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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교회 사경회 (영적분별력 1) 이은철목사

이은철목사(정읍)

by 김경호 진실 2012. 11. 17. 18:39

본문

영적 분별력이란 무엇인가?

(고전 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사경회를 통하여 영적 분별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 분별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분별력을 어떻게 높이 세우는가?에 관하여 3일 동안 성경을 밝히는 사경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영적 분별력이라는 말은 “신령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분문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이란 말이 나옵니다. 육에 속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는 육체”에 관한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신령한 것에 대하여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미련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모든 일로써 한 마디로 말하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입니다.

(엡 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 점과 흠이 없는 거룩한 자로 서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를 자기들이 좋게 여기는 것으로 육에 속한 축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과 육의 관계 하늘의 것과 세상의 것의 관계, 하나님의 것과 세상 것의 관계를 바르게 알고 분별하는 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거룩함 등 진리에 관한 일이며 이를 오직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에 대하여 성령을 통하여만 신령한 일을 분변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전 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하여 알고, 성령의 가르치신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 분별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시 이스라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찾아 왔을 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오직 물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3:1)“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4)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당시 유대인 관원은 상당한 지식과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말했는데 그때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선지자나 혹은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은 출교하도록 종교적인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정한 때였습니다. 비록 밤중에 찾아왔지만 예수님을 인정한 것은 큰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칭찬에 고무되어 네가 하나님 나라가 멀지 않다든지, 너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은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나느냐?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고 와야 하느냐? 라고 이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것 외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니고데모였습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난 사람의 특징에 대하여 6-8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요 3: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요 3: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알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 3:12)“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모두 동원해도 알 수 없는 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일입니다. 오직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세워질 때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던 아볼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행 18:24)“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25)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27)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28)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행 19: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2)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3)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4)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5)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7)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과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머물다가 다시 3차전도 여행을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지역을 다니며 제자들을 굳게 하는 동안에 에베소에 교회에 있었던 사건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사도바울을 돕던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는데 이곳에 찾아온 사람이 아볼로였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자란 유대인이었는데,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은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대학교가 세워졌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웠고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배운 사람으로 예수에 대하여 열심히 그리고 자세히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습니다. 이 아볼로가 에베소에 이르게 되어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에베소에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의 설교를 듣고 그를 데려다가 주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장1-7절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증거 해주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믿는 다고 하는 제자들이지만 역시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행 19: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볼로와 마찬가지로 요한의 세례만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행 19:2)“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3)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아볼로와 같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성경에 능통했고, 예수에 대하여 배워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에베소지역에 있었던 사람들도 믿음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는 제자들이지만 이들 모두가 아는 것은 요한의 세례뿐이었습니다.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하였고 성령에 관하여 들었어도 성령을 통하여 거듭남이 없다면 모두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 없는 그야말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거듭남과 거듭남이 없는 사람의 차이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고, 복음을 배워서 알고 가르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거듭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만나 회심하고 복음에 동역한 지는 불과 1년6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영적 분별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와 에베소지역의 제자들은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격적인 앎과 지식적인 앎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고 병도 고치고 능력을 행했어도 주님은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일뿐인 것은 구원은 “내가 하나님을 알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신바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거듭나기 전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바울도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단지 나사렛 사람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후 5: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에 대하여 알기를 육체대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거듭나기 이전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집사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자로 스데반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의 옷을 맡아 있을 정도로 열렬한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곧 철저한 종교인으로 유대교를 따르고 믿었던 율법주의자로 나사렛 예수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은 자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과 사상과 행동을 같이하는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가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회심하기 이전의 사울이었습니다.

(행 26: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산헤드린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나사렛 예수는 이단이었습니다. 성전을 헐고 율법을 폐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예수에 대하여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서는 이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형해 해당하다고 판단하여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일인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던 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편 투표를 하였고,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완전히 멸절시킬 생각으로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을 간 것입니다. 이 일이 사울에게 있어서 얼마나 열심이었습니까? 그래서 사울은 살기등등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공의 적이었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은 아예 씨를 말릴 생각이었습니다. 거듭나기 이전에는 예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는 "주여 뉘시오니까?"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 안에 들어오시고 그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는 자신을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살았던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목회자, 거듭나지 못한 신자들이 무수히 많은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때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볼로와 같이 복음을 배워서 가르치는 목회자들, 개혁신앙이라고 하지만 그저 개혁신앙을 배워서 따르는 목회자들, 제자들이라고 하지만 제자훈련을 통해서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때입니다. 배우고 훈련을 통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볼로와 에베소지역의 제자들이 아는 것은 요한의 세례 곧 물로 받은 세례뿐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버리고 떠나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눅 3:3)“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10)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1)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13)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14)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15)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16)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17)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요한이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고 외치자 유대인들중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면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자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가르치면서, 외식자들과 바리새인에게는 경계를 했고, 백성들에게는 구체적으로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 세리들에게는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군병들에게는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고 죄를 떠나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두려워하여 세례를 받고 죄를 떠나는 삶이 요한의 세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 개과천선하는 사람들 그렇게 믿고 있는 신자들의 모습이 바로 세례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세례는“불과 성령“의 세례입니다.

