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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로버트 맥체인

로버트 맥체인

by 김경호 진실 2012. 4. 4.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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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 로버트 맥체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로버트 맥체인'이 던디에서 1836년에 했던 설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있는 인간들에게 위대한 자비를 베푸실 때면, 그분은 말씀을 통하여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더욱더 확연하게 드러내시곤 하셨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구절도 바로 그러한 상황 아래에서 나온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을 때보다 더 자신의 제자들을 향한 사랑과 온유함이 넘쳐흘렀던 적은 일찌기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많은 어려움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곧 떠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주님을 배신할 것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며, 그들 모두는 바로 그 날 밤에 주님 때문에 실족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화가 나셔서 떠나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임할 고난이 무엇 때문이건 간에, 그 때 주님의 가슴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서 그 사랑이 입 밖으로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어라』(요 14:1).

주님은 그토록 온유한 음성으로 말씀하신 적이, 아마 이 땅에서는 그제껏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라는 제자는 이 천상의 분위기를 깨는 차갑고도 몽매한 질문을 던집니다.

『도마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알 수 있나이까?"라고 하니』(요 14:5).

그럼에도 주님은 이전의 온유함을 잃지 않으시고 자비로운 음성으로 제자들에게 구원의 기초를 가르치십니다. 그저 도마의 질문에 대답을 하신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도마가 생각하거나 물을 수 있는 질문을 넘어서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그는 단순히 장소와 길에 관하여 물었지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이것은 구원의 복음에 대한 거의 완벽한 설명입니다. 자, 이 구절을 부분부분으로 나누어 세세하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Ⅰ. 그리스도는 길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에게는 본래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죄로 가득차 있으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죄로부터 멀찍이 물러나 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마치 민감한 식물처럼, 그분은 인간들로부터, 그들의 죄의 손길로부터 멀찍이 물러나 계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죄인들과 분리되어 계신 분입니다. 그분의 눈은 너무나 순수하여 죄악을 바라볼 수조차 없습니다.



(1) 이것은 아담과 족장 시대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아담이 거룩했을 때까지는, 하나님은 그와 함께 거하시고 동행하시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했을 때 그분이 어떻게 하셨나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타는 칼을 놓아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이 그룹들 사이의 불칼은 하나님의 상징이었습니다. 즉, 의로우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모세가 가시덤불 앞에서 만난 하나님은 바로 이 소멸하는 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그룹들 사이에서 다니시는 불타는 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의로우시고 죄를 미워하십니다. 이 칼을 주목해 보십시요. 이 불타는 칼은 생명 나무로 가는 길목을 지키기 위해 두루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 칼이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어떤 외진 곳으로 나 있는 길을 미처 막지 못했더라면, 아담은 그 길을 통하여 몰래 생명 나무로 다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어떤 방법을 시도한다 할지라도, 즉 외진 길이나 또는 험하고 어려운 길을 택하여 아무리 몰래 들어가려 할 지라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은, 이 불칼이 유성처럼 날아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담을 가로막은 불타는 칼에서는 이런 음성이 들려 왔을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로우리요?』(욥 9: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롬 3:20).

그 말을 들은 아담은 아마, 생명을 찾아 나서면서 기울였을 자신의 그 헛된 노력에 지쳐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혼자서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시편 16편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내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리니』(시 16:11).

어느 누구도 이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낙원으로 들어가고자 애쓰는 아담의 자손들의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아버지의 품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하셨습니까? 불칼이 미처 오지 못하는 곳에 길을 마련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불칼은 어디로든 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자신의 권위로 불칼을 명하여 뒤로 물러나게 하셨습니까? 역시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법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법에 오명을 씌우는 것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대신하셨습니다. 즉, 죄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에게 우리 모두의 죄악을 지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앞으로 나아가 불타는 칼을 마주하여 서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칼날 위로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그 때 그분은 마음 속에서 옛 선지자의 말을 떠올리고 계셨을 지도 모릅니다.

『오 칼아, 깨어서 내 목자를 대적하고 내 동료된 자를 대적하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스카랴 13:7).

