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칼빈의 그리스도 삼중직론 이해(속죄론 및 교회직분론에서)

문민규목사(평택)

by 김경호 진실 2013. 1. 3. 09:12

본문

 

첨부파일 칼빈의_그리스도_삼중직_1015-1(미주).hwp

칼빈의 그리스도 삼중직론 이해

(속죄론 및 교회직분론에서)

문민규 목사(반석교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가리켜 누구냐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고 고백하였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신자가 되고 교회가 되고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본 논고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기독교 역사적 관점에서 초대교회시대부터 종교개혁시대까지 전개된 대속의 교리를 소개하고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잘 드러낸 그리스도 삼중직(三重職)(초판부터 최종판에 나타난)에 대한 바른 이해와 칼빈 이후에 나타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에 미친 영향, 그리고 후대에 개혁교회가 적용한 내용들을 살펴보고 개혁교회의 구원의 통전적이고 교회적인 신앙 즉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과 그리스도인의 직분에 대해 논할 것이다.

 

1. 기독교 역사(歷史)에서의 그리스도 대속(代贖)의 교리

  기독교 교리의 한복판에는 대속의 교리가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다는 내용으로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초점이다.

1) 초대교회 대속의 교리

  초대교회 시대의 대속의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대속으로 사탄의 결박 아래 있는 사람의 몸값을 지불했다는 속전교리를 믿었다. 즉 사탄이 우리 시조의 불순종에 힘입어 인류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획득하고서 그들을 죄와 사망의 사슬로 결박했다고 생각했다(비교 히2: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풀어 주시려고 오셨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는 사탄에게서 거두신 승리를 규정한 대가, 즉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법적 속전을 지불하신 일로 믿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교부들 다수가 이런 속전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조차 사탄의 권리들을 주장한바 있다.

2) 중세교회의 대속의 교리

  여러 대속의 교리(아퀴나스 포함)가 있으나 그 중에 대표적으로 안셀무스(1033-1109)의 주장을 소개한다.

우리는 죄를 지었는데 우리가 지은 죄는 하나님께 지은 죄다. 감히 하나님께 지은 죄이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의 죄는 무한히 큰 죄다. 죄가 무한한 죄이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형벌도 무한하다. 그래서 죄를 갚음도 무한하게 갚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에게 무한이라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죄 갚음을 무한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만 한다. 구약에 나오는 양과 같은 짐승들의 희생은 그림자나 예표일 뿐 그 자체가 실제로 우리 죄를 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만 하는데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갚을 사람이 없는 것은 사람들 모두가 남의 죄 갚기는커녕 자기 죄 때문에 자기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각각 지은 죄는 무한한 죄로 우리 각자가 갚아야 하는데, 우리는 무한한 죄를 갚을 무한한 보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이 지은 죄이기에 사람 자신이 갚아야 하는데, 그 죄가 하나님께 지은 무한한 죄라 그것을 갚을 능력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신인(神人, God-man), 즉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

  이것이 바로 안셀무스의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에서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이유이다. 인간의 죄는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데 그 죄가 무한한 죄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 죄를 갚을 수 있는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셔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완전한 순종의 삶을 의무로 떠맡으신다. 죽음은 그분의 몫이 아니다. 죽음은 죄의 삯인데 그분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공로를 얻으신다. 이 공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되므로 가치가 무한하기 때문에 죄인의 무한한 죄책을 덮으며, 필요한 만족을 이룬다 는 것이다.

