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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맥체인)

로버트 맥체인

by 김경호 진실 2012. 4. 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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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맥체인)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인간이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앞서 있었던 일들을 통하여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본문에는 죄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전형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 구절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자신이 준비한 방주로 도피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방주가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세상이 저주를 받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로 저주를 받아 마땅한 것이 이 세상임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일단 방주에 들어와 보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참으로 저주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 노아의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성경을 읽어봅시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창세기 6장에는 노아가 받은 경고가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6:1-3)“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이 두 경고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분은 성령께서 언제까지나 사람들과 다투지는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고, 급기야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들을 모두 파괴에 버리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노아가 여러분들 중의 하나 같았다면, 그는 이렇게 대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야. 그런 분이 자신이 만든 사람들을 쓸어버리실 리는 없어." 혹은 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직 멀었어. 홍수는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시작될 거야. 좀 더 있다가 하나님께 돌아서도 돼."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여러분, 여러분도 노아를 따르고픈 마음이 있다면, 두려움으로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한두번 경고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마 골백번도 더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여러분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롬 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또 있습니다.
(마 18: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 16: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회심하지 아니하고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마 18:3).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말씀에 두려워 떤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러분과 달랐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여러분은 사역자들을 통해 경고를 받습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의무를 게을리 하여 여러분들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인 우리의 손에서 그 피값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회심치 않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던지는 것, 이것은 사역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늘 이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제가 드린 말씀은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사역자들의 입에서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노아하고는 질이 다른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왔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여러분을 죄로 이끌려고 애쓰다가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본 분들로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죽었지만 여러분은 살아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이 이러한 데도 나는 아무 경고도 받지 않았다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경고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경고를 듣고도 오히려 죄에 더욱더 탐닉하셨습니까? 만일 그러했다면, 여러분은 노아하고는 질이 다른 사람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 두려움으로 행하긴 싫습니다, 전 단지 사랑으로 행하고 싶을 뿐이예요. "하면서 경고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두려움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안일한 자세는 두려움을 통하여 파괴됩니다. 두려움으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 밀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두려움을 도외시하지 마십시오. 바울이 만났던 교도관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행 16:29-30)“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그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했습니까? 예, 바로 두려움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하는 질문을 하게 된 요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예, 두려움입니다. 바울로 하여금 땅에 엎드려
“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부르짖게한 요인이 무엇입니까(행 9:6)? 바로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왔다면, 여러분도 그들처럼 두려움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욘 1:6)“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러니 제발 두려움을 도외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냥 이대로 세상에 푹 빠져 지내겠다면, 포도주 밑에 침전되어 있는 앙금처럼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올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비둘기 같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는 첫 번째 사역은 죄의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자, 이제 두 번째로 방주에 대해 생각을 해 봅시다.
(
창 6:14)“ 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6절도 한번 읽어봅시다.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21-22절도 가까이 있으니까 읽어보겠습니다.
(창 6:21)“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22)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방주는 완벽한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방주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그렇게 큰 방주를 구상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든 사람이든 어느 누구도 죄인을 구원시킬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성경은 말씀하시길 천사들도 이 구속의 계획을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오는 계획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를 가져오는, 인간을 향한 호의였습니다.
 
자, 방주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방주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나 한번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주가 일렁이는 큰 물결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수용하실 수 있을만큼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자신을 통해 가장 높은 곳으로까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방주는 매우 넓었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우리 사역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나이다”(눅 14:22).
 
방주는 문이 옆면에 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옆구리에는 창자국이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0: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엡 2:18)“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6: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그분을 믿는 것 외에는 그분께 나아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방주의 윗면에는 창이 열려 있습니다. 이 창을 쳐다보면 바로 하늘이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화해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방주에는 일용할 양식도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빌 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금이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금을 하사하실 것입니다. 더러워진 자신을 깨끗이 씻을 물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죄와 부정한 것들을 씻을 수 있는 개방된 샘이 있습니다. 허기를 느끼십니까, 그래서 빵이 필요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6: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필요한 것은 모두 방주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큰 구원을 무시하고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방주는 튼튼하고 양식은 풍족합니다. 왜 이 방주를 무시하려 하십니까?
 
자, 이제 세 번째로 노아가 어떻게 그의 집안을 구원하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노아는 가족을 다른 어떤 은신처로도 이끌지 않았습니다.

