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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7:1-20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자" (고재수)

고재수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10. 5. 18. 12:33

본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자

(왕하7:1-20)

고재수 교수



솔직히 말하면 저는 먼저 한 가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의 본문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저의 호기심 때문입니다. 이 본문은 무엇 때문에 성경에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특별히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앞부분입니다. 문둥병 환자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 부분은 단지 이야기의 한 요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요소일 뿐이라면 저자는 한 문장 안에서 문둥병 환자 네 사람이 아람군대에 가서 아람사람이 다 나간 것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에 대한 부분이 7장 전체에 걸쳐서 길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이 전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가 이렇게 생각하여 적용할지도 모릅니다. 즉 문둥병 환자는 구원에 대한 좋은 소식을 받았으며 이처럼 우리도 구원에 대한 좋은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둥병 환자는 그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잘못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또 마침내 그들이 구원에 대한 소식을 전달했던 것 처럼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가 적용점이 많지만 그 적용에 있어서 문제가 생깁니다. 즉 그같은 적용은 본문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적용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요소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왕과 엘리사 사이의 투쟁이 핵심적인 것이지만 그렇게 적용한다면 본문에서는 왕과 예언자가 전혀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또 이 이야기에서는 발견자가 문둥이라는 사실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만 적용에서는 이 사실도 무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흐름과 목적에 맞게 문둥이에 대한 적용을 찾아야 합니다. 이 주된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왕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 지파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아람군대에 의해 포위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튼튼한 돌담과 성채를 가졌기 때문에 아람군대도 직접 공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람왕이 사용한 방법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그 사람들을 굶겨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식량이 다 떨어지고 기근은 심해갔습니다. 사람들은 먹지도 않는 것을 먹어야 했고 그것도 아주 비싸게 팔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는 자신의 아들을 잡아 먹자고 했습니다(6장) 이같은 사실을 들은 왕은 이 모든 것이 예언자 엘리사의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 재앙이 여호와에게서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라고 했습니다(6:33). 이 때 엘리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을 받고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1절)

자 그러면 이 예언이 성취될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는 것은 보통때는 비싼 것이지만 이같은 기근때는 싼 것입니다. 그리고 고운 가루와 보리가 사마리아 성문에서 팔린다는 것은 매매가 재기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내일까지는 성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설사 아람군대가 내일 떠난다고 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파괴된 밭들에서 곡식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운 가루와 보리가 내일 사마리아 성문에서 매매된다는 것은 성취될 수 없는 예언인 것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예언을 들은 중 한 사람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일이 있으리요’ 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바로 이때 성경은 문둥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제 그 사실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다만 몇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적하겠습니다.



첫째 문둥이들은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중에 있을 수 없고 따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 문둥이들은 사마리아 성밖에 따로 살다가 아람군대 때문에 이제 성벽 근처로 와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먹을 것을 받기 위해 성한 사람들의 도움에 의지했지만 그들도 식량이 없기 때문에 문둥이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보다 희망이 더 없는 문둥이들이 결과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보다 더 먼저 먹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문둥이들은 아람군대의 진으로 갔을 때 거기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장막 저 장막에서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무료로 말입니다.



세 번째 그들은 먹는 것 뿐만 아니라 금,은,옷도 가졌습니다.