  안셀무스는 교부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견해, 즉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탄에게 지불된 속전(贖錢)이었다는 견해를 배척했다. 그리고 안셀무스는 죄책을 강조하는 바른 태도를 취했다. 죄책을 진지하게 다룬 그는 그것이 단순한 과오가 아니라 율법을 범한 것이며,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초대교회 때 속전을 사탄에게 지불한다는 데서 더 나아가 인간의 죗값을 하나님이 치른다는 교리는 훨씬 더 성경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안셀무스는 속죄를 설명할 때 신적 본성의 도덕적 측면보다 법적 측면에서 다루었다. 따라서 공의의 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인간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오로지 상급자에 종속되는 관계로만 설명했다. 인간 구속을 이루신 분이 주권자와 재판장이신 하나님임을 강조하여 우리의 죄를 추궁하는 냉정한 분으로 여겨질 수 있어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하나님의 부성(父性)은 감추어졌다.

3) 종교개혁자의 대속의 교리

  종교개혁자 중에서 칼빈(1509-1564)의 대속교리를 소개한다.

  칼빈의 대속교리는 그리스도의 삼중직(三重職) 교리로 증거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와 제사장이시며, 또한 왕이시라는 삼중직 교리가 칼빈의 대속 교리의 중심이다. 이 그리스도의 삼중직 주장은 확고한 성경적 근거에 충실하다. 비록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한 용어나 내용을 교회의 신학적 전통으로부터 받았지만, 교리의 모든 주제에 대해 그러하듯이 이 주제 또한 성경적 주석학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칼빈에게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확실한 성경주석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1536)의 내용 중 그리스도의 직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겠다.

이 분이 실로 아버지의 음성과 하늘의 고지(告知) 불리신 바(눅 1:30-35; 2:21) 예수시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사람들에게 주신 다름 아닌 이 이름으로 우리가 구속되어야 한다(행 4:12).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의 모든 은혜들로 쏟아 부음을 받았다고 믿는다. 이것들은 “기름"이라고 불린다(시 45:7; 89:20). … 이와 같이 성령께서 그 분 위에 머무셨고 자기 자신을 전체적으로 그 분에게 부으셨으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형제자매요 그 분과 함께 한 자가 된 우리 각자가 그 분의 충만함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도록 하셨다(사 11:1-5;61:1-3; 요 1:16). 종국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기름부음으로 아버지에 의해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자신에게 복종시키시는 왕으로 세워졌으며(시 2:1-6) 이로써 그 분 자신 안에서 우리를 왕으로 삼으셔서 마귀와 죄와 죽음과 지옥을 이기는 통치권을 가지도록 하셨다(벧전2:9).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물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해서 마음을 누그러뜨리시고 우리와 화해하시게 하신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자신 안에서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자신이 중재자요 중보자가 되셔서 아버지께 우리의 기도, 감사함,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제물로 드리게 하셨다(계 1:6; 시 110:1-4; 히 5: 1-10; 13:15-16). 따라서 유일하신 주님은 그 분 자신이라고 우리는 인정한다. 그 분께서 우리를 맡아 다스릴 자로 아버지에 의해서 세워지셨다.

  즉,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구약에서 선지자, 제사장 및 왕은 그들의 직무들에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구원자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 제사장, 왕이시라는 것이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선지자, 제사장, 왕의 삼중직으로 표현한 칼빈의 대속교리는 가히 대속교리의 만개(滿開)된 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왕직만 소개되나 다음에 논거 할 “그리스도의 삼중직 교리사적 고찰”에서 그 분의 선지자직도 소개하겠다.

 

2.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교리사적 고찰

1) 그리스도 삼중직 역사

  안셀무스는 “하나님은 왜 오셨는가?”하고 화두(話頭)를 던지고는 만족설을 말하였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구체적으로 증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왜 오셨는가?”에 대한 답을 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칼빈의 그리스도 삼중직(munus triplex)을 논하는 것이 신학계의 관례로 되어 왔다. 이 삼중직의 요소들은 종교개혁 이전부터 세 가지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각각 다루어지거나, 두 가지 정도가 함께 다루어진 경우는 있지만 세 가지 직분을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체적으로 적용시킨 것은 칼빈이다.

