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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주일에 대한 이해

조병수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3. 9. 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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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주일에 대한 이해

 

< 조병수 목사, 합신교수(신약신학) >

 

“주일에 말씀을 가르치는 강론과 떡을 떼는 교제에 하루 종일 집중한 신약교회처럼 주일은 예배를 목적하는 날이어야”

“주일 예배는 성령 안에 머무는 것이며,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의미 가지고 있어”

 

시작하는 말

 

이 글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 성경적 주일 개념이 희박해지거나 왜곡되고, 주일을 예배일로 존중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형편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신약성경이 주일에 관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신약시대의 주일에 관해 오랫동안 수많은 논의가 벌어졌기 때문에 제한된 지면으로는 상세한 설명을 할 수 없으므로 신약교회가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게 된 경위와 주일에 행한 행사에 관해 간략하게 주목해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신약교회에는 “날”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는데 특히 세 가지 방식이 두드러진 현상을 보여주었다. 곧 안식일, 매일, 첫날(주일)이 그것이다.

 

1. 안식일

 

외형적으로 볼 때 신약교회는 처음에 “날”의 문제에 있어서 유대교와 같은 길을 간 것처럼 보인다. 신약교회는 유대교와 유사하게 안식일을 이해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우선 이런 이해는 안식일에 “규례대로” 집회에 참석하셨던 주님의 행보와 연속성을 가진다(눅 4:16). 따라서 주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도 안식일을 존중히 여겼다(행 1:12,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의 안식일 회당집회에 “규례대로”(행 17:2) 참석했다. 그는 안식일에 성경을 강해하거나(행 13:13-52/비시디아 안디옥; 17:1-9/데살로니가; 18:1-4/고린도) 기도에 집중하는(행 16:13/빌립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이미 신약교회가 성경교육과 기도생활을 집회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할 기반을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도 바울의 경우에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안식일 집회에 참석한 이유가 대체적으로 유대인을 향한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 집회 참석을 근거로 삼아 신약교회가 안식일을 유대교적인 의미에서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2. 매일

 

신약교회는 머지않아 유대교적인 안식일 개념을 넘어섰다. 신약교회의 안식일 극복은 독특한 중요한 신학에 근거한다. 그것은 ‘매일’이 주님의 소유라는 ‘매일 신학’이다.

 

매일 신학은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라는 신학이다. 신약교회에는 조만간에 주님이 어느 한 날만 소유하는 분이 아니라 모든 날을 소유하시는 분이라는 신학이 확립되었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거의 초기부터 성전에서든 집에서든 “날마다” 모임을 실행하기 시작했다(행 2:46; 5:42). 이와 같은 실행에는 모든 시간이 주님의 소유라는 매일 신학이 뒷받침되었다.

 

현재도 미래도 모두 주님의 것이며(고전 3:22),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치하시는 분이다(계 1:4,8; 4:8). 이런 매일 신학을 바탕으로 삼아 신약교회에는 매일 집회가 가능하게 되었다(히 3:13 참조). 그런데 매일 신학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첫째, 신약교회에서는 매일 신학을 근거로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안식일도 다른 날들처럼 주님이 소유하신 모든 날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신약교회에 안식일에 대하여 두 가지 생각을 마련해주는 배경이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유대교처럼 안식일을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것과 동시에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회당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약교회가 안식일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공격할 때 할례 문제는 거론하지만 안식일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며(행 15:1), 이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 모인 사도회의는 안식일의 유익은 그대로 인정한 것처럼 보인다(행 15:21).

 

신약교회는 안식일에 집착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식일을 거부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두 가지 태도를 결정지었다. 하나는 신자가 유대교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

 

다른 하나는 안식일이 신자를 비판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다”(골 2:16).

 

둘째, 매일 신학 때문에 신약교회에 평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모든 날이 주님의 소유이므로 안식일 외의 다른 날들도 안식일처럼 귀중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교회의 신자들은 한 주간 단위로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참고. 행 20:6; 21:4,27; 28:14).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유대교와 달리 보통 날들을 귀중하게 지내야 할 이유를 확보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가 성전이든 집이든 “날마다” 매일 집회를 갖게 된 신학적 동기이다. 이후에도 신약교회에 이와 같은 매일 집회가 지속되었다는 증거는 사도행전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행 4:23 - 동료 집회; 행 5:12 - 솔로몬 행각 집회; 행 5:20,25 - 성전 교육; 행 12:12 - 마리아 집 기도회; 행 13:2 - 안디옥 교회 금식 집회 등등).

 

한 마디로 말해서 신약교회의 신자들은 특일 예배자가 아니라 매일 예배자였던 것이다. 모든 신자가 만인제사장이듯이 모든 신자는 매일예배자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매일 예배자의 삶을 살았다.

 

신약교회의 신자들에게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롬 12:1)가 특정한 날에만 아니라 평범한 날에도 실행되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일에 일상생활을 금지하면서 예배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같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중에 예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의 신자들은 일상생활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자체가 예배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처럼 보인다.