이 세가지는 다 엘리사의 예언보다 놀라운 것입니다. 1)백성이 2)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보다 1)문둥이들이 2)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이 돈을 냄으로서 곡식을 산다는 예언보다 문둥이들이 무료로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백성이 먹을 것을 살 수 있다는 예언보다 문둥이들이 곡식뿐 아니라 금,은,옷까지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사가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내일 먹을 것을 살 수 있다고 한 말을 믿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문둥이들도 먹을 수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일도 사실임이 판명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예언보다 더 어려운 것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러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문둥이들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지만 백성은 나중에 알게 되었고 성경은 이를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이는 주께서 아람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소리를 듣게 되었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백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람 군대들은 어떻게 해서 도망갔습니까? 전쟁을 한 다음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그 소란은 소리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 소리 때문에 아람 사람들은 도망한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해방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은 소리와 그로 야기된 혼란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군대의 소리가 들리게 하심으로 아람군대들이 그들의 모든 소유를 사마리아 성 앞에다가 팽개쳐 두고 도망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과 많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내일이면 너희가 먹을 것을 살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문둥이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것보다 더 큰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수단은 단지 큰 소리를 들리게 하신 것입니다. 아주 쉬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단지 그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만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도 이것을 잘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읽을 때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겠습니다. 예는 인구폭발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는 이 인구폭발을 많이 경계합니다. 이 때문에 항상 가족계획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같이 인구폭발에 대해 사회가 경계하게 된 것은 오늘날의 세상이 그 많은 인구들을 먹이고 생활하게 하는 데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창 1:18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창 1:18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시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만 생각하는 잘못입니다. 이같은 방식에서 우리는 바로 그 왕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스라엘 왕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잘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해서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 문둥이에 대한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은 예언된 본문보다 더 놀라운 것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처럼 왕은 문둥이들을 통하여 이미 아람 군대가 도망갔고 거기서 문둥이들이 음식을 먹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그소식을 들었을 때 신하들은 기뻐했을 지 모르지만 왕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적의 작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아람 사람들이 성안에 기근이 심한 것을 알고 도망간 것처럼 하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나올 때 갑자기 공격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를 유인하는 작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그럴 듯 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싸움에서도 이런 작전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아이성을 점령할 때의 작전입니다. 아람 군대도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사마리아 성을 점령하기 위해 이런 작전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같은 왕의 설명은 잘 꾸며진 것이지만 사실 죄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설명은 하나님의 예언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적의 포위가 풀리고 곧 먹을 것을 살수있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왕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왕은 전쟁에는 익숙하였지만 믿음이 없으므로 그것이 다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왕의 말대로 했더라면 다음날에도 여전히 두꺼운 성벽안에 머무르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때 왕의 신하중 하나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온백성이 다 나갈 필요가 없고 일단 몇 사람만 보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적진의 상황을 살펴보게 하여 그에 따라 행동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정탐꾼을 내보냈고 그들이 돌아와 아람군대는 도망가고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까지 가봤으나 버려진 옷과 무기만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로서 왕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는지가 드러났습니다. 왕이 생각했던 적의 작전은 그럴듯한 것이었지만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생각과 지혜는 오히려 어리석은 것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전능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은 일상적인 것을 초월해서는 전혀 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어떤 위험때문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말한 세상은 인구로 가득차 있다는 식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는것처럼 말할 학문적인 좋은 이유들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족계획을 위해 학문적인 이유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전능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어리석은 것임이 밝혀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이 세상의 모든 수단을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의 학문을 신뢰하는 사람은 마침내 어리석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은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본문에 나오는 세 번째의 사건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리에 의해 밝혀진 장관의 사건입니다. 그가 왕과 함께 엘리사의 집에 갔을 때에 그는 내일이면 백성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엘리사의 예언을 믿지 않았는데 그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엘리사의 예언을 욕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의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창이란 표현을 특히 비가 올 때 사용했습니다. 하늘의 창이 열린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장관의 말은 하늘에서 곡식에서 비오는 것처럼 내려와야 하는가 라는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같은 것을 못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이시라면 지금 상황에서 곡식이 비오듯이 내려오게 하실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은 다른 방식을 사용하십니다. 장관은 전혀 생각치 못한 방법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고에 제한되는 분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욕하는 사람은 또 하나의 예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즉 그는 고운 가루와 보리가 매매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아람 군대가 식량과 모든 소유물들을 남겨두고 도망갔다는 소식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곧 성문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중에 장사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적진에서 빨리 식량을 가져와 성문에서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성밖에 적진까지 가려고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몸이 약해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성문에서 곡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성문에서 말하는 곡식의 값은 바로 엘리사가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보통의 값도 아니고 조금 비싼 것이지만...



그리고 왕은 장관을 세워 장사의 질서를 잡게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 때문에 장관에 대한 엘리사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즉 장관은 매매하는 사람이 값을 외치는 것을 들은다음 사람들에게 밟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예언을 욕했기 때문에 사마리아 성의 예언을 듣고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왕과 백성과 우리도 엘리사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비웃는 것이 참으로 위험한 것임을 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이 세상에는 인간에 대한 가능성이 한층 많아졌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발전되었고 기술적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인간의 발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은 거의없다 그리고 지금은 못하는 것을 십년후에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 할 수 있다’ 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까지만 행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일은 계몽되지 못한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비웃는 것은 실로 위험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면서도 그것을 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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