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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여기서 십자가를 생각해야 하는가?

문민규목사(평택)

by 김경호 진실 2014. 11. 1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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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여기서 십자가를 생각해야 하는가?

 

< 문민규 목사, 반석교회 >

 

세상은 용서하는 힘이 없기에 용서하는 것 두려워해

 

이 세상에서 어떤 많은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에서 뒤따라 나오는 것을 보면 인간의 추악하고 연약한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해결책 또한 우리 인간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건 당시에는 격동과 감정만이 사건을 지배하고 있으며 타락한 인간의 그 실망스러운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지곤 합니다.

 

사건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죽었기에 여기서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난 사람들과 연관된 가족과 해당 공권력과 피해를 입힌 사람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아마 공권력은 사건의 원인과 실체를 찾아서 법을 범한 사람은 그 법에 따른 제재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찾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해결책과 따라오는 제재라는 것이 인위적이라는 것으로 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으로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상한 사람은 어떤 것으로도 치료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믿는 신자들의 구속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구속하신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죄인을 향한 용서가 있습니다. 죄의 용서가 없이는 구속의 역사가 없습니다. 보통 용서를 사람들은 잘못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 죄의 용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의 사건이 있게 됨으로써 죄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을 용서를 한다, 안 한다하기 이전에 먼저 용서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속하심으로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죄인의 죄책을 짊어지신 십자가로 믿는 이들을 용서하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지만 또한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용서 받은 사실을 알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용서 받는다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어 줍니다. 용서가 없이는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용서가 없다면 죄인된 그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이전의 잘못을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겠다는 것이 전제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용서함으로 인하여 이제는 잘못으로 기인된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그리고 꾸짖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가 하는 일입니다.

 

용서하는 힘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를 단 교회는 그런 용서하는 힘을 세상에 부어 넣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정죄는 할 수 있겠지만 용서하기를 두려워하는 세상은 사실 그 용서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용서를 못합니다. 처벌은 죄에 기인된 결과입니다. 그러니 죄의 영향이 처벌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용서 없는 세상으로 갈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한 용서는 죄의 영향을 막아 버립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는 새 삶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용서를 말하는 시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미 용서에 대해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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