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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무엘 루터포드 생애와 신앙

사무엘 러더퍼드

by 김경호 진실 2012. 4. 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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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루터 포드의 생애와 신앙       

  

 

 

 

   사무엘 루터포드는 스코트랜드 니스벳에서 1600에 태어나 1661년 3월 29일 소천했다.

17세에 에딘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현대철학을 연구하고 1621년에 문학 석사학의를 받았다. 1636년 깊이 회심하고, 1623년 대학 학감으로 임명되어 목회사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1627년 목사 안수를 받고 안워쓰(Anwoth) 교회청빙을 받았다. 안워쓰는 작은 시골 마을로 교회개혁 신앙을 굳게 붙든 교회였다. 그는 가르침과 성경 연구, 기도, 설교, 심방으로 일관 했고, 잠은 6시간 정도 잤다. 그는 장로회 주의자로 장로교 사상을 가르첬으며(영국에 맨 처음 장로교를 세운 사람은 토마스 카트라이트 이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보게하며, 그의 나라에 거하게 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였다.

 

 그는 행도가로 당시 스코트랜드에 불어닦친 국가와 교회와의 갈등에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사람이였다. 그는 감독주의 제도를 부정함으로 반역자로 소반되었고, 장로회주의 사상을 절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면직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에딘버러 법정에서 처벌을 받고 1636년 7월에 아버딘으로 감옥으로 유배를 당했다. 루터포드는 아버딘 감옥을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묘사하면서 주님이 게신 곳은 그 어디나 천국임을 입증했고, 혹독한 겨울에 하나님의 은혜의 꽃이 활짝 핌을 증거하여 진리 때문에 고난 받는 성도들을 크게 위로했다. 그이 목회 사역은 장로회주의를 굳게 심었으며 진리를 위하여 사느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1638년 2월 28일 [국가 언약]일 날 감독주의를 몰아내고 존 낙스의 후예들인 확고한 장로회주의 자들인 언약도들이 탄생했다. 이에 루터포드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1638년 루터포드는 제2의 교회 개혁이라 부리는 그라스코 총회의 총대로 파송되어 감독주의자들고 맞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싸웠다. 이 때 총회는 루터포드를 성 애느류대학 교수로 가라고 요청한다. 성 앤드류대학 교수로 옮겨온 그는 역량을 발휘하여 교회를 바르게 이끄는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루터포드는 웨스터민스터 회의에 스코트랜드이 대표 총대로 파송을 받아 베일리 길레스피, 핸더슨과 함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논리로 장로회정치 사상을 전개했다.

 

그는 1644년에 [왕과 법]을 집필하여 백성들을 일깨워 왕과 백성들 사이에 투쟁을 자아냈다. 그당시 왕은 법 위에 군림한다는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였다. 이 책은 언약도들의 정치원리와 정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발가힌 책이다. 왕권신수설과 절대군주론을 굳게 붙잡은 왕으로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배포된 책은 모두 수거하여 불에 태웠다. 그당시 루터포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병석에 있는데 법정에서소환을 했으나 출석할 수 없음으로 결석재판을 하여 목사 면직, 교수직 박탈, 총장직 해임, 그리고 가택연금이 되었다. 그는 1660년 5월에 찰스 2세가 즉위하여 언약도들을 숙청할 때 그를 잡으러온 사람들에게 “먼저 하늘의 부름이 있으니 왕의 소환에 응할 수 없으며 하늘에 부름에 순종해야 한다. 나는 몇 안되는 군주들과 위대한 양무리들만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노라”고 말한 뒤 곧 숨을 거두었다. 그는 1661년 3월 29일 아침에 그리스도의 품으로 갔다.

 

그의 서신들

 

그는 에버딘 감옥에 거하는 동안 쓴 편지를 보나 박사께서 편지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기의 소유된 백성임을 압니다. 뒹구십시오, 싸우십시오, 전진하십시오, 공경하십시오, 믿으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자라는 증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마음의 공포가 낙담케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공포심이 없이는 우리가 일어설 수 없습니다. 두러움과 의혹이 우리를 흔들고 있지만 두러움과 의혹이 없다면 우리는 곧 잠에 빠져들고 말것입니다. 형제들이 전진하십오 여러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진리를 굳게 붙드십시오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극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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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이라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대의 조류를 따라 진리를 외곡하고 포기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이 언약을 여러분에게 계시하여 줄 것입니다. 구원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종종 소수의 사람만 이 구원을 받고 수 많은 사람들이 정죄를 받는 다고 말해 왔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죄로 한번도 밤이 맞도록 고통하거나 아픈 마음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면 당신은 아직도 그리스도로 비침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1. 여러분이 가진 것을 다 주고 진리를 사고 싶어하고 진리 때문에 고난을 기까이 당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편에 있는 사람입니다. 2. 율법이나 지옥의 형벌이 두려워서 행하는 것 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죄짓는 일을 제지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3. 세상의 영욕을 기꺼이 버린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4. 여러분이 선행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랑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5.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에 목적을 두며 진리를 파수하다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당신은 당당하게 죽음을 응시하고 당신의 영혼을 기꺼이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까지는 편하게 살 생각을 마십시오 죄는 우리의 슬픔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스러운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비와 용서와 치유와 회복의 섭리가운데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1638년 국가 언약과 앤드류대학에서 교수 생활

 

국가 언약은 교회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위기 상태를 고려하여 국가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기로 동의했다. 루터포드 목사는 1638년 2월에 아버딘(유배지)를 떠나 그레이 프라이어 교회당으로 향했다. 그 해 2월 28일에 그레이 프라이어 교회당에서 국가 언약 문서에 사람들이 서명하는 날이 였다. 이로 인해 1638년 11월 21일에 글랏,고에서 자롭게 총회가 열릴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총회장인 알렉산더 핸더슨 목사는 총회가 찰스 왕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였다고 선언하고 1618년 제임스 1세가 만든 퍼스 5개 조항을 폐지함으로 성직자들에게 강요했던 국교식 명세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그리고 14명의 감독주의 성직자가 이단성과 독재정군에 빌 붙어 음행과 신성 모독을 한 이유로 파면되었다.

