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이 사건을 두고 여당에서는 국격이 무너졌다고 했고 대통령은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했으며 극우파 목사와 유튜버는 순교를 들먹였다. 물론 그보다 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의 구속으로 오히려 국격과 법질서가 회복됐다고 여기며 극우 집회 참석자들의 소란에 눈살을 찌푸린다.
‘국격’이란 사람마다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그에 걸맞은 품격이 있듯 나라에도 그 나라의 수준에 부합하는 품격이 있다는 생각에서 쓰이는 용어다. 그런데 현대정치의 측면에서 이 국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민주정치의 성숙도일 것이다. 국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이와 같은데 대통령의 구속이 곧 국격의 추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은 물론 나라와 국민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 대표성은 그가 대표다운 행위를 할 때에만 인정된다.
정치 지도자가 지도자의 위상에 부합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군주제 아래에서도 요청되던 윤리였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했다. 맹자는 공자의 이 사상을 계승해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더는 임금이 아니니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도 된다는 혁명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교 사회에서도 폭군을 끌어내렸다고 해서 국격이 훼손된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할 때 대통령 구속을 국격의 추락이라 평하는 여당 정치인의 언사는 전근대 유교 지식인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퇴행적이다.
일부 기독교 목사의 행위는 더욱 개탄스럽다. 정치 지도자가 무도한 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군대를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는데도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옹호하고 지지하는 목사가 적지 않다. 이들 목사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띠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혐오하는 일에 그 누구보다 앞장선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관점이나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과 슬그머니 뒤섞어 성경적 관점에 근거한 정치적 견해라 주장하고 신도들을 편향된 길로 오도한다. 교계 내부에서조차 교회가 극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정도다. 무릇 종교다운 종교라면 약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사회적 정의를 잘 분별하며 사회적 갈등과 싸움이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기독교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췄다고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일부 목사는 사회적 혐오와 불의와 갈등을 부추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밖에 유튜브로 대표되는 개인 미디어 운영자 가운데 극우 유튜버들도 대한민국 언론의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자극적인 언설로 떼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숨긴 채 이들은 극단적인 정치적 편견에 기초해 망상으로 구성한 가짜 뉴스를 매일 쓰레기처럼 쏟아낸다. 이들은 전통 언론매체를 불신하도록 선동하며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깊이 숙고하는 데 미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여론을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요컨대 극우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이야말로 오늘날 국격을 추락시키는 장본인이다. 보수정치가 극우에 휘말리지 않고 그 보수주의의 건강성을 회복할 때 국격은 회복될 것이다.
황종원 단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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