일꾼과 같은 분들이 필요합니다. 직분을 받고 그 직분을 숨겨 놓는 ‘장농 면허증’과 같은 직분자가 많으면 주님이 명하신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교회의 직분들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일꾼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성도’(saints)라고 불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제자’(disciples)라고 불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자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인’(christians)이라고 불렸습니다.(행 11:26)

사도행전 6장 7절을 보니까 교회에 일꾼이 세워진 후에 교회는 달라졌습니다. 첫째로 말씀이 왕성하게 전파되었습니다. 둘째, 교회가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골수 유대교 제사장들까지도 회개하고 주께로 나아왔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처음교회처럼 교회의 일꾼들이 많이 세워져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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