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7시 30분쯤 제주4.3평화공원 앞 도로에 서청 단원들이 탄 승합차가 도착했다. 그러자 제주시민사회단체가 차량을 막았고, 양측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출동했다.
오전 8시 40분 제주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로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던 서청 승합차는 유족회의 설득으로 행사장 앞 도로에서 떠났다. 그러나 서청은 과거 서청 사무실 터와 제주시청 앞에서 계속 집회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제주에 상륙한 서청, 그들의 끔찍한 만행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는 서청의 만행과 횡포는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무전취식은 기본이며 이승만 사진과 태극기 등을 강매하며 돈을 뜯어냈다. 4.3사건 당시 고성리와 난산리 주민 33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서청의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 강매를 거부한 고성리 청년들에 대한 보복 학살이었다
서청은 처녀를 겁탈해 현지처로 삼거나 배급 식량이나 구호 물품을 제멋대로 가져가기도 했다. 구호 물품을 더 달라는 요구를 제주도 총무국장이 "서청은 구호 대상이 아니다"라며 거부하자 린치를 가해 그를 죽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적산가옥을 통째로 갖기 위해 제사상에 오줌을 떨어뜨리고 이를 항의하는 집주인을 폭행하기도 했다. 서청은 당시 제주의 유일한 신문이었던 <제주신보>도 강제로 접수했다.
서청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유일한 논리는 '빨갱이'라는 말이었다. 서청 제주도위원장 안철은 "제주도는 한국의 작은 모스크바"라며 방첩대에 이를 입증하겠다고 했다.
서청의 '빨갱이 척결'을 받아들인 이승만과 미국은 이들을 경찰과 군인으로 만들어줬다. 로버츠 미 군사고문단장은 한국군 3개 대대를 주로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충원시켜 강경진압작전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4·3 사건 당시 조천지서 앞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사건은 서청 출신 '응원 경찰'이, 성산포 터진목 집단 학살은 서청 단원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가 벌인 만행이었다.
서청은 민간인 학살, 중산간 초토화 작전, 예비 검속 등을 주도했고, 제주 도민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 갔다.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는 서청 출신이다. 안두희는 월남 후 서울에 온 지 석 달 만에 서청 부위원장인 김성주와 만나 서북청년회 서울 본부 직속인 종로지부의 사무국장이 됐다.
당시 김성주는 "이승만의 지시를 받아 내가 안두희를 시켜 백범을 죽였다"고 자랑하고 다녔고, 심지어 안두희 공판일에는 법원 앞에서 '안두희는 민족의 영웅'이라는 전단을 살포하며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4년 배성관 당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장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글을 올렸다. 1949년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옹호했던 서청 김성주의 주장과 똑같다.
서청은 정치 깡패를 넘어 테러 조직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암살과 기습 사건 등을 주도한 집단이다. 이런 테러 조직을 후원한 것은 이승만과 친일 기업, 우익 정치인들이었다.
이런 날에 서청이 제주에 왔다는 것은 제주도민에게는 아픔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잔인한 일이다. 특히 서청은 유족회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들은 '화해와 상생을 위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믿기는 어렵다.
정함철 서청 구국결사대장은 제주에 오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좌익해방구의 심장부에서 휘날리는 서청의 깃발 아래 어떤 역사가 쓰여지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서청과 대화를 나눈 유족은 "내 아버지도 서청의 강압적인 요구를 거부하다 끌려가 사흘 동안 매를 맞았다"면서 "오늘만큼은 서청 깃발이나 퍼포먼스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부탁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여전히 '빨갱이 척결'을 '애국'으로 생각하는 극우 집단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4.3 희생자 추념식에 다시 나타난 서북청년단...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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