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의 사훈(社訓)의 첫 번째는 ‘개혁신앙의 보수(保守)’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신문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입장에서 그동안 가장 중요한 사명에 충실했는가 자문해 본다.
혼란 남긴 로잔대회 이은 WEA 총회 추진
얼마 전에 있었던 로잔 한국대회에 대해 한국교회에선 강력한 우려와 함께 신학적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김종혁 총회장과 총회준비위원회는 본 교단 총회와 같은 시기에 개최된 로잔 한국대회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종교다원주의와 신사도운동, 성경관과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확실히 밝히고, 우려스럽긴 하지만 로잔대회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이처럼 큰 우려 속에 로잔 한국대회는 마쳤다. 대형교회와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로잔 한국대회가 과연 한국교회와 우리 교단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신중하게 진단해 보아야 한다. 무조건 문제가 심각하다는 편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편, 양쪽 다 사실을 확인하고 신학적 근거가 있는 정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지금도 교단에 소속된 많은 목회자와 교회가 혼란스러워하는 게 사실이다.
이런 갈등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WEA(세계복음주의연맹, World Evangelical Alliance) 서울총회 준비위원회가 지난 15일 출범 감사예배를 드렸다. 우리 교단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이렇게 준비에 들어간 내년 WEA 서울총회는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 교단은 얼마 전까지 수년에 걸쳐 WEA 참여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위키백과 사전은 WEA를 정의하기를 ‘1846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신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연합체이다’라고 쓰고 있다. 박형룡 박사는 그의 책에서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임을 천명했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비웃는 근본주의가 아니다. 칼빈주의에 입각한 보수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 신앙이다.
‘WEA 서울총회’ 신학논쟁 재점화 우려
WEA 참여 여부는 손대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와 같다. 이와 관련해 본 교단 신학자들조차도 양쪽으로 나뉘어 끝없는 논쟁의 장이 되었다. 결국 지난 2021년 본 교단 총회는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결의를 유보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것을 권고”한 정치부의 제안대로 결의한 바 있다.
그런데 금번 사랑의교회가 2025 WEA 서울총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지원하는 형식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교단 내에서 유보적 결론으로 겨우 봉합해 둔 WEA 논쟁에 다시금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크게 우려가 된다. 벌써 광신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 목회자들은 연대해 WEA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각 기독교계 신문에 수천명의 이름으로 WEA 서울총회 반대 성명서를 대대적으로 게재하는 실정이다. 다만 반대 측도 신학자들이 중심이 돼 좀 더 정확한 팩트와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교단이 고립주의에 빠지는 것은 절대 원치 않는다. 물론 세계교회 속의 한국교회 위상을 높인다는 주장처럼 WEA 총회의 유익한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학과 신앙을 흔들 수 있는 요소가 있음도 고려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WEA 총회를 굳이 유치하고자 한다면 그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 WEA 서울총회 조직신학 분과위원인 김재성 박사조차도 WEA 리더십의 신학적 문제에 우려를 표명하고 검증하겠다고 한다. WEA 서울총회가 한국교회에 무엇이 유익인지, WEA를 둘러싼 신학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도 밝혀야 한다.
또다시 우리 교단을 논쟁의 불구덩이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교단 분열의 씨앗을 다시 심어서는 안 된다.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우리 교단이 세계교회 속에 신선한 보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연합을 주도해 나가면 어떨까. 이런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는 자랑스런 칼빈주의에 입각한 보수 개혁주의 청교도신앙의 교단이다.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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