그 불타는 칼은 주님의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습니다. 이제 당신이 누구이건 간에 또 어떤 사람이건 간에 그분께로 나아오십시요. 그분의 피흘리신 몸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나아갈 길이 생겼습니다. 어서 오십시요. 의심치 말고 오십시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2) 인간에게는 본래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없다는 이 사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운 가장 중요한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거하시기 위하여 오셨을 때, 그분은 가장 거룩한 곳에 머무르셨습니다. 즉, 유대인들의 성전에서 가장 깊숙하고 내밀한 부분에 임하신 것입니다. 성전의 그룹들 사이에 주님이 계신다는 증거는 확실했습니다. 성전 안에는 때로 접근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빛이 나타났고, 또 때로는 구름으로 가득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내밀한 그곳은 장막으로 바깥과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 장막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 받은 사람은 대제사장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일년에 한 번, 피를 가지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 때때로 나타났던 그 자욱한 구름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즉, 가장 거룩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 가득찬 인간은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한 분으로부터 쫓겨나 그분의 면전으로 다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모든 기쁨의 근원이심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셨습니까? 장막을 걷고서 우리가 몰래, 또 손쉽게 그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공의를 만족시키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 식초를 받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시더니 고개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시더라』(요 19:30).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마 27:51).

다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 길이 마련된 것입니다. 장막은 아래서부터 제일 위까지 둘로 찢어졌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우리를 가로막던 그 무시무시한 장막이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이제는 찢어진 장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빛 속에서, 그분의 장막 안에서 거하면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분을 대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길이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14:6).

당신이 지금도 당신만의 길을 고수하고 있다면(그것이 눈물이든, 고행이든, 아니면 어떤 선한 맹세이든, 혹은 하나님께서 그리 엄하시지 않으실 거란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있든 간에), 심판의 날이 오면 당신은 그룹 사이를 돌아다니던 그 불칼이 당신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당신 앞에 남은 것은 오직 불못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로는 아무런 평안도 찾을 수 없어 하는 혼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자신의 혼이 잃어버린 바 되었음을 깨달은 이가 바로 당신이라면,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들어 보십시요.

『나는 길이요』

다른 곳에서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씁하셨습니다.

『나는 그 문이라』(요10:9).

이것은 값없이 주어진 활짝 열린 문이며, 죄인들을 위한 길입니다. 왜 주저하십니까? 한때는 당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장막을 찢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때 우리에게 분노하셨으나, 주님이 만드신 길 위에는 그 분노가 없습니다.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기쁨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Ⅱ.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성경과 인간들의 역사에서 드러난 진실 그리고 우리의 본성은, 인간이 진리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심치 않은 자들도 많은 진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학적, 혹은 과학적 진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진실들도 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회심치 않은 사람들을 두고 진리를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참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방주의 열쇠와도 같은 분입니다. 만일 열쇠가 없다면 방주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더미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열쇠라고 생겨 먹은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그 모든 열쇠들은 타락했고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으며 질서도 목적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를 거부한다면, 진리의 방주는 그저 혼잡스러운 쓰레기 더미로 남을 것입니다. 진리들은 여전한 모습으로 거기에 서 있을 것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타락하게 되고 일관성을 상실해 버릴 것이며, 질서도 목적도 없이 혼란스럽기만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체계에서 태양과 같은 분이십니다. 만일 태양계에 태양이 없어진다면, 모든 행성은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할 것입니다. 많은 행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없다면 그것들은 적절한 힘의 안배 없이 서로 밀고 당기기만 하다가 극도의 혼란 속에서 다른 행성의 궤도를 향해 돌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없으면, 모든 진리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립니다. 소소한 진리들이 마음 속에 그득하다 할지라도, 이들은 서로 모순을 일으키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모해 갈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암흑과도 같아서 사람이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도 알지 못하느니라』(잠 4:19).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회심치 않은 혼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성령께서 그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당신 앞에 진리의 방주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혹은 당신의 태양계에 태양을 다시 가지고 올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모든 진리가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게 만드십시요.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 우리를 대신하여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진노 아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종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는 당신에게는 아무런 의가 없는 것입니다.

