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이셨던 허순길 교수님께서 "교회교육"에 연재하셨던 글입니다. 원제목은 "교사가 알아야 할 개혁주의 예배 원리"입니다.
개혁주의 예배원리
허순길 교수
예배는 인간의 활동 가운데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활동이다. 예배시간에 우리는 하늘과 땅의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집에 나아가 예배하는 일을 가장 큰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라고 노래하며 성전에 올라갔었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더욱 풍요하다. 주께서 오셨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예배활동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이 예배 행위는 교회의 어떤 다른 행사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예배는 성경공부시간이나, 교회의 어떤 다른 집단 활동과 다른 것이다. 다음 세 가지 중요한 개혁주의적 예배의 원리를 생각해 본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드려지는 예배
우리 하나님은 보좌에, 권위를 입으시고 계신다(시93). 그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하늘의 스랍들도 그 앞에서 날개로 얼굴을 가리운다(시6:2-4). 예배 시에 우리는 이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왔음으로 의식해야 한다. 어른이나 어린이들이나 모두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예배에 임할 것이다. 오늘 우리 주변 교회의 예배가 새오순절 운동의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입어 흥분된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건한 모습을 잃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아가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도 경시하는 듯도 보인다. 찬송을 부르나 자기의 기쁨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르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예배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서만이 행해져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히12:28) 섬겨야 한다.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예배
성도들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은,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아름다운 유산이다. 일찍부터 로마교회의 예배는 거의 성직자들의 일방적인 활동에 불과했다. 예배에서의 신자들의 입장은 오로지 수동적이었다. 로마교회에서는 교회와 신자들의 모임이란 개념이 없다. 신자들이 교회의 기본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다. 성직자가 있으면 거기 교회가 있게 된다.
개혁주의 원리에 따르면, 교회란 신자들의 모임이다. 그러기에 예배에 있어서 신자들은 적극적인 동참을 하게 된다. 물론 아직 하늘의 예루살렘이 임하지 않았기에, 주님은 예배에 중재역을 맡는 직분자들을 세우셨다. 목사가 주의 편에 서서, 주의 이름으로 그의 말씀을 증거하고, 축복하며, 신자들의 편에 서서 기도함으로 그 앞에서 신자들의 입이 되어진다. 이 예배에서 신자들은 기도에 참여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입을 열어 찬송함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개혁주의 예배는 성직자의 일방적인 활동이 아니고, 성도들의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적인 거룩한 활동이다. 개혁주의 예배에서는 예배가 목사의 일방적인 사역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신자들은 능동적인 참여가 있다.
언약관계가 들어있는 예배
개혁주의 예배는 언약적 성격을 띤다. 언약(covenant)에는 두 상대가 있다. 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언약의 상대편이 된다. 예배에는 이 쌍방이 함께 하는 것이다. 예배에는 주 하나님이 기여하시는 부분이 있고, 그의 백성이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언약의 쌍방은 결코 동등한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양자가 예배에 기여하는 요소는 같은 종류가 아니다. 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주이시다. 그의 백성인 우리는 피조물이요 긍휼을 입은 죄인이다. 주 하나님은 그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속에서 우리를 찾아 주셨다. 그의 은혜계약은 실상 일방적이다.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때에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가 언약의 대상이지만은 우리는 전적으로 받는 자리에만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드릴 때에도, 우리는 그에게서 받은 것을 단지 드릴뿐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언약관계는 쌍무적이다. 그래서 예배에 있어서도 여러 요소를 둘로 나누게 된다. 먼저 언약의 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십계명의 선포, 성경봉독, 설교, 축도 등이다. 이것은 주의 이름으로 직분자(목사)가 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그의 백성인 우리들이 하는 부분이다. 이는 신앙고백, 찬송, 기도, 헌금 등이다. 전자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움직이는 부분, 후자는 땅으로부터 하늘로 움직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예배는 이렇게 하늘과 땅,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아름답고 귀중한 사건이다. 어떤 면에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 땅에 내려오고, 하늘의 천만 천사들이 같은 지붕 아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예배는 이 땅 위의 우리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에 임해야 한다(요4:24).
출처 : 무척산 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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