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곳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
중보자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점은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우리 죄악은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완전히 격리시켜서 하나님과 잇다은 사람이 아니면 화평을 회복할 중재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아담 자손 중에 그런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담의 모든 자손은 하나님을보기만 해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천사 중에 누가 중보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천사들도 하나님께 연합시켜 주는 머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았다면 상황은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이 중보자가 되신 것은 합당한 일이었습니다. 아니라면 우리의 더러움과 흠 없는 하나님 사이에 모순이 너무 커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친밀함도, 강한 유대감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해도 중보자 없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기에는 너무 미천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치명적인 타락으로 사망과 지옥에 던져지고 너무 많은 얼룩으로 더럽혀지고 부패로 인해 혐오스럽게 되어 온갖 저주로 뒤덥혔을 때, 인간의 처지는 어떠했습니까?
바울이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사람이라고 천명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딤전2:5)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생략할 경우, 인간이라는 호칭도 생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아시므로 그 연약함에 가장 적합한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 앞에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 제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중보자를 찾을지, 또는 어떤 방법으로 중보자에게 나아갈지 갈피를 못잡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분이 우리와 가까이,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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