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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룩스 (Thomas Brooks, 1608?-1680)

토마스 브룩스

by 김경호 진실 2010. 8. 1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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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룩스가 이 세상에 남겨 놓은 메시지들의 풍부함에 비할 때,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적다. 토마스 브룩스가 영국 어느 주, 어느 마을에서 출생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1606년에서 1608년 즈음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어떤 가정 환경에서 양육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의 유년기는 어떠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우리가 기록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최초의 것은 그가 캠브리지에 있는 임마누엘(Emmanuel)대학에 다녔다는 것이다. 당시 임마누엘 대학은 아주 탁월한 청교도 대학이었다. 학적부 기록에 의하면 브룩스는 1625년 7월 7일에 입학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가 얼마 동안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또 언제 대학을 떠났는지에 관해서는 또 다시 알 수 없다.

 

틀림없는 것으로 확증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아무리 늦어도 1640년에는 복음을 설교하는 목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1653년에 출판된 '여러 가지 사례에 대한 심사 숙고'(Cases Considered and Resolved)에 보면, 그가 지난 13년 동안 설교 사역을 감당했다고 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브룩스가 런던에서 사역을 하기 이전에 군종의 자격으로 해군에 복무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혹 토마스 브룩스가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마다 언뜻언뜻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처럼 말하는 부분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1648년까지 그는 런던에 있는 '사도 도마 교회'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652년에서 1653년 사이에 브룩스는 사도 도마 교회에서 휘시 스트릿(Fish Street)에 있는 마가렛 교회로 사역지를 옮긴다. 새로 옮긴 사역지에서 브룩스의 설교 사역은 왕성하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마가렛 교회에서 브룩스가 행한 설교들은 다음과 같다. 1652년에는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보배로운 방법들'을 설교했고 1654년에는 그리스도인의 확신 문제를 다룬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을 1657년에는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 황금 사과, 진주 목걸이'를 강론했으며, 1660년에는 '말없는 그리스도인, 성도의 죽는 날은 그 인생의 최고로 좋은 날'을 강론했다.

 

그러나 1662년 대추방에 의해서 그는 마가렛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마가렛 교회를 떠나게 될 때 그에게는 이미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수년 전에 결혼한 바 있고, 자녀들의 유무도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양심을 위해서 영국 국교회의 탄압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그 어떤 난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는 복음을 설교하며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다.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 아래로 몰려 들었고, 그가 출판한 설교집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되었다.

 

1662년에는 '기독교의 면류관과 영광'(Crown and Glory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이 나왔고, 1665년에는 '천국문을 여는 은밀한 열쇠'(Privy Key to Heaven), '역병에 대한 천상의 위로'(A Heavenly Cordial for the Plague)라는 책이 나왔으며, 1669년에는 '여러 가지 보석을 넣어둔 장식장' (Cabinet of Jewels) 라는 책이, 1670년에는 '런던애가' (London Lamentations)라는 책이, 그리고 1676년에는 두 권의 '황금 열쇠' (Golden Key)와 '천국에 관하여' (Paradise Opened)라는 책이 나왔다.

 

정말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에 매진했고, 그의 온 생애는 거룩한 헌신으로 불타오르는 생애였다. 런던에 역병이 돌 때도 그는 자신의 사역지를 떠나지 않았고, 런던에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도 자신의 사역지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연륜이 더해갈수록 그는 원숙해졌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흡입하며 끌어당기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강론들이 그 증거이다. 그가 사역의 현장에서 누렸던 하나님의 복들은 그의 헌신된 삶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인치심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1680년 3월 20일에 최종 유언서를 작성한 후, 그 해 9월 27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가 72세였다고 한다. 그와는 절친한 친구였으며 양심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던 시절 그의 동료였던 존 리브(John Reeve)가 장례식 설교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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