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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의미

부활

by 김경호 진실 2011. 4. 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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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은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을 물증을 갖고 증명하려 하지만 쉽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창조를 우리가 믿는 것 역시 물증을 갖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전능하심을 믿기 때문이 그분의 말씀이나 사역 역시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 역시 믿는 것 역시 그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은 믿음의 최종적 측면입니다. 믿음의 온전성을 점검할 수 있는 최종적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풀이하여 말하면, 우리의 부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하나의 신념에 불과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진리를 믿을 뿐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토큰(token)이 됩니다.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한다는 사실 역시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또 부활의 다른 의미를 통해 이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마르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녀는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삶에는 생기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긍정적인 삶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오빠가 죽은 슬픔에 있었던 마르다에게 그리스도는 위의 말씀을 하시면서 위로하셨습니다. 얼마 후에 죽은 오빠 나사로는 살아났습니다. 놀라운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죽은 지 4일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난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했느냐?” 그런 후 기도하시고 나사로 무덤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죽은 나사로는 살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걱정을 소망으로 바꾸십니다.
부활의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그분과 함께 우리가 일어나고 죽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분의 고난을 육체적으로 체험하라는 의미로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분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내가 담당해야할 죄의 모든 무거운 짐을 그분이 친히 담당하시고 처참한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나의 무거운 죄의 짐은 그분에게 전가되었고 나는 그분의 희생적 죽음으로 나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속죄’ 또는 ‘죄사함’을 받았다고 우리는 말하곤 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의 범죄와 죄를 그분이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죄의 영향이나 속박으로부터 자유 했습니다. 그렇지만 죄성(sinfulness)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내재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죽으신 결과로 우리를 결코 죄인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씻어졌지만 여전히 죄성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두 가지 법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지 하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아니야! 내 뜻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이 갈등은 하나님 나라 올라갈 때까지 지속할 것입니다. 죄의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타락한 우리의 본성을 지닌 채로 우리는 살아가는 참 힘든 삶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봅시다. 죄성을 갖고 있다고 했지 그 죄성으로 인해 우리가 멸망 받지 않을 것입니다. 죄성으로 인해 죄를 범할 수 있지만 그 범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공로로 인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분의 의의 옷을 우리가 입었다고 말하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의의 옷을 입었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죄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轉嫁 imputation)’라고 말합니다. 그분 때문에 죄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공로로서 그분 앞에 도저히 나올 수 없지만 그분의 공로로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죄 용서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죄사함의 추인이 되는 셈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분의 부활은 내일의 소망과 매일의 평강입니다. 끝을 알면 과정에서 불안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종결이 어떻게 될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점장에게서라도 터무니없는 답을 듣고 싶어 합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의 부활을 확정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살아서 영원히 그분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살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하더라고 그 끝은 부활이기에 직면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좋게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신뢰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염려하고 우울에 빠지는 것은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고 그분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고 그분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과 내일의 나의 부활이 됩니다. 오늘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안한 마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라은성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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