  칼빈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구체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강요 초판(1536)에는 그리스도 왕직과 제사장직은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은 주기도문 가르침에서, 그리그 교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를 세운 것으로 볼 때 간접적으로 선지자직을 표현하였다.

  기독교강요 1539년 판에서 비로소 기름부음을 받은 자 가운데 선지자도 포함되어 나온다. 1537년에 작성한 「신앙교육서」(Instruction in faith)를 새롭게 구성하여 만든 것이 「제네바신앙문답서」(1542)인데, 이 문답서에 문 34부터 문 39까지에서 그리스도 삼중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후 기독교강요 1559년 최종판에서 삼중직은 독립적인 장으로 구성되었다.

2) 칼빈의 그리스도 삼중직론(三重職論) 이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1559) 2권15장의 순서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삼중직 교리에 대해 기본적 이해를 하고, 앞에서 열거하지 못한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에 대해 소개 하겠다.

(1) 교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

  신자들의 기초는 오직 교회에 있다. 신자는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부지런히 살펴보아야 한다.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위한 확고한 기반을 찾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명하신 직분이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는 원리를 반드시 세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으로 주어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직분들의 목적과 용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 이름들만 아는 것은 별 가치가 없을 것이다. 교황주의자도 이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칭호들이 담고 있는 내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냉랭하고 효과도 없이 사용할 뿐인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의 의미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세 가지 직분에 관계되는데, 율법 아래 제사장들과 왕들 그리고 선지직도 거룩한 기름으로 부음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그 내용이 자신에게 하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을 들어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사 61:1-2. 참조). 이처럼 그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름 부음을 받아 아버지의 은혜를 선포하는 전령(傳令)과 증인이 되시는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지만 동시에 성령의 능력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서 계속 임재해 있도록 그의 몸 전체를 위하여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전하신 완전한 교리가 모든 예언들을 종결지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우리의 지혜로서 주어지셨다(고전 1:30)고도 말씀하며 또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고도 말씀하는데, 여기서 그는 약간 다른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없으며, 그가 어떤 분이신가를 믿음으로 깨닫는 자들은 누구나 하늘의 은혜의 그 광대함을 깨달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지자적인 위엄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신 교리의 대요(大要)속에 완전한 지혜의 모든 부분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3권 15장 3-5항은 그리스도 나라의 영원성과 그리스도 왕직에서 오는 영적 축복,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직의 영적 성격을 말하고 있고 6항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해서 증거 하였다. 

 

3. 그리스도 삼중직이 교회에 끼친 영향

1) 신앙고백 및 요리문답 속에서의 그리스도 삼중직

  그리스도의 삼중직교리는 오늘날에도 신학적으로 구속론과 구원론의 의의를 가질 뿐만 아니라 교회론에서도 중요하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용도와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쓴 유일한 목적은 종교에 대해서 여하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참경건을 형성 하는데 필요한 어떤 근본적인 사항들을 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이 일에 땀을 흘리며 애쓴 것은 제가 목도(目睹)한 그리스도를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을 지닌 수많은 모국 프랑스인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들 중에 단지 소수만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조금 젖어 있을 뿐입니다. 이 책 자체가 말하는 바와 같이 저의 저술 의도는 간단한 그리고, 말하자면, 소박한 가르침의 형식을 제시함에 있습니다.

  칼빈은 당시 로마 가톨릭이 분노하며 버린 교리의 본질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교리라고 표방하는 세력에 의해 오히려 그 교리를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고 심지어 이단으로 몰려 추방당하기도 하고 생명까지도 잃고 있다고 하였다. 경건치 않은 자들이 득세함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진리가 추방되고 흩어졌으나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려져 있고 파묻혀서 비천하게 숨겨져 있으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변증의 보루는 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교리를 보전하는 것임을 천명(闡明)한다.

