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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외롭지 않은 자의 어리석음과 위험(휫필드)

조지 휫필드

by 김경호 진실 2011. 9. 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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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외롭지 않은 자의 어리석음과 위험(휫필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전7:16)

사람들이 죄 가운데 놓이는 것만큼 흔하고 잦은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풍속과 유행을 좇아 살면서 그것들에 의해 자신들이 먹히고 있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방식이 심지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도 결코 기쁨을 주지 못함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눈을 들어 시온을 향하여 바라보게 되면, 그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제야 그들은 악마의 편에 선 친구들로부터 당하는 유혹들에 둘러싸인 자신을 보게 됩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막 회심한 성도가 드디어 가장 큰 원수들이 바로 자기 집안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들 시대에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마10:34 참고).

우리의 친척들은 우리가 경멸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버려진 탕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를 창기에게 소비해 버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방종하여 망하는 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기독교 신앙에 만족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외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한다고 말하며 성경을 읽는다고 말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자로 알려지는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자리에서 한 발자국 더 내딛게 되면 그들의 입은 곧장 우리를 대적하는 말을 내뱉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말입니다.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
바로 이런 특성에 대하여 본문 말씀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솔로몬의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말은 이교도가 하고 있는 말입니다. 이 이교도는 솔로몬이 이 책에서 여러번 언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진정으로 선한 것에 나타난 불행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교도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라고 한, 이 말을 가지고 저는 오늘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스스로를 엄격하게 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할 필요가 무엇이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세상 사람들이 사는데로 살아라. 그리하면 지나치게 의인이 됨으로써 네게 닥칠 불행은 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불신자들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후에 이 본문을 설교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이 솔로몬의 말로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신자의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적절한 말일 수 없습니다. 칼과 창을 가지고 개선장군처럼 나온 골리앗을 갑옷도 입지 않은 다윗이 물맷돌로 맞서 싸워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이 유식한 자의 말에 대항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리스도께서 저에게도 물맷돌을 사용하도록 지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를 반박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우리 구속주의 원수들의 목을 자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이 솔로몬의 말이 아닐지라도 후대 저자가 그렇게 한 것처럼 우리도 이 말씀을 진지한 태도로 살펴 볼 것입니다.

첫째, 지나치게 의인이 되어 스스로를 패망케 하지 말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둘째,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셋째, 여러분 모두에게, 배운자나 못 배운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라는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는 말이 지닌 의미

1)사도들이 받았던 성령을 똑같이 받았다하여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첫 사도들이 가졌던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우리도 가져야 하고, 우리 마음에 그 성령을 느껴야만 한다는 주장은, 결코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외부적으로 어떤 표적이나 기사를 드러내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자를 고치며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기적들은 오직 초대교회 당시에서나 사용되었던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성령의 모든 은사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오, 성도들이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산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여러분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사람들과 천사들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손을 펴 창공에 떠있는 태양을 향해 "태양아, 머무르라!"고 명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성결케 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들이 여러분을 신속하게 지옥으로 몰고 갈 뿐입니다.

사울왕도 예언의 은사를 받았고 다른 심성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버림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본질상 죄 가운데 태어난 자들입니다. 사탄단만큼이나 우리도 하나님과 가장 멀리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종종 말씀하였지만 지금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악마의 성향이 뒤섰여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본래의 상태를 덮을 수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제 삼위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한 분이시고 본질적으로 같으신 분이시며, 동일하게 영원한 분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하나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아버지의 품성에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의 품성에 동참하는 자가 됩니다. 성령의 품성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지 않는 한, 참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성령을 부정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 성령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그리스도에게 왔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중생의 문제와 관련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3:9)라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도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지만 오늘날 많이 배웠다는 학자들이 하는 것과 동일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준 답변은 학식 있다는 바리새인들의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이 마치 바람이 우리들의 몸에 느껴지듯이 우리들의 영혼에 느껴지지 않는 한, 실로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참종교란 외형적인 현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내적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종교는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후에 설교한 사람은 감각적인 매너로 성령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보고 우리를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하였듯이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사람이 우리에게 자기 살을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그들은 묻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증거나 표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주신다고 상상하지 않습니다. 오, 아닙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없지만 그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는 명백하게 우리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우리들의 몸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가련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느낄 수 없다면, 그들에게 우리가 가져다 준 저주스러운 상태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버려진 심령과 과거의 느낌뿐입니다.