(눅 3:16)”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17)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불과 성령의 세례는 오순절에 성령의 임하심의 모습이 가시적으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고 증거하고 있지만 그것을 불과 성령의 세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는데 그것을 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곡은 곡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되도록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에게 믿도록 성령을 통하여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 세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어떻게 주십니까?

(행 19:2)“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믿을 때에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을 때에는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들을 때에 믿음을 주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역사입니다.
(행 10:44)“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성령께서는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셔서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루디아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심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믿을 때에 성령을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믿습니까? 세례요한이 증거한대로 내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행 19:4)“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5)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함으로 이를 듣고 믿음으로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때에 성령이 이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거듭났을때 에베소교회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거짓 교사들 까지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계 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고 거짓 사도를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드러내는 영적 분별력을 가진 교회가 된 것을 칭찬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일 뿐이며 주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거듭남은 구약의 욥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교만과 꾀를 버리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욥이 알 수 없는 하늘의 일 곧 사단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를 전혀 알지 못한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욥을 죄인처럼 여기고 인간의 경험과 인과응보적인 세상 사람들의 일의 하나로 여기며 욥을 정죄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너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의 대가로 징계 곧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삶을 내세워 죄가 없는 나를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은 의롭지 못하시다"라고까지 할 정도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교만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욥은 애매히 당하는 고난 혹은 하나님께서 그를 고난을 통하여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전과 흠이 없는 아들들로 세우시기 위하여 다스리시는 섭리를 이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충만했던 한 젊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영적인 일을 분별했던 엘리후였습니다.

(욥 34: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2)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3)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4)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엘리후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욥 32:8)“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9)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욥 33:1)“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2)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3)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4)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과 함께 그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비록 그들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인격 가운데 전능자의 기운, 곧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후는 성령을 통하여 욥과 세친구들의 말을 귀로 들으면서 이들이 죄를 드러내고, 특히 욥의 가진 의는 하나님 앞에 이를 수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의를 증거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심으로 욥은 하나님께 회개하였고, 세 친구들은 욥이 중보자가 되어 세 친구들을 구원받는 일을 한 것입니다.
엘리후 같은 탁월한 능력의 영적 분별력을 가질 때에 오늘날 내가 믿는 신앙이 바른 것인지?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이루어져 가는 그리스도인인지? 우리 교회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세워져 가는지?
이를 상고하는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롬 14:22)“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서게될 사람들입니다.
(롬 14:12)“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바른 믿음의 분력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영적 분별력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가능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지식으로 들어서 알 수는 부르고 알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죄와 심판과 진노와 형벌과 지옥을 모릅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앎의 관계인데, 이것은 세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한다고 하셨을 때 물이 이 세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벧전 3: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세례는 물에 잠겨 몸을 씻어 더러운 것을 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자기 몸을 찢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통해 새롭고 산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를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믿음을 주실 때에 선물을 받는 것이며, 이는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의 것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를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골 2: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임이 믿어져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지냄과 부활 승천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이 나와 하나로 연합된 관계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행하신 모든 일이 기록된 성경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되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고, 믿어지지 않던 것들이 모두 다 믿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것은 믿어지고 어느 것은 믿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말씀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주셔서 그 믿음이 성령을 통하여 사용되어지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그 말씀이 송이꿀 보다 더 단 말씀이 되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벧전 1:23)“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거듭나는 것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믿음을 선물로 받는 것,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되는 방편은 오직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표적 혹은 방언이나 병고침의 능력 같은 것들을 보든지 듣든지 하여 체험이나 환상 같은 것들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은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눅 16:27)"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9)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30)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1)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잘 아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비유의 말씀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주인이시며 지옥의 권세까지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천사들에게 영접되어 믿음의 조상이 간 곳 아브라함 품으로 들어갔고, 부자는 날마다 잔치를 벌여 마치 왕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지옥 불꽃 가운데서 고통속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방울의 물을 요구했지만 그마저 거절당하지 그는 자신은 비록 지옥에 떨어졌어도 자기 형제 다섯명을 위하여 청원을 합니다. 자신이 지옥에 있기 때문에 형제들은 제발 지옥에는 오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나사로는 내 아버지 집에 보내어 권면 즉 전도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고 하자 "아닙니다. 죽은 자가 살아서 가서 전하면 들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모세와 선지자에게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가서 전해도 권함을 받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와 선지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믿지 않으면 죽은자가 살아서 전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전하는 것이 복음이며, 죽은 자가 살아나신 분은 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복음 즉 성경을 통하여 믿음을 얻는 것이지 어떤 체험을 통하여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가는 자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로 결국 지옥을 떨어질 사람들입니다.

