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에 따르면 성공회의 신학적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에큐메니컬 운동 차원의 교제'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근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복음주의적 관점은 '교회 안에 새롭게 일어난
비성경적 교회 연합주의에 맞추기 위해' 포기되었다.
이 변화는 눈에 쉽게 드러나 진행되지는 않았다.
"겉옷은 그대로 둔 채 속옷만 벗는 눈속임 같이 진행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복음주의는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 실종되었다.
신학적 원칙에 대한 강조 말이다."
키엘 대회 지도자들은 여전히 '신학적 원칙을 중시'한다고 주장하지만,
안에서는 39개조의 입장을 고수했던 구복음주의자들의 신학을 흔들어 놓았고,
이전 세대가 남긴 유산을 비웃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새뮤얼은 이렇게 평가한다.
이른바 옛 경건주의를 거부함으로 복음주의자들은 실제로 복음주의의 뿌리 자체를 부정했다.
키엘 대회 이전의 복음주의는 정당성도 없고 진리에 충실하지 않은 경건주의로 취급됐다.
이런 가혹한 평가는 현대 복음주의자들을 역사적 유산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가장 치명적이고 심각한 결과였다.
키엘 대회의 결과는 복음주의를 그 뿌리로부터 잘라 낸 것이다.
이 때문에 복음주의는 변해가는 유행과 신기한 현상에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성령 은사주의나 신오순절 운동이 복음주의에서 눈에 띄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키엘 대회 이전에는 적어도 근본 원칙과 정통 복음주의 신학이
방파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이제는 라일이나 종교개혁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면 젊은 목회자들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거나
거부반응까지 일으키기도 한다.
키엘 대회 이후, 과거 복음주의가 당연하게 여겼던 목회적 원칙과 신학은
점점 빛을 바래 가고 있다.
이안 머리, 분열된 복음주의, 부흥과개혁사, 20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