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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토스 목사인가?

목회

by 김경호 진실 2025. 8. 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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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 있다. 오늘도 역사한다. 그런데 설교는 힘이 없다. 들리지 않는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분명 살아 있는 말씀인데, 죽은 것처럼 힘이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로고스가 빈약해서가 아니다. 에토스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신뢰가 무너진 설교자의 설교는 공허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설교자의 삶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세 요소로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를 말했다. 로고스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이성’을 뜻하고, 파토스는 확신과 열정과 같은 ‘감정’을 뜻하며, 에토스는 바로 신뢰받는 ‘인격’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는 단지 고대 수사학 이론이 그치지 않는다. 로고스는 논리학, 파토스는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 에토스는 윤리학과 리더십 이론으로 확장되며 오늘날까지 인간 설득의 기본 구조를 이루기에, 설교자에게는 단순한 수사기법이 아닌 사역 전체의 기초 원리로 여전히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를 설교로 적용하면, 로고스는 설교 원고, 파토스는 설교자의 심장, 에토스는 설교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로고스는 입에서 나오고, 파토스는 가슴에서 나온다. 그러나 에토스는 인격과 삶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삶이 무너지면 설교는 무너지는 것이다. 에토스가 무너지면 설교는 ‘말’일뿐 ‘말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설교가 무기력한 이유는 삶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신뢰의 전염병’이다. 믿음을 말하는 자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그것이 교회의 위기, 설교의 위기이다. 사람들은 이제 말보다 사람을 본다. 신뢰하는 사람이 말하면 믿고 따른다. 그러나 신뢰에 금이 간 사람이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 말이 믿어지지 않기에 마음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설교가 설득력이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련된 문장이 아니다. 정직한 인격이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이상적인 설득이 되려면, 로고스:파토스:에토스의 비율이 1:3:6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90%가 감정과 인격이고, 단 10%만이 말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말은 오늘 강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설교의 힘은 이성의 논리나 감정의 울림보다, 설교자의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다. 설교에 로고스가 없다면 교인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지만, 에토스가 없다면 마음을 닫게 된다.

결국, 설교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다. 설교는 이론이 아니라 체온이다. 강단에서 말하는 사람보다, 그 말대로 살아낸 사람의 무게가 설득력을 주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왜일까. 결코 말씀 때문이 아니다. “말은 잘하는데, 말은 은혜로운데, 목사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한 목사님은 왜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이 물음 앞에, 나는 설교자이기 전에, 에토스 목사인지 물어야 한다. 실력 있는 로고스, 탁월한 파토스, 그게 설교의 전부일 수 없다. 그 설교를 살리는 것은 신뢰이다. 신뢰는 설명으로 얻는 게 아니다. 일치된 삶으로만 얻을 수 있다.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을 통과한 진리다.” 19세기 필립스 브룩스의 말이다.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는 영국의 찰스 스펄전 목사도 말했다. “가르치는 말과 본이 되는 삶에 다 능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후자에 더 능해야 한다.” 즉, 에토스가 없는 목사는, 말로만 떠드는 외침이고, 심지어는 혐오감을 주는 소음일 뿐이다. 로고스가 아무리 날카로워도 에토스가 금이 가 있으면, 그 설교는 들리지도 믿어지지도 않는다.

지금 이 시대는 목사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 사회이다. 다시 말해, 에토스가 무너진 현실이다. 교회가 신뢰를 잃고, 목사가 조롱당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향한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에토스 목사인가?” 로고스에 강한 목사도 많고, 파토스에 능한 설교자가 많은데, 정작 에토스로 그냥 설득되고, 에토스로 삶이 설교가 되는 목사도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동역자여, 설교를 바꾸려 하지 말고, 설교자를 바꾸라. 설교의 위기는 곧 설교자의 위기이다.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목사는 잘 말하는 목사가 아니라, 그 말대로 사는 목사이다. 에토스가 회복될 때 설교는 다시 들릴 것이다. 말씀은 다시 생명력이 있고, 심령을 흔들 것이다. 그리고 무너졌던 교회의 신뢰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로고스 이전에, 에토스를 회복해야 한다. 묻고 또 물어라. 나는 에토스 목사인가?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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