(살후 2:9)"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11)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 속에는 표적, 거짓 기적, 예언 방언 같은 이러한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이적은 한시적으로 성령께서 주신 은사이며 이제는 오직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성령의 은사는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돌같이 단단한 마음 완악하고 거짓되고 부패하고 무능한 내 마음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적이며 은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 성경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고 믿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선물의 결과입니다. 스스로 배워서 얻는 지식과 능력도 아니고 체험 역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 이것은 사람으로서 최고의 존귀함이며 영광이며 축복입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신령한 것을 알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거듭나게 되는 동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떠는 자들입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떨게 됩니까?
그것은 임박한 진노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운데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은 없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않다고 하시고, 이것을 죄악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심판하신다고 타락한 인간이 살아가는 처음부터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은 아담의 칠세손입니다.

(유 1:14)“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15)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아담의 칠세손이지만 당시 수명이 거의 900세 이상이었습니다. 아담은 930세에 죽었고 에녹은 아담이 622세 때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365세에 하나님께서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가셨는데,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증거 했습니다. 특별히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이 죽었을 때에 당시 모든 후손들은 아담을 땅에 묻기 위하여 모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57년 후에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는데 그때에 죽은 사람은 아담 외에는 없었을 때였습니다. 아담의 아들 셋도 살아있을 때였습니다. 에녹이 하늘로 들려간지 55년 후에 인류의 두 번째 조상 셋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경건치 않은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증거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하늘로부터 하나님 진노가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임한다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 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 떨고 이 진노를 피하여 가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이며, 방패와 요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의 돛과 같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히 6: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19)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분으로 맹세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은 기업에 대한 보증이신데,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까지 맹세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말씀입니다.

(롬 4:22)“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23)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의롭다하심같이 동일하게 의롭다고 하시며, 이 약속은 맹세로 보증하였기 때문에 결코 정죄와 진노와, 심판과 형벌을 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노를 피할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복음을 이루시고 그 사역의 결과를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어찌됩니까?

(살후 1: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의 방식은 오직 육에 속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부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비유로 알려 주셨습니다.
(눅 12:16)“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17)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18)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많이 쌓아 놓고 편히 먹고 쉬고 마시고 즐기자”오로지 보이는 육체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도 마찬가지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며 살았습니다. 영혼이 자기의 본질이며,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사람의 참된 행복이며 축복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하여 만자 오천명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다음날도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은 다 떠났고 다시는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제자들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셨을때 제자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영원히 살게 하신 영혼 구원의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알고 믿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제자들도 자신이 스스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신 자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자들,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것을 채우려는 것들 모두 주님과 관계없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 베드로는 훗날 쓴 편지에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분명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 그리고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똑같이 편히 먹고 마시고 쉬고 즐기는 것처럼 여기면서 하나님을 믿는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곳입니까? 이러한 자들은 모두 지옥 불에 떨어질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도록 지음 받은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은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그리고 그 대답은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그리고 하나님자신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자신은 즐거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주신 것만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이유가 있음을 증거 합니다.

(고전 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들에게 왜 주셨는가?
(고전 2:9)“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자기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은 택하심과 부르심과 거듭남으로 세워집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나셨습니까? 성경이 모두 믿어지십니까?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믿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며 존귀함이며 축복으로 여기고 살아가십니까? “아멘 혹은 예”라고 마음으로부터 당당하고 담대하게 대답하시는 분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아니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진리와 거듭남 등 보이지 않는 영에 대한 증거를 미련하게 여긴다든지, 설교 하는 목사의 이론과 주장이나 신학 사상으로 여긴다면 그러한 분은 영적 분별력이 없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는 마음으로 듣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영적 분별력에 관한 말씀은 이것으로 줄입니다. 내일은 그리스도인들의 분별하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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