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로버트 맥체인)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욥 34:31-32)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 14:1)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욥 4:19)
이 세상은 예부터 눈물의 골짜기로 일컬어집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고난이 함께하기 마련이고, 이는 그리스도인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고난과 시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이것이 정말 그러하다면, 우리는 이 시험을 맞이한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것도 한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주께서는 내게 가르쳐 주소서. 내가 죄악을 행하였다면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씀드림이 마땅하니라.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고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2. 고난이 겪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1 고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1) 고난이 가져오는 첫 번째 열매는 하나님께 부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 의로우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열매입니다.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주께서는 내게 가르쳐 주소서”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져올 환란을 보여주셨을 때 느낀 감정과도 비슷합니다. 다니엘 9장 7절과 8절을 읽어보십시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단 9:7-8)
14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단 9:14)
다니엘은 자신의 죄로 인한 징계를 달게 받아들입니다. 이와 똑 같은 상황이 느헤미야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9:33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 행하셨음이니이다”(느 9:33)
레위기 26:40-52도 고난에 관련된 구절입니다.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레 26:40-42)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받아들이는 자들을 기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고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열매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징계를 온전히 받아들이십니까? 혹시 마음속의 생각이나 완악한 말을 통해 하나님께 불평거리를 늘어놓진 않으십니까?
고난의 때가 되면 으레 인간은 하나님을 모독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폭군임에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 아이를 데리고 가버릴 수가 있어?"
이는 네 번째 호리병과 다섯 번째 호리병이 쏟아질 때 튀어나올 하나님을 향한 모독의 말들과 유사하고, 지옥에서 들리는 음성과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노를 쏟으실 때, 인간들은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그리고 생각과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이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할지라도, 그러한 불평들을 - 하나님을 향한 분노를 -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불평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에 감히 도전하고 반항할 권리가 여러분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어린아이가 의회의 결정이 불평을 늘어놓고 도전을 하려 든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부에 도전할 권리를 가진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욥과 같은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2)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살피게 됩니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욥 34:32)
우리는 고통을 통해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는 욥이 자신의 고난을 받아들인 방식입니다. 욥기 10:2을 읽어보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 10:2)
23:3-7에도 같은 뜻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욥 23:3-7)
욥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그렇게 다루시는지 알게 됩니다. 여호수아 7:7-9에도 같은 의미를 지닌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수 7:7-9)
고난이 찾아왔을 때 여호수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행 9:6), 그도 아마 여호수아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믿지 않는 가족에게 고난이 닥치거나 하나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가는 일이 발생해도, 그들은 좀체 주님께 그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고난의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노크입니다. - 마지막일 수도 있는 노크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도 종종 일어납니다. 믿는 자들의 마음에 우상이 있거나, 비밀스러운 죄, 혹은 탐욕이 존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고난이 올 때 하나님께 그 이유를 물으십니까?
이 같은 일은 교회에도 일어납니다. 성도들이 미지근한 신앙을 유지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경고하신 내용에 따라 그들에게 고난을 주실 것입니다. 고난이 임할 때 그분의 뜻을 물으십니까?
우리는 그분께 고난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3)고난으로 인해 얻는 유익들, 그 세 번째는 죄를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주께서는 내게 가르쳐 주소서. 내가 죄악을 행하였다면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죄를 저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이는 하나님께서 므낫세를 다루신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저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괴롭게 하시면, 그는 죄악을 던져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음성에 귀기울이고, 사랑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기 위하여 우선 그분의 막대기를 들고 언약의 말씀에 부복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에 반대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납니다. 저는 술주정꾼이 고난을 당해서는 고만 더 큰 죄악으로 빠져들어가고 만 경우도 보았습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버린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호 7:8)
여러분 중에도 벼락을 맞아 잎이 다 떨어져 그저 비석 같은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고목과 같은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들 중에도 역시 그런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베푸신 자비와 심판이 여러분을 회개시키지 못했다면, 그분은 화살통에서 새로운 화살을 꺼내실 것입니다.
2 고난이 임하면 그 고난의 이유를 깊이 숙고해봐야 합니다.
1) 고난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시는 방법이므로 마땅히 그 이유를 숙고해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직접 임하는 고통이든, 여러분의 가족에게 임하는 고통이든, 고난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잠 28:14)
2) 여러분 고난이 임하면 숙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믿지 않는 자를 회심시키고, 그분의 자녀된 자들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저는 때때로 여러분의 거처를 비추는 햇살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미시는 손길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은 그분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자신에게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또,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들이 마음속의 우상들을 저 멀리 치워버리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나아오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3)믿지 않는 자들이여, 특히 숙고하십시오.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결국 포기해 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가슴에 뜨거운 불길이 일게 하신 그 손길이, 또한 지옥의 불길도 지피실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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