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예수천당 최봉석 목사님

최권능목사

by 김경호 진실 2010. 10. 23. 23:12

본문

출생일 : 1869. 01. 07
순교일 : 1944. 04. 15 
 
 
평양신학교 졸업
1907년 벽동교회 조사
1913년 만주 파송 전도목사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일명 최권능목사로 더 알려진 유명한 목사 최봉석은 1869년 1월 7일 평양에서 최준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평양의 강동현 미곡창장으로 재직했고, 그는 16세까지 구학문을 익히다가 185년 평양감영의 통인으로 발탁이 되어 공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공직수행 중 국고손실로 귀양을 가있는 사이에 아내의 산후조리로 의원이었던 삭주교회 배유계 영수를 찾았을 때에 "예수믿고 회개하여 새사람 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의 머리에서 '회개'라는 말이 떠나지 않고 있던 중 재산 한푼 없는 거지 행색으로 잠시 평양 본가로 돌아왔다가 감리교 노불선교사를 만나 회심하고 평양뿐 아니라 상주까지 내려가 예수를 증거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처가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여보 어찌 천륜을 이렇게 매정하게 끊을 수 있겠오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하는 최봉석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아들을 하나씩 맡기로 하고 헤어지면서도 그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더욱 예수에 미쳐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다.

1907년 최봉석의 나이 38세에 벽동교회 조사가 되었다. 최봉석의 목회는 그 성격만큼이나 고집스러웠다. 교인들의 담뱃대를 모아 꺾어버리고, 첩 있는 사람은 원입을 못하게 했고 성수주일 못하면 세례를 불허하고 한달 결석이면 책벌하였고, 수상제물 금지, 불신영혼 엄금, 등 엄격하기만 했다.

신학교를 7년 다녔는데도 유급이 되자 교수들을 찾아가 기도하자고 해놓고 "교수님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졸업장을 주어 목사가 딜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아멘 시키고 졸업장을 받았다.

1913년 만주 파송 전도목사로 14년간 만주에서 고독과 배고픔 모진 배척과 싸우며 전도에 전념해 28개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14년 만에 평양에 돌아왔을 때 그가 외치는 "예수, 천당"소리는 평양의 새벽을 깨웠고 전도 못하는 교역자들을 '벙어리' '송장'이란 말을 거침없이 했다.

1938년 신사참배결의에 "총회는 사탄의 회로 전락했다"고 반대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39년 5월 15일 70세에 6년간의 긴 옥고가 시작되었다.

일경은 그를 세 가지 죄목 1. 항일사상 선동 국체문란 2. 일본천황 무시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자. 3. 선교사를 통한 미국비밀공작원으로 몰려 두 차례에 걸쳐 무려 6년의 옥고를 치루게 했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듯 40일 금식기도에 도입했다. 의사들의 만류에도 40일 금식을 마치고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이미 눈동자가 풀어져 있었고, 병원에서 5일간 버티다가 1944년 4월 15일 오후 1시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오라 하신다"며 찬송 289장(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 후)찬송을 가족들과 함께 부르고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했으니 그의 나이 75세였다. 


출처: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http://www.seonjija.net/seon/?mid=sub3_02&document_srl=2182

728x90

'최권능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권능 목사님의 전도  (0) 2010.10.23
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   (0) 2010.10.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