성령이 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이 주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은 자를 살리고 장님에게 빛을 안겨다 주고 문둥병자들을 고쳐 주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런 기적들을 그들이 기대한다면 저는 겸손하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런 일들보다 더 큰 일들을 하신다고 말입니다.
죄 가운데 죽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성경적인 새 생명으로 일어납니다. 본질적으로 문둥병에 걸린 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깨끗함을 받습니다. 할 일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절름발이인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하게 받들어 섬깁니다. 귀먹은 자들이 이제는 교훈을 계속해서 듣습니다. 권면하는 말씀을 청종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선포된 말씀을 간직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제, "선한 양심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며 선한 일을 하도록 이끈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세네카, 키케로, 플라톤, 혹은 이교도의 어떤 철학자들도 이 말만큼 괜찮은 정의를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우리가 잘났다는 자랑을 반영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는 단지 자연신교(Deism)를 논한 것일 뿐입니다. 자연신교 신봉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견해에 대적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 우리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동의하기만 하지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그 이유는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저자는 하나님의 영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일반 상식이 판사가 되는 것을 결코 허락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일반 상식으로 하나님을 알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일반 상실을 휠씬 능가는 수준입니다. 일반 상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만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그 계시에 우리가 호소하는 것이지, 우리의 연약함이나 나약한 판단력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의인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라 초대교회 사도들이 가진 분량대로의 성령을 가져야 된다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2)신앙적 모임에 꼭 참석한다고 해서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된다는 것이 교회의 모임에 자주 참석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설교자는 본문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기독교적인 모임들을 한쪽으로 제쳐 놓는 것을 목적하고 있습니다. 실로 그는 "당신은 가능한 한 자주 교회에 가려고 할지 모른다. 주일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고 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의 견해에 있어서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다 혼자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영혼에 임하고 있는 한 교회에 자주 가는 것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은 불필요하며 유익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내 형제들이여, 만일 이것을 우리가 선포해야 할 교리라고 한다면 기독교야 말로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는 종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신앙적인 모임에 더 자주 참여해야 합니다. 악한 자들의 모임만큼 사탄의 왕국을 더 잘 세워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없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일만큼 사탄의 왕국을 붕괴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사탄은 참으로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복되신 예수의 친구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다 주님의 편에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교제 안에서 온전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아주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그 모범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서로 일치되기까지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전되고 영화롭게 되도록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자주 모이는 것 자체를 지나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3)헛된 것들과 결별하는 삶이 결코 지나친 의가 아닙니다.

세상의 오락이나 쾌락을 끊고 사는 것이 지나치게 의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라"(딤전5:22)고 권면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고전10:31)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 본문에서 장미 향기를 맡는 것이 불법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죄를 짓는 것을 피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오락이나 게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 경우, 오락은 잘 모르지만 선행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세례식 때 서약한 것과 전혀 어긋나지 않는 오락을 발견할 수 있고, 또는 이 악한 세상의 허례허식을 포기할 수 있는 오락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오락이 있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즉시 발견될 수 있는 그런 오락이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허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오락들이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일을 금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여러분이 죽을 때 그런 오락을 하다가 죽는 자로 발견되고 싶지 않다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단연코 그것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실로 이 시대의 오락은 참된 기독교의 삶과는 정반대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저를 지나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보다 더 심하게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악마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증언은 이 세상의 유행과 고상한 쾌락들을 대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몇 시간 동안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무슨 만족이 있으며 어떤 즐거움이 있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나이가 든 사람들조차도 이런 놀이에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빠져 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놀이가 무슨 해로운 것이냐고 항변할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믿음으로 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는 일은 모두 죄입니다. 그렇다면 카드놀이가 죄를 조성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금쪽같은 시간들을 여러분은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집에 가서 떠들고, 경마를 즐기며 밤새도록 오락에 몰입하고 세상적인 모임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일들입니까? 여러분들이 그러한 장소에 있으면서, 여러분의 영혼을 깊이 생각하게 하거나 해야 할 일들을 하도록 권함을 받는 시간이 있습니까?