  칼빈의 영향으로 많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속에 칼빈의 그리스도 삼중직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제네바요리문답(1538, 1541/1542), 벨직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1563), 제2헬베틱신앙고백(1566),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647), 대소요리문답에 교리적 항목으로 삼아 확실하게 하였으며, 개혁교회(장로교회)들은 신앙고백으로 채택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고백으로 믿고 따르며 내용을 공유하도록 가르쳤다.

2) 칼빈의 교회직분론

  칼빈은 교회의 직분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수단으로 이해한다. 그는 “주님은 아무런 도움이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아니면 천사들을 통해서라도 그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셔서 그 일을 하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며, 계속해서 사역의 의의, 사역의 위엄과 특권, 에베소 4장에 나타난 교회의 직분들, 일시적 직분으로서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와 일상적인 직분들에 대해 목사와 교사를 설명하고, 그리고 장로와 두 가지 종류의 집사직이 교회에 있어야 할 직분임을 천명(闡明)한다.

3)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2문 해설과 삽입에 대해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2문에 대해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는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한 자들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 기름 부음그리스도의 은사들과 직분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communion)을 의미한다. 혹은 그리스도의 모든 은사들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며, 그리스도의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한다는 것은, 성령과 그의 은사들에 참여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선지자직과 제사장직과 왕직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는 뜻이다.”고 해설하였다.

  일부에서 출판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2문은 기존에 출판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2문과는 다르게 요리문답 안에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또한 왕으로서’를 삽입하여 신앙고백으로 채용(採用)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제32문은 “그러면 그대는 왜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인데 그 대답은 교회가 해야 할 신앙고백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신앙고백(신조)과 그 고백에 대한 해석은 다르다. 그런데, 일부에서 발간된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제32문에 삽입된 것(각주 57)은 그 고백에 대한 해설로서나 가능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신앙고백에 삽입하여 일부교회에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삽입된 연유나 근거에 대해서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신앙고백에 대한 해설과는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부교회에서는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제32문에 삽입된 내용을 유추하여 교회의 직분은 목사, 장로, 집사 즉 교회 직분은 이 삼중직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부 학자는 “...그리스도께서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그의 ‘선지자직’으로는 (목사직을 통하여) 가르치고, 그의 ‘왕직’으로는 (장로직을 통하여) 다스리시고, 그의 ‘대제사장직’으로는(집사직을 통하여) 긍휼의 왕국을 보여 준다.”라고 주장한다.

김영규는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어떤 권세를 그의 교회에 선물하였다. 그 때문에 세 가지 방식의 권세가 있고 그 권세에 따라 목사와 장로, 집사가 있고 역시 그리스도의 삼직 즉 선지자직, 왕직과 제사장직이 그 직책들과 결합되고 있다. 이렇게 교회에는 세 가지 권세가 구별되어 존재한다. 즉 가르치는 권세(potesta docendi), 다스리는 권세(potestas gubemans), 자비의 권세(testas seu ministerium misericordiae)이다.” 라고 주장한다.

  김영규의주장은 교회의 직분론 보다는 교회의 권세와 교회 직원들의 관계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게 수여한 권세는 특별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 성격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고백에 기초하여 그 이름조차도 ‘반석’으로 바뀌게 된 베드로에게 주셨던 열쇠권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가톨릭의 권세, 특히 교황의 권세가 비성경적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 권세에 대한 오용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4. 마치는 말

  칼빈은 교회의 직분에 대해 네 직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직분에 대해 매우 조심할 것을 말하며, 그 권세가 영적 성격을 띠었음을 증거하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교회 직분에 대해 드러나는 현상중 하나는 교회 직분에 대한 무용론이다. 여기에 반해서 일부 정통개혁교회는 교회 직분론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근거하여 교회의 직분은 오직 목사(선지자직), 장로(왕직), 집사(제사장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교회 직분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으로서 하나님의 질서와 은사에 의한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칼빈의 그리스도의 삼중직교리로 인한 대속의 교리를 신앙고백으로 받아드렸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삼중직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주는 영적권세를 받았으며 누리고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 중생자에게 은사로 주심으로 소명 받은 신자들이 교회를 통하여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부름을 입고 직분에 임하는 것이다. 또한 신자는 누구나 주님의 교회의 직분을 사모하며 그리고 이 은사에 이어지는 것도 자원하여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 보다 중요한 자세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허락하시면 기쁘게 순종해야 할 것이다.(각주는 파일에 있음)

