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던 시간을 사는 것이고,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야 어찌 되었든, 새해는 다르고 새롭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새해를 주신 하나님 앞의 바른 자세이자 소명이다. 다를 것 없다거나 자신의 부끄럽고 어리석었던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며 추스르지 않는 자는 새해의 은총과는 거리가 멀다. 새해에 대한 진솔한 감사와 잘못에 대한 뼈를 깎는 아픔을 가질 때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는 다시금 우리를 꼼짝 못하게 했다. 나라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막을 수 없었는가? 피할 순 없었는가?” 함께 애도하며 혼란과 위기를 마주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 나라의 위신과 체면은 곤두박질쳤다. 끔찍한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온 국민은 큰 상처와 함께 가슴이 무너진다. 이렇게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러운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가. 그렇다면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세상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졌고 진행되고 있는가. 위중한 상황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났는데 기도와 예배만 하면 될까.
물론 어떤 경우에도 예배하라 하셨지만, 예배만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기도하라 하셨지만, 기도만 하라 하지 않으셨다. 교회에 나오라 하셨지만, 교회만 나오라 하지 않으셨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편협하지 않아야 한다. 성숙한 신앙은 세상에 오신 예수만큼 이해와 수용의 폭이 깊고 커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가 전부인 것처럼 고집할 수 없다. 하나님의 부정과 긍정, 사랑과 정의를 모두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잘못된 것, 나쁜 짓, 못된 일에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비판해야 한다. 비상계엄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두려운 엄청난 일을 벌여놓고, 스스로 죄송하고 잘못했다고 인정해 놓고는 말을 바꾸었다. 책임을 지지 않고 온갖 변명으로 정당하고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상황에 기독교는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정부나 권력자들이 기독교나 교회를 쉽고 함부로 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양심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목숨 걸고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 교회가 권력의 하수인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너무나 부끄럽고 잘못됐다. 자비를 베풀며 기도해야 할 대상으로는 얼마든지 편하고 쉽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과 불의를 일삼고 잘못과 불법을 저지를 때는 하나님처럼 엄하고 무섭게 비판해야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가오 떨어지는 짓 좀 하지 말자.” 일본말이 사용돼 맘에 안 들지만 영화 ‘베테랑’에서 서도철 형사가 한 말이다. 역으로 한국교회는 돈은 있는데 가오가 없는 것 같다. 예수는 정말 자존심,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최고였다. 교회가 가난해도 이런 존재감과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나 경제인, 사회 지도자들이 어려운 상황일 때 반드시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새해엔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 뿐 아니라 더 성숙하게 나아져야 한다. 지금의 혼란과 아픔이 꼭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정치와 종교는 모든 국민이 고루 잘살고 평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쉽고 대충 하는 자비와 용서도 아니고, 무조건의 심판과 정죄도 아닌 그야말로 정직하고 옳게 해결해 나가는 개인과 집단의 진보가 따라야 한다.
2025년이라는 새해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잘못된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상처와 아픔은 살뜰히 챙기고 살펴 아쉬움과 서운함이 없도록 품어야 한다. 새해를 산다는 건 어제의 연장이 아니라 달라진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다.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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