저는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이 모든 일들을 벗어 버리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 놀이들에 대하여 결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그런 것들이 다 법적으로 공인되지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극장(2-당시 극장에서 하는 공연들은 지금의 영화 보는 장소가 아니라 연극 장소들로서 음란하고 퇴폐적인 것들이 많이 공연되었다고 합니다.)을 짓기 위해서 공공 기금을 모으기도 하고 언론마다 경마에 대하여 대서특필하고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죄악입니다. 그것들은 지나치게 악한 것들입니다. 경마로부터 어떤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인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데, 본래 지음을 받은 그 뜻하고는 상관없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들로부터 무슨 선한 것이 나옵니까?
극장은 이 세대의 퇴폐의 온상이 아닙니까? 극장을 건설하고 또 지원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다 악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이 시대의 독입니다. 극장에 빠져 있는 자들을 파멸케 할 것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받은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사역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이 시대의 그와 같은 쾌락적인 것들을 대항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그것들은 다 세상적이요 육체적이요,마귀적인 것들이 아닙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적이 있고 여러분의 영혼에 주님의 능력이 임하심을 느껴 본적이 있다면, 더 이상 오락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은 당신의 머리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장소에 자주 가는 것은 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직자들이 극장에 자주 갑니다. 경마에 참여합니다. 공차기에 열중합니다. 사교모임에 자주 참여합니다. 종종 선술집에 갑니다. 이 시대가 선호하는 온갖 유희들을 즐깁니다. 그들은 회중들로 하여금 그런 것들로부터 멀리하라고 충고해야할 자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충고하는 대신 도리어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그런 일에 빠지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보다 쉽게 그들의 목사들을 의지하고 따릅니다. 목사가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극장에 가고, 경마에 참여하고, 공놀이에 빠지고, 사교적 모임에 자주 자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설마 그런 장소에 가는 목사들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헝제들이여! 목사들은 변장을 하고 그런 장소에 가고 있습니다. 목사 예복을 입고 그런 장소에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 그렇게 변장하고 가는지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들의 양심이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그런 일이 합당치 않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걸림돌이 됩니다. 그래도 그 장애물을 치우지 않을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7).
이 시대의 점잖은 신사들이 그런 유희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있는 기쁨과 하나님의 도가 주는 참된 것들을 즐거워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도리어 낯선 자들입니다. 그들은 유희를 위하여 악마의 길로 달려갑니다. 어리석은 것들을 즐기기 위하여 세상으로 빠져 들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 세상이 말하는 점잖은 놀이들에 대하여 제 경험으로 말씀드립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많이 놀이에 빠져 본 자는 아무도 없을 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놀이들에 빠졌습니다. 물론, 저 역시 교회에 자주 갔으며 성찬에도 참여했습니다. 종교적인 형식에 젖어사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은혜의 역사에 대하여 전혀 무지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제 영혼에 능력으로 빛을 비추어 주셨을 때, 가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더 이상 만족을 느낄 수가 없었으며, 탐욕적인 삶은 사망을 이루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이제는 나의 양식이 되었고 오직 그것에서만 기쁨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동일한 능력을 경험하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쾌락으로부터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위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는 동안 당신은 오로지 경건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기독교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면 명목상의 교인으로서만 살아갈 뿐입니다.

