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교수(합신 조직신학, 본보 부주필)
[124문] 셋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뜻을 버리고, 유일하게 선한 주님의 뜻에 어떤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신의 직분과 소명을 하늘의 천사들처럼 기꺼이 그리고 신실하게 수행하게 하옵소서”란 뜻입니다.
3) “유일하게 선한 주님의 뜻에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되는 때는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즐거이 그 뜻에 순종할 때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이 드러나는 때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입니다.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
그런데 오늘날은 “주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분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매체들이 각종 정보와 판단을 끊임없이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세계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시대에 속을 뿐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도 속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마침내 그것을 행하게 되기 쉽습니다. 알고리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우리에게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즐거이 묵상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서가 묘사하듯, 우리의 삶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은 때로 버겁고 고통스럽습니다. 때로는 고난과 인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알았기에 하이델베르크의 선조들은 굳이 “불평 없이”라는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그 순종 자체가 이미 복이며, 그는 약속된 것을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양식이라 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걷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힘입니다.
4)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신의 직분과 소명을”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면서도, 이것을 자신과 상관없는 간구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간구는 주의 뜻을 실제로 수행하려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내게 주신 직분과 소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가?” 자신을 살피며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1563년 제정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는 팔츠 지역 교회에서 실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교회법은 매주 일정 분량을 낭독하여, 1년에 다섯 차례 전부를 반복하게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매번 마칠 때마다 각자의 소명을 확인하는 낭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낭독에는 목사와 장로, 집사와 같은 교회 직분자뿐 아니라, 통치자와 관원,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젊은이와 자녀, 주인과 종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소명이 성경 말씀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주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자기 소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직장에서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와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매일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자리—가정이든 직장이든, 혹은 관계 속이든—그곳에서 우리는 주의 뜻을 이루어 가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체로 힘겹고, 때로는 안타깝습니다. 어떤 이는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어떤 이는 가정 안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힘듦이야말로 이 간구를 더욱 간절히 드려야 할 이유가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성취되기를 간구하는) 아버지의 뜻은, 바로 각자의 자리에서 그 뜻을 수행하는 우리 안에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 16:10)라고 하셨으니 여기서 예외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것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와 직업에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다면, 이 땅이 누릴 하나님의 공의와 풍요가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https://www.re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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