 

인용 도서

김영규, 「교회론과 종말론」,강의록 (안양 :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김영재 역편, 「신앙교육문답」(수원 : 합동신학대학원풀판부, 2000).

김의환 편역, 「개혁주의신앙고백」(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2004)

김헌수,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강해」(서울 : 성약, 2004)

독립개신교회교육위원회,「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울 : 성약, 2009, 초판7쇄)

라인홀드 제베르그, 김영배 역, 「기독교교리사 중근세편」(서울 : 엠마오, 1987)

박성은, ‘정암(박윤선)의 정치론 회고“ 「신학정론 제26권 2호」(2008.11)

박윤선, 「헌법주석」(서울 : 영음사, 1997, 초판5쇄), 표지 뒷면.

박형룡,「박형룡저작전집4 교의신학 기독론」(서울 : 개혁주의신행협회, 2002)

서요한, 「초대교회사」(서울 : 그리심, 2003)

신헌재 옮김,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서울 : 할렐루야서원, 1991)

R.B. 카이퍼, 이창우 역, 「누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탈취했는가?」(서울 : 성광문화사, 1991)

R. A. Perterson, 황영철역, 「칼빈의 구원의 도리」(서울 : 풍만출판사, 1987)

N. D. Kelly. 김광식 역, 「고대기독교교리사」(서울 : 맥밀란, 1984)

Otto Weber, 김영재역, 「칼빈의 교회관」(서울 : 이레서원, 2001)

와타나베 노부오, 김신덕역, 「칼빈의 교회론」(서울 : 칼빈 아카데미, 2010)

와타나베 노부오, 이상규 임부경 역, 「기독교강요란 어떤 책인가」 (서울 : SFC출판부, 2009)

이형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세계교회의 신앙고백서」(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임원택, 「역사의 거울 앞에서」(서울 : 수풀, 2008)

임원택,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속론 -「신학대전」,Ⅲ , QQ. 46-49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수난 교리

           를 중심으로,” 「역사신학논총」13 (2007 봄)

자카리아스 우루시누스, 원광연 역,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해설」(고양 :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6),

장수민, 「칼빈의 기독교강요 분석 」(서울 : 칼빈아카데미, 2006)

최윤배, “깡뱅의 교회직분과 교회권위에 관한 연구”, 「칼빈연구 제4집」(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7)

최정자, “깡뱅의 그리스도 삼중직에 대한 연구”, 「칼빈연구」 제4집 (2007년1월)

칼빈,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1536)」(서울 : 생명의말씀사, 2009)

칼빈, 양낙홍 역, 「기독교 강요(1536 초판)」(서울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칼빈, 원광연 역, 「기독교 강요」 상 최종판 (고양 :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3)

칼빈, 칼빈번역위원회 역「골로새서 주석 」(서울 : 성서교재간행사, 1980)

Philip Schaff, History of Christian Church 2, 이길상 역, 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2 「니케아 이전의 기독교」(고양 :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8)

필립샤프 교회사전집 5 「그래고리우스 7세부터 보니파키우스8세까지」

한인수역, 「깔뱅의 요리문답」(서울 : 도서출판 경건, 1995)

한철하, 「고대기독교사상」(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84), 55-56

허순길, 「교리문답 해설 설교 Ⅰ」(부산 : 사랑과 언약, 2010),

허호익, 「그리스도의 삼무직론」(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출처 : 교회와 성경
글쓴이 : 문래 원글보기
메모 :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