아주 공손한 한 신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릎으로 살아야 합니까? 목사님은 항상 기도하고 있는 우리들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청종하는 자들이 되기만을 바라십니까?" 사랑하는 자들이여! 말을 장시간 타고 사냥에 임하여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사냥하는 일에 낙을 취하는 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단 당신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 당신의 지속적인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일들에서 큰 낙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냥꾼들이 사냥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즐거움을 얻을 때까지는, 주님 안에 있는 어떠한 복락도 당신은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 주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인지를 맛보기만 한다면, 그의 찬양과 영광에 함께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흘러넘치는 기쁨으로 입을 열어 말하게 될 것입니다.

2."지나치게 의인"인 자들이 누구인가?

이 사실이 저로 하여금 두번째 대지로 이끕니다. 이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하나의 극단입니다. 이제 저는 "지나치게 의인이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1)의견이 다른 자를 핍박하는 자가 "지나치게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특정한 이 교회, 혹은 저 교회에 한정시킬 때 지나치게 의인이 됩니다. 그런 자들은 같은 부류에 있는 자가 아니면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지나치게 의인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교제가 오로지 교회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깥에서는 교회당 안에서만큼 잘 설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곧 유대주의요, 편협한 신앙입니다. 이는 사도 베드로처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환상이 오기까지는 결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때, 그가 본 환상을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들을 납득시킬 수 없었습니다.(행11:1-1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연합의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곳, 어디에서도 그곳 사람들의 견해를 묻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결코 묻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신실하게 의지하고 믿는 자들이라면 언제든지 나의 형제요 자매로, 그리고 배우자로 힘껏 껴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이런 의견에 아주 편협한 자들은 자기 의견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 장소를 쉽게 떠나 버립니다. 이것은 악마의 정신입니다. 만일 그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허락된다면 그 곳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 심성의 종교가 되지 않는 한 결코 흥왕케 되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된 기독교라야, 견해가 다른 자들을 핍학함으로써 발전되는 것보다 휠씬 더 빠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은 광신과 무모한 짓으로 평가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국교회를 해하려는 저의가 있다는 오해를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의 심판자입니다. 저는 온 세상이 교회의 신조(3-영국 국교회 예배 형식의 통일을 목적으로 제정된 39개조 신조를 의미합니다. 이는 현재까지 영국 국교회 신조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에 다 동의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영국의 모든 공교회 성직자들이 서명한 그 신조를 전파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 신조들을 설교하는 목사들은 무모한 자, 광신도, 교회 분리론자, 국교회를 희석시키는 자들로 취급될 것입니다. 그들이 저에 대하여 그렇게 말할지라도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여, 저는 그 신조의 친구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설교자입니다. 이 교회의 모든 예식에 동조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만일 그들이 저를 이 교회로부터 쫓어내지 않는다면 저는 그 모든 가르침들을 매일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을 이 교회에만 한정시키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합니다. 그들을 저의 형제로, 자매로, 친구로, 배우자로 간주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영혼은 그들에게 많이 매여 있습니다.

핍박은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가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독교 국가에서 일어난 핍박만큼 미친 짓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핍박의 영이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강하지만 다행히 그들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저를 옥에 처넣어 저의 발을 족쇄로 채웠겠습니까! 실로 그들은 저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제 생명을 취하는 일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이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것을 설교하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넓은 길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저는 잘배운 자들을 안 좋게 말하거나 나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구원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음을 여러분이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 길이라면 저는 기꺼이 감옥에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죽는 것을 기뻐합니다. 저는 오로지 여러분들을 주 예수께로 이끄는 도구가 됨을 만족합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인 넓은 길로 가고 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길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형제들이여, 저는 여러분들이 선생들보다 더 많이 배우려는 열망을 지니기를 소망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와서 저를 제치고 주의 말씀을 선포한다해도 저는 그들을 결코 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자들을 무모한 자라든지 광신도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설교를 만 번이라도 듣기를 기뻐할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교제의 손을 기꺼이 내밀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계속 설교하라고 조언할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와서 보고한 것을 듣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도 해 주고 싶습니다. 특히 그들에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9:40)는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혹은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기뻐하리라"(빌1:15-18)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역시 즐거워할 것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화평의 복음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보다시피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것은 냉정하고 비판적인 자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와 견해를 다르게 한다고 해서 핍박을 가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2)신앙을 핑계로 일상적인 일에 게으른 자가 "지나치게 의인"입니다.