(창 7: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 7:7)"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8)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잘 보십시오, 여러분, 노아가 그의 집안을 구원한 것은 바로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서였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서, 그는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육신적인 인간은 "산꼭대기가 더 안전할 걸."하고 말했을 지도 모르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다른 그 어떤 피난처로도 발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 뿐만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와 아들들 그리고 며느리들도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방주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다른 사이비 방주들은 다 무시하십시오. 세상은 말합니다. "저거 말고도 좋은 방주 많아" 라고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자비하셔서 그 어느 누구도 멸망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의 방주로 도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방주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순결한 도덕성이라는 방주로 숨어들고, 어떤 이들은 지식의 방주에 숨어들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그릇된 방주들입니다. 인간에게서 비롯된 방주들은 모두 잘못된 피난처들입니다. 여러분, 이 허황된 방주들로부터 발길을 돌리십시오. 그리고 올바른 방주로 나아오십시오. 그런데 바른 방주로 와서는 또 문지방 앞에서 딱 멈추어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선 안됩니다. 많은 이들이 방주 앞까지 와서는 그 속을 들여다보기만 할뿐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도통 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방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잘 알면서, 막상 그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아내, 그리고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모두 데리고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방주에 대해 들어서 아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울면서 기도한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방주에 들어온 자들만이 안전합니다.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짐승들도 여기로 들어왔습니다. 숫사자와 암사자, 키가 큰 소들과 낙타, 표범 등속들이 그 우아한 목을 숙이고 방주 문을 통과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새들도 이 행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드는게 특기인 독수리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기어 다니는 것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개중에는 뱀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는 뱀을 보고는 "물릴지도 모르겠는걸."하고 말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이 뱀들도 방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그 어떤 죄인일지라도 모두 방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와서 변화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사자가 양 옆에 가서 눕고 표범이 어린 아이 곁에 앉아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질이 범같은 사람도 어린양 같이 순해지고, 교만한 사람은 겸손해 집니다.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네 번째로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아는 세상을 책망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오면서도 그는 세상을 책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심판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의 전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방주로 들어오는 행동 자체가 세상을 책망하고 저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불경건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는 어린 아이가 만일 방주로 들어온다면, 이는 곧 다른 가족들을 책망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형제들이여, 세상 사람들 거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습니다.

(마 24: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39)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었습니다. 신부들은 신랑 손을 잡고서 신방으로 들어가며 행복한 나날들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바로 그날에 홍수가 닥쳐왔습니다. 혹자는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 봐, 저기 마른 땅 위에 배를 만들고 있는 멍청이가 있어!"그들은 홍수가 닥쳐오기까지 노아를 조롱했을 거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방주에 대해 이야길 해도 여러분은 계속 자기 길을 갈뿐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합니다. 여기 이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진노의 홍수가 자신들을 휩쓸러버릴 때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갈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방주를 짓는 사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그를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여기 앉은 분들 중 많은 이들이 방주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고 "미쳤어."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는 그 옛날 사람들이 노아에게 했던 말과 동일합니다. 여러분, 미쳤을 지라도 방주로 들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노아를 비웃지 않고 오히려 방주짓는 일을 도운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아와 함께 나무를 자르고 방주를 만들었지만, 방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방주를 만드는 일은 돕지만, 정작 자신은 방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방주를 만드는데 일조하지만, 막상 자신은 방주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 아침, 방주 앞으로 나아온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 중에도 너무 늦게 방주 앞으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분명 있습니다. 이 중에 많은 이들이 죄의 찔림을 받고도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이렇게 외쳐댈 것입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마 25:11).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
엘리야를 데려간 하나님의 전차가 덜커덕거리며 내닫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을 두드릴 테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러한 진실을 보지 못하게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있는 치는 다름 아닌 마귀입니다.
 
드디어 대홍수가 밀어닥칩니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비가 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술집은 손님으로 미어터질 지경이었고, 행복한 신부들이 신랑을 따라 신방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세상은 환희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는 인자께서 오실 때에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대홍수는 갑작스럽게 닥칩니다.
 
수위는 엄청나가 높아졌습니다. 불어 오른 물은 방주를 아라랏산 꼭대기까지 올려놓았습니다. 물은 첫날에 벌써 400피트 높이로 불어올라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너무도 크고 끔찍한 홍수였습니다. 그런 홍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만한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삼켜버린 무서운 홍수였습니다. 이는 불의 홍수가 닥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계 16:7)“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주목하십시오. 죄 많은 이들이여, 어서 이 홍수로부터 도피하십시오!
(겔 22:14)“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
이 홍수가 그리스도께 닥쳤을 때 그분은 얼마나 고뇌하셨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방주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고통을 겪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않은 자라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영원히 추방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동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홍수가 닥쳐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전에, 어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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