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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개혁주의의 정직한 에토스

송영목목사(부산)

by 김경호 진실 2010. 10. 2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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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개혁주의의 정직한 에토스

개혁주의’를 따르는 신앙 (reformed faith)은 단순화시켜 말하면 (1) 구속사적 성경 주석에 근거한 바른 교리, (2) 개인과 공동체의 경건 그리고 (3) 그리스도의 왕권을 모든 문화 영역에 실현하는 변혁적 삶이라는 3가지 기치를 걸고 전진하고 있다. 개혁주의가 이 시대에 골동품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이 3가지를 균형 있게 추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먼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경의 통전적이고 유기적인 영감성 위에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인본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을 주로 한다면 복음주의이지 개혁주의는 아니다. 개혁주의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인간의 타락성과 죄성을 인정하고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점진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파악하려고 한다. 성경신학의 아버지 게할더스 보스가 화란의 성경신학적 전통을 미국에 소개하는데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했는데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개혁신앙은 개인과 공동체의 경건에 힘쓴다. 메마른 지성 혹은 메마른 감성으로는 균형 잡힌 영성을 추구할 수 없다. 개혁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주님의 보혈의 권세를 믿고 부단히 전인적으로 성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신앙자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문화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소명적 삶이다. 내세 혹은 영혼의 구원만 강조하고 이 땅에서의 전인적인 천국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잘해야 복음주의이다.

여기서 개혁신앙을 가진 우리 스스로 돌이켜 볼 일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은연 중에 개혁신앙은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 그리고 구세군과 같이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교회의 신앙과 신학보다 더 우월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인식하고 우리의 타락한 죄성과 연약성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개혁신앙이 겸비해야 할 ‘겸손’의 에토스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실상 개혁주의 침례교도 있지 않는가? 실상 개혁주의 진영 안에서도 탁상공론식 논의에 그치고 실천이 부족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겸손의 에토스를 가지고 포용할 것은 포용해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실천 없는 이론, 메마른 지성주의, 화석화된 건조한 영성, 차이가 난다고 교제를 단절하거나, 심지어 동료 그리스도인에 대해서조차 배타적이며 정죄하려는 자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높이고 인정하는 개혁주의 에토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으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지 못한 자세를 취한다면 실상 복음주의자보다 못하다. 진짜 화란의 개혁주의자들이 교리와 경건 그리고 문화변혁을 겸손하게 행했다면 화란이 저 지경이 되었을까? 진짜로 남아공의 개혁주의자들이 겸손히 이 3가지를 수행했다면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하는 신학을 할 수 있었는가? 진짜로 미국 개혁주의자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찾았다면 부당하게 세계를 정복하려는 자기 정부에 대해 방관-동조할 수 있었을까? 한국은 어떠한가? 이론조차 정립이 안 된, 혹시 무늬만 개혁주의 아닌가? 이론은 정립되어 가되 어떻게 적용해야 할 줄 몰라서 허둥대는 가운데 있는 빛깔만 개혁주의 아닌가?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진보된 개혁주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해외 자매 교단의 교훈과 유산을 옛 세상에 속한 유교 전통으로 무시해 버리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예수님과 신약 성경의 기록 당시 온 로마 제국에 퍼져서 따라 다니면서 초대교회를 핍박하던 불신 디아스포라처럼 인본주의적인 전통과 유교적인 관행이 한국 교회 안팎에 암적인 세력처럼 포진하고 번지고 있지 않은가?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본주의와 유교적인 전통은 개혁주의의 바람직한 에토스인 여호와 앞에서의 겸손과는 거리가 멀고 인간 앞에서의 형식과 부자유를 초래한다 (참고. 데이빗 웰스 편집, 1992. 웨스터민스트 신학과 화란개혁주의. 엠마오. p. 27-28).  

http://daehaak.org/tt/site/ttboard.cgi?act=read&db=sermon02&idx=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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