신앙적인 모임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들을 돌아보는 시간은 거의 무시해 버릴 때 지나치게 의로운 자가 됩니다. 주 예수께서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고 허락해 주신 적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시초부터 게으름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도 동산을 관리했습니다. 가인도 땅을 파는 농부였습니다. 아벨은 양을 지키는 목동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면 그 아들을 도둑으로 만든다." 그러하기에 우리 구세주께서도 목수로 성장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저가 목수의 아들이 아니더냐?"라고 수군댔습니다. 그러나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장한 사도 바울도 장막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이여, 노동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수여한 것입니다.(4-오해치 말것은 원래 노동 자체는 신성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죄를 범한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노동을 해야 먹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속해 있는 사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자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그 외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더해 주실 것입니다. 썩어질 양식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감당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얻는 일도 경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이 다음의 세상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만이 아니라 부자들도 열심히 일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게으름을 피울 때 사탄은 그들을 신속하게 여러가지 유희에 빠지도록 몰고 갈 것입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수고해야만 할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아침 내내 침상에서 뒹굴고 있으며, 오후와 저녁 시간은 단장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공놀이에 빠지고 여러 사교 모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소일합니다. 그러한 삶은 영적으로 마비된 삶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시간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자들을 멈추게 하시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불멸의 영혼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영원한 지옥의 장소로 신속하게 날아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죄인들에게 큰 열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들이 피로 불들여 가고 있는 동안 주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교리를 설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게으른 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살후3:10 참고).

여러분은 두 개의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특별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몸과 관련한 일반적인 소명과 우리의 영혼과 관련된 특별한 소명이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썩어 없어질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영원한 양식이 되는 것을 위해 수고하는 일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등잔에 기름이 치 있는지 늘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늘 은혜가 차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로 사로잡혀 있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의무를 소홀히 할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적절한 관심을 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여러분들을 두신 그 장소에서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오로지 교회 모임에만 신경쓰는 것은 지나차게 의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 번째 대지로 나아가게 합니다.

3)자기 의와 공로를 내세우는 자가"지나치게 의인"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세 번째 표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금식하고 육체적인 공로를 드러낼 때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절절치 못한 것이 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여러분들이 한 번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들의 죄에 대하여 깊은 자각을 갖게 된 후, 죄가 되는 권위들을 지나치게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금식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종종 금식하는 것은 우리의 할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러나 금식할 때 우리는 적절한 방법으로 해야함을 주의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김에 합당한 우리들의 몸이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명령입니다.

이 본문에서 설교자는 매우 극단적인 상태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결코 생각해 보지 못하였던 것을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저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사역에 대하여도 그가 가혹하게 조사하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개의치 않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을 욕하는 것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풋내기에 불과하고 열광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도 괘념치 않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를 용서합니다. 그러나 그가 나의 주님에 대해 언급할 때, 저의 구속주를 대적한 소리를 낼 때,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대적하는 말을 할 때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실로 입을 열어 말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주께서 기쁨의 잔을 높이 들 자유를 주셨을 때, 결혼 잔치 석상에서 보여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모범으로 단언하여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셨던 것이 분명한데도 주님은 포도주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술주정뱅이를 옹호하는 주님이십니까?

연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조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2:10)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또 꼭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전에 충분한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을 과소평가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그리스도께서 주로 가난한 자들을 방문하셨는데 그들은 충분한 포도주를 살 여유가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왔기 때문에 주인의 생각보다 빨리 포도주가 동이 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기를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2:4)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매 그 물이 다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술 취한 자가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그 집에 머무르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아주 놀라운 교훈을 받습니다.

