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교수(합신 조직신학, 본보 부주필)
[124문] 셋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뜻을 버리고, 유일하게 선한 주님의 뜻에 어떤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신의 직분과 소명을 하늘의 천사들처럼 기꺼이 그리고 신실하게 수행하게 하옵소서”란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른 후 아버지에 관한 세 가지 기도를 합니다. 곧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을 구합니다. 이 모든 간구가 우리 하늘 아버지에 관한 간구로서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면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관한 간구는 우리의 최고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찬송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에 관한 간구는 교회를 모으시고 지키시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려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대한 간구는 우리가 각자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구하는 기도
“뜻이 이루어지이다”는 간구에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이 간구를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하면서 그저 체념의 말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뜻대로 될 것이니 그렇게 되겠지요”라는 식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자칫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핑계로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는 불신앙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성취하는데 능력이 부족하여 내 기도를 보태겠다는 방식으로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이 간구를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의 찬송이 하나님의 자존하시고 자충족하시며 무한하신 영광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간구는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을 핑계 삼아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에서 빠져나오는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구하는 간구입니다. 작정하신 뜻은 명령하신 뜻과 모순적이지 않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에서 오는 것임을 우리로 인정하게 하고 주의 자녀로서 응답해야 합니다. 곧, 우리는 역경에 대해 인내하고, 형통에 감사하며, 미래에 대하여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28문). 예를 들어, 바울은 예루살렘에 내려가게 되면 결박당하고 환난을 겪게 될 것이 작정되어 있는 줄 알면서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예루살렘에 내려가기로 결단하였습니다(행 20:22~24, 21:13). 바울을 말리던 이들이 바울이 권함을 받지 않자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인정합니다(행 21:14). 주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작정된 고난이 있다 해도 바울은 명령하신 뜻을 따라 그 길로 걸어가는 것이며, 바울의 동역자들도 주님의 작정하심을 결국 인정하며 복종합니다.
(2)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고”
우리는 자신의 안락과 영광을 구하며, 우리 자신을 위한 뜻을 고집하기 일쑤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본성적으로 악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의 뜻을 좋아하지 않으며 거스릅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우리의 뜻과 욕망과 성향을 고집하기를 즐겨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마 16:24).
요리문답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뜻을 버리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도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전 12:13). 우리가 우리의 고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가장 큰 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복되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데에는 우리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성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아서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 자신의 뜻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우리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즐겨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신자의 완전한 영화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완전히 일치될 때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그 나라를 살아갑시다.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https://www.re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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