 

신약교회의 매일 집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대로 그 내용이 성전에서의 공개집회와 가정에서의 식탁교제를 근간으로 삼으면서(행 2:4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쉼 없이 전하고 가르치는 신앙고백이었다(행 5:42).

 

이처럼 안식일도 평일처럼 주님이 소유하신 모든 날 가운데 한 날에 지나지 않고, 모든 날이 주님의 소유이므로 평일도 안식일처럼 귀중하다는 매일 신학은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신앙고백적 매일 신학에 근거하여 신약교회에서 발생한 “날” 논쟁(롬 14: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을 간단히 잠재웠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어떤 날을 다른 날보다 낫게 여기거나 모든 날을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마음의 문제일 뿐이다(롬 14:5,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한 날을 귀하게 여기는 것도, 모든 날을 동일하게 여기는 것도 모두 마음의 확신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무슨 마음이냐 하면 주님에 대한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날에 대한 마음이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신자의 마음이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점을 다룬다(롬 15:6, “날을 중히 생각하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생각하라”).

 

한 날을 귀히 여기건 모든 날을 같게 여기건 중요한 것은 날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신앙고백이다.

 

3. 주일

 

매일 신학으로부터 나온 안식일과 평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신약교회에 성일변경을 위한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던 것처럼 보인다. 신약교회에서 성일이 안식일에서 주일로 변경되는 데는 매일 신학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만일에 신약교회에서도 안식일이 다른 날보다 근본적으로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면 성일이 안식일 대신 주일로 변경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날이 주님의 소유라는 매일 신학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신약교회에는 안식일 아닌 다른 날을 성일로 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그리고 신약교회가 평일 가운데 한 날을 성일로 선택하는 데는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결정적인 것으로 부상했다. 이제 기독교에만 독특한 주일 신학이 시작되었다 : ‘주일’은 매일의 절정이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현상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다. 신약교회는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집회를 가졌다(행 20:7, “안식일 후 첫날에”/“그 주간의 첫 날에”). 이 표현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묘사하는 표현과 동일하다(막 16:2; 눅 24:1; 요 20:1,19, “안식일 후 첫날에”; 참조. 마 28:1). 이렇게 볼 때 초대교회의 성일변경 이유는 주님의 부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은 신약교회가 시작되고 최소한 한 세대가 지난 후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이 진술은 절대로 우연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 후 첫날”은 더 이상 논쟁할 필요 없이 이미 신약교회가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처럼 초대교회가 안식일 후 첫날을 집회일로 삼게 된 것은 그 날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로 인식되었다.

 

율법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상기시켜준다(출 20:11; 신 5:15). 그런데 안식일이 상기시키는 창조와 구원은 안식일의 주님이신(마 12:8; 막 2:28; 눅 6:5, “인자가 안식일의 주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주님은 율법의 완성이시기에(롬 10:4) 안식일의 완성이시기도 하다. 그리고 안식일 율법의 완성은 주님의 부활에 의하여 확증되었다.

 

따라서 신약교회는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성일로 삼았다. 신약교회는 이 날, 곧 ‘주일’에 말씀을 가르치는 강론과 떡을 떼는 교제에 하루 종일 집중했다. 이것이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주일 행사의 근간이다. 주일은 전일(全日)의 헌신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이 교회의 회집일로 사용되었다(고전 16:2, “매주 첫 날에”). 사도 바울은 이 날 연보할 것을 권면한다. 사도 바울은 연보의 방식에 관하여 이미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지시한 바가 있다(고전 16:1).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주었던 연보지침을 고린도 교회에도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고전 16:1).

 

그러면 갈라디아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고린도 성도들이 그대로 행해야 할 연보지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연보를 “매주 첫날에”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보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 집회에서 행해졌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연보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것이다(2절의 복수형에 주의하라).

마침내 신약교회에서 주일이란 표현은 하나의 전문용어로 확립되었다(계 1:10, “주의 날”). 이것은 아마도 구약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주의 날”(사 2:12; 13:6,9; 렘 46:10; 겔 13:5; 30:3; 욜 1:15; 2:1,11,31; 3:14; 암 5:18,20; 옵 15; 습 1:7,14; 슥 14:1; 말 4:5)에 대한 반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치는 말

 

신약교회의 주일 신학을 구약의 “주의 날” 사상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용어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신약교회는 구약(칠십인역)이 일률적으로 “주의 날”로 표시하는 것과 달리 유례없는 전문용어인 “주께 속한 날”을 사용했다. 둘째로 구약에서 “주의 날”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도래를 기대하게 하는 반면에, 신약교회에서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상기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계 1:17-18,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경험한 일들은 앞으로 모든 교회가 주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표준적으로 암시한다. 그것은 성령 안에 머무는 것이며(계 1:10),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계 1:10-11),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다(계 1:12-20).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의 날은 예배를 목적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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