비어있는 물항아리는 본질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주님의 말씀과 명령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때, 전에 은혜가 없었던 빈 마음에 은혜가 가득 채워짐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물항아리 아구까지 가득 채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의 마음에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연회장의 "처음 것 보다 낫다"는 고백은 산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의 말씀으로서 처음보다 나중이 훨썬 나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빈 마음에 채워진 성령의 은해가 영혼에 임한 가장 큰 능력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랫 동안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기적의 사건으로부터 배우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이 박식한 설교자의 큰 모순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의 설교 서두에서 그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 그 설교자는 우리를 도덕률폐기론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악마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 문제를 너무나 엄격하게 다루다가 점차적으로 느슨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여!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은 아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버리면 그들은 이상한 실수를 합니다. 빛과 어둠이 정반대인 것과 같이 선과 악이 그러하며, 달고 쓴 것이 그러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거듭남에 대한 어떤 사람의 개념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저는 저의 일기에 기록했습니다.(조지 휫필드의 일기 참고/2004년 지평서원 발간).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는 제가 갈망하는 바를 얻었습니다.

중생에 대하여 쓴 사람들은, 장님이 색깔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중생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들은 그 개념 자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학식은 마치 장님이 태양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 보다 더 못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겨우 한다는 말이 "중생은 마치 나팔 소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기까지는 중생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트랩 박(Dr.Trapp)의 설교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탄식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그것들은 여러분들의 영혼의 안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구속주의 영광이 벼랑 끝에 몰려 있습니다. 저는 결코 입을 다물고 지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저는 저를 대적하여 가혹한 글을 쓰는 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죽을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영혼을 구하는 길이라면 말입니다. 오직 그가 저에게만 대적하여 말했다면 저는 그에게 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우리 주님을 악의적으로 대적하는 것임으로, 제가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면 돌들이 입을 열어 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구세주의 명예를 위하여 여러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로 하여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를 강권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공결을 받고 있을 때, 저는 입을 열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야 말로 저의 사역의 의무입니다. 어떤 일이 닥친다고 해도 저는 잠잠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만들어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 부분적으로 여러분의 구주여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교리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지혜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의며, 성화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코 여러분의 영원한 구속과 성화가 될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열광주의와 미친 짓의 결과로서 내적 거룩을 관찰하려고 합니다. 중생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자들은 정신 병원에 아주 적합한 사람들로 간주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사람에게는 합당한 무엇이 있다. 즉 하나님은 여러분 속에 선한 어떤 것이 있음을 보시고 그의 은혜를 여러분에게 부어 주신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만 합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저는 구원이란 하나님이 전적으로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저는 설교합니다. 이것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육체라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자들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피로 더럽혀진 존재였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위하여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수동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삶에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모든 공의로운 요구를 만족시켰습니다. 그것은 완전하고도 충만한 만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번 다시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반드시 여러분에게 전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예수의 피에 대하여 아무런 관계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내세우는 의는 걸레조각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리가 많이 배운 선생들에 의하여 부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 복음 진리를 부인한다면, 마치 아이가 박사님께 감히 힐문하는 격일지라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아이, 한 소년일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이 시대의 많이 배웠다는 학자들에게도 담대하게 말할 것입니다.

만일 제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면, 그리고 온 세상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다면 저는 외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의를 가져오는 지나친 의인은 되지 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스스로 의인이 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쇠하고 하나님이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참으로 위로가 되는 교리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듣는 죄인들이여! 여러분들이 생애에 결코 단 한가지도 선한 일을 해 보지 못한자라면,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메시지야말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란 말입니까! 그런 가르침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릴 것입니다.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참고). 따라서 여러분 중에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그가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의로 내세울 만한 것을 결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의 구속을 통해서 그가 죄를 위해 단번에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의 의가 여러분에게 전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흉악범과 여러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고 풍성하게 주시는 은혜가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리새인들을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 나온 자라면 이 진리를 충분히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니오십시오.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말하려고 나오는 바리새인들처럼 나오지는 마십시오. 내가 얼마나 자주 교회에 다녔는지, 성찬에 얼마나 자주 참석했는지, 얼마나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였는지 등등을 말하기 위해 나오는 자는 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 나오되, 가련하고 버린 바 된 자식처럼 무가치하고 저주받을 죄인으로 나오십시오. 그런 태도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십니다. 상한 심령을 소유하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그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이 이 땅에서 주님의 몸 된 신비로운 교회의 회원이 됩니다. 그 이후로 교회의 승리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로 간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도 여러분은 , "나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 나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자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구원이 없습니다. 하늘 아래 인간에게 주신이 이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밖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힘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제시된 그리스도를 배우십시오.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를 영접하십시오. 믿음으로 그를 굳게 붙드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의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스스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도덕적으로 부패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나는 열심히 교회에 나갑니다. 은혜의 수단에 열심히 참석합니다" 이렇게 자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구원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3.그리스도께로 나아오라는 권면