더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제 당신에게 내려질 저주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당신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혈로나 육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분을 만나 뵌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랬더라면 당신은 이제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분 속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숨겨져 있음을.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모든 지식의 시작과 끝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다면, 당신은 진정 알아야 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지식이란 기둥 없는 다리와 같고, 태양이 없는 태양계와도 같습니다. 당신이 만약 지옥에 가게 된다면, 이 세상의 과학적 지식이며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식견, 혹은 하루 하루의 일상 속에서 얻은 지혜들이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당신을 짓누르는 뼈아픈 추억이 될뿐입니다. 당신은 후회할 것입니다. 신문을 내려놓고 성경을 읽었을 것을!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이해했지만, 아, 무엇보다 내가 구주를 알았어야 했던 것을,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을 알았어야 했던 것을!, 하고 말입니다.



Ⅲ.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와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어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인간은 또한 이 세상에 속하여서는 거룩한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마치 죽은 사람이 일어나서 걸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과 역사 모두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 죄와 죄악으로 죽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시체처럼 전적으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인간들은 세상의 풍조와 공중 권세의 통치자의 영향을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선지자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에서 가장 명확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에 의해 뼈로 가득찬 골짜기 가운데로 가게 됩니다. 그는 그 골짜기의 사면을 지나면서 그 안에 심히 많은 뼈들이 있는데, 그 뼈들 모두 바짝 말라 있는 상태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바라볼 때 직시하게 되는 영적인 풍경입니다. 뼈들은 심히 많고 모두 바짝 말라 있습니다. 그 풍경을 본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던진 질문과 똑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던지게 됩니다.

"이 뼈들이 살 수 있을까요?"

네, 물론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기적을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진실로,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두드리시면, 그는 곧 진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마른 뼈들을 향해 말씀을 전합니다.(이것이 주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그들 속으로 호흡이 들어갑니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이여, 당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요. 당신은 이 세상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당신은 늘 물살을 타고 세상이 가는 데로 흘러갔을 뿐, 단 한번도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진중하게 들여다 보십시요. 당신의 마음은 늘 거룩한 명령으로부터 돌아섰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노력해 보았다면, 당신의 눈을 부정한 욕망들의 도구가 되는 것으로부터 지키고, 당신의 입술에서 빈정거림과 헛된 말들을 멀리하며, 당신의 마음을 사악함과 시기, 그리고 탐욕으로부터 수호하려 해 보았다면, 당신이 진정으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보았다면(저는 대부분의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노력을 한번쯤은 해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죽은 사람을 일어나 걸어가게 해 보십시요. 당신은 지금 죽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곡히 권고하노니, 거듭나십시요! 당신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야만 합니다. 그분은 생명이십니다. 죽은 몸이 살아 있는 몸과 온전히 합하여져서 핏줄을 통하여 피를 공급받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뼈와 뼈가 합하여지고, 핏줄이 핏줄에 가 닿고, 신경이 신경과 연결됩니다. 죽어 있던 사지가 어느새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변모합니다. 전에는 차갑고 딱딱하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몸이, 지금은 온기가 돌고 유연해 지며, 생명력과 활동력으로 충만해 집니다. 생명과 합하여져서 살아 있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혹은 바싹 마른 나뭇가지가 살아 있는 나무에 온전히 접붙여져서 원나무의 수액을 활수하게 받아 마시면서 죽어 있던 것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전에는 바짝 마르고 오그라들어서 열매도 맺을 수 없던 것이, 수액과 생명력을 공급받아 살아 있는 가지가 됩니다. 자,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에게 연합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입니다. 당신의 혼이 죽어 있는 자가 아닙니까? 차갑고 딱딱하며,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그저 하릴없이 부패해 가고 있는 시체와 같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 밀착하십시요. 믿음으로 그분께 합하여 지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그분과 한 영이 될 것이며, 차갑던 사지에는 온기가 돌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기와 활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혹시 당신의 혼은 메마른 나뭇가지가 아닙니까? 바싹 말라서 열매도 맺지 못하며 잎사귀도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뭇가지가 아닙니까? 그리스도께 밀착하십시요. 그분께 참여하는 자가 되십시요. 그리하면 당신은 그분과 한 영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생명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고, 당신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질 것이며, 당신은 또,『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하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갈 2:20). 믿지 않는 자들이여, 명심하십시요. 당신이 거룩하여 지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형제들이여, 지금 만약 거룩함의 길에서 헤이 해져 있는 상태라면, 그것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손에 힘을 빼고 느슨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십시요.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역시 그렇게 되리라』(요 15:4).
출처 : 예수님없인못살아요
글쓴이 : 예수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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