 

이제 스코트랜드 교회는 앤드류 멜빌의 영향아래 누렸던 과거 찬란한 영광이 회복되기를 원했다. 그 역할을 충실히 맡아줄 사람으로 루터포드를 성앤드류 대학 교수로 선출했다. 한편 찰스1세는 군대를 일으켰으나 두 번이나 패배 후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그 때 아일랜드에서는 교황주의자들에 의해서 1641 10월에 10만명이나 확살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로인해 1642년 잉글랜드에서 시민전쟁이 발생한다.

 

알미니안 주의와 논쟁

 

간단히 말해서 알미니안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고 믿고, 가르친다.(예정과 선택을 부인하고, 만인구원설을 주장함)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는 분이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죄인에게 구원의 은헤를 주실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은 그것을 거두어 가실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단독으로는 사람을 구원하실 수 없고, 사람의 협조해 주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칼빈늬 5대교리를 정면으로 부인한다.

 

법과 왕

 

사무엘 루터포드 목사는 일반적으로 정부의 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므로 백성들은 권세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했다(롬13:1-5). 그러나 폭군정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다. 권세를 하나님이 주신 것은 선을 이루기 위함이다. 왕은 백성들을 위하여 임명된 존재이기 때문에 왕은 백성들을 먹일 공적인 목자이다. 왕은 주님의 기업의 대장이요, 지도자로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권력은 하나님께로 온다. 2. 권력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것을 거스리는 것이다. 3. 권력은 선한자의 두려움이 아니라 악한자의 두려움이 되어야 한다 4. 위정자는 백성의 유익을 도모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러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백성을 유익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아니다.

 

관용에 대하여

 

루터포드는 1649년 [양심의 자유로 가장하는 것에 대한 반박론]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양심을 하나님의 계시된 뜻보다 우선시하는 자들을 대적하기 위한 글이다. 양심의 자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양심은 인간들의 계휼이요, 재판장이며 성경이다. 양심은 인간의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그 양심을 따라 살면 최악의 상태에도 경건하고 이단자가 될 뿐이다. 그의 양심을 창조주 하나님 보다 더 경외하는 거룩한 이단자 일 뿐이다. 고로 양심은 부패한 양심이며, 책망과 권면을 받아야 할 양심이다. 양심으로부터 나오는 훈계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죽음을 당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이단은 단지 오류나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적인 파괴자이다. 양심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회중주의자들은 양심에 자유에대한 그들의 결론을 akdmad속에 숨기고 장로회주의와 언약을 맺으며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상을 간작하겠다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런으미에서 양심의 자유는 하나님의 말슴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요 일치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 파기자들을 엄히 벌하시고 재난을 가하신다. 여호와께서 직접하시든지 아니면 사람들을 통해서 벌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재정하신 권세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자유는 파괴하는 것이아니라 피차에 지지하며 보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한신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로하여 국가적이고, 교회적인 합법적 권세 또는 함법적 실행에 반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규례에 반항하는 것이다.

 

율법 폐기론자

 

율법폐기론주의는 1640년대 하나의 중요한 분파였다. 그들은 바울을 율법주의자로 선언했다. 그들은 은혜가 그리스도의 삶으로부터 율법을 제거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율법을 어기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은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롬3:31, 6:1-2, 갈5:13에서 강력하게 반박한다. 그러므로 모세가 전한 계명과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든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여구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이 명백하다. 1.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이 도덕법을 지키라고 했다(롬13:8-10, 약2:1-12)이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게명임을 보여주고 있다. 2.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림자를 제거하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행15장, 갈5장, 골2장)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사랑을 제거하라는 내용은 한군데도 없다. 그러므로 순종에 대한 새로운 의무는 십계명의 본질을 결코 변화시키지 않는다. 즉, 복음은 인간의 의무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복음은 율법이 무엇이든간에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명령하신다. 율법도 거룩하고 순전하며 그의 거룩하과 같이 거룩하라는 명령에 있어서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마5:48, 벧전1:15, 신27:26, 갈3:10)

 

율법 폐기론자들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거나 죄를 인하여 죄로인하여 책망을 받는일이 없도록 한다. 양심 속에 그 어떤 죄책도 남아있지 않게 한다. 그러나 우리기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다고 할 지라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셨다. 우리는 모두 죄책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죄가 내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신다. 이제 우리는 정죄를 위한 죄가 아니다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믿음은 죄를 제거할 정도로 양심을 마비시키지 못한다. 둘째 아담(예수님)이 우리의 영혼 속에 빛을 들고 오셔서 전에 숨겨져 있던 죄를 보게하고 알게하시며 믿음의 조명하에 느끼게 하신다.

 

신자의 내적 평강은 성화가 아닌 칭의로부터 추적하는 것은 율법폐기론자의 실수이다. 칭의는 속에 거하고 있는 죄를 제거하지 못한다. 느낌과 이성과 양심차원에서 죽는날까지 죄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그 남아있는 죄 때문에 정죄 받는 죄인(지옥 갈 죄)은 아니다. 도리어 우리는 율법의 통치로부터 자유함을 얻은자들이다. 우리를 의롭게 하거나 정죄할 수 없는 율법의 통치로부터 자유를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가된 그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율법은 구원받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성화를 이루어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벧전1:5)

 

 

 

 

 

 

 

 

 

 

 

출처 : 왕림장로교회
글쓴이 : 自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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