그리스도가 여러분들의 가슴에 좌정하시도록 간청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기독교의 능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실로 여기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저 세상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이 궁극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와 모순되게 행하지 마십시오. 신성을 모독하는 죄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슬비를 피해 달려가는 겁쟁이가 아닌 줄을 압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부족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신다면 그것이 한 젊은이에 의해서, 혹은 한 소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결코 불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면 저를 사람들이 풋내기라고, 혹은 광신도라고 부를지라도 저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기쁩니다.

허다한 죄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사람들을 절망케 하는 설교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저 같은 곤고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저는 그 누구도 절망케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제게 다가오셔서 저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제가 혈기에 젖어 살고 있을 때 주님은 제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제가 온갖 더러움으로 물들어 있을 때 제게 다가오셔서 생명을 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신 은혜 안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 저는 여러분 중 누구도 절망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곤고한 자였는지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제가 지금 겸손을 가장하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듯하게 꾸며서 거룩한 척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마귀는 여러분들에게 더욱 악한 일들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제게는 저를 보호해 주시는 은혜로운 주님이 계십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 주님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들의 분노로부터 저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오늘 밤, 말 많은 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한번 들어 보려고 호기심을 가지고 나온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오늘 밤 다방에서 할 이야깃거리를 찾기위해서 한가하게 시간이나 때우고 싶어 나온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오늘 밤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됨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 드립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들판에 모여서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별로 관심없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려고 모인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교회 담벼락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를 굳게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피를 흘리며 갈증을 느끼면서 죽어 가신 예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을 영접하지 않으시렵니까? 가난하여 교회에 갈 수 없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마십시오. 예수의 뜻과 정반대의 길로 가지 마십시오.

오, 저는 여러분의 심령을 향하여 말씀드립니다. 제 말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제 마음은 여러분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때까지 저는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로지 여러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저는 여러분들을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구름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하심 가운데 저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다시 육적으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아십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우리는 필히 다시 만날 것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여러분의 기도를 갈망합니다. 제가 이렇게 시작만 하고 마는 자가 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락의 길을 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정직한 사람이 되십시오. 저를 보아서라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십시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고서 정작 저 자신이 버림받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저를 품지 않고 은혜의 보좌에 그냥 나아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기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관련한 저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저는 하나님과 교제할 때마다 줄곧 여러분을 마음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저의 간절한 기도는 여러분들이 주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케 되는 일이 없기를 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훌륭한 주의 종들을 보내셔서, 주님의 오른 손으로 심으신 것에 물을 주는 일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백마를 타고 오실 주님께서 대적하는 모든 무리들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실 것입니다. 우리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는 뱀이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임을 예상해야 합니다. 악마는 무서운 분노를 뿜지 않고서는 결코 그의 왕국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악마는 목사들로 하여금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공격을 가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애송이에 불과하였지만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영적 원수들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동으로 믿음이 있음을 증명하십시오. 세상에 잿물을 뿌리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멈추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순례의 길을 질질 끌지 마십시오. 도리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영적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오른 편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품안에 안기기를 소망합니다. 그곳에는 죄와 슬픔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조롱하는 자들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볼 뿐만 아니라 그분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와서 최고의 신랑 그리스도를 보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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