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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와 개혁주의 교리의 차이점

WCC

by 김경호 진실 2013. 11. 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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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와 개혁주의 교리의 차이점

2013. 3. 30. 신원균 박사(조직신학, Ph. D.)

서론

 

WCC의 교리는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하나의 교리가 WCC의 교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주제에 따라서 다양한 교파의 교리들이 서로 혼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특히 WCC의 기본적인 교리적 체계는 K. 바르트(Barth)를 중심으로 하는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로마 카톨릭주의, 동방교회, 오순절주의, 신복음주의, 샤머니즘에 기초한다.

 

이처럼 WCC의 교리가 혼합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교리적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오히려 과거의 교리적 논쟁은 WCC와의 교리논쟁보다 비교적 간편했다. 예를 들면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에서 종속론이나 양태론을 주장한 아리우스파와 사벨리우스파와 같은 초기 이단들과의 논쟁이 있었으며, 중세시대는 구원론에서 면죄부와 행위구원을 강조하며 교회론에서 교황체제와 미사제도를 강조했던 로마 카톨릭과의 논쟁이 있으며, 종교개혁 이후는 재세례파나 신비주의와 경건주의에서 무시했던 신조(교리), 성경에 대한 논쟁이었으며, 19-20세기 들어 역사적 예수만을 강조하며 예수님의 신성을 무시 했던 자유주의자들과의 논쟁을 들 수 있으며, 21세기 와서는 기록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비판한 신정통주의와의 논쟁을 언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교리적 논쟁은 조직신학의 핵심 교리 중 몇 가지에 해당되는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비교적 상대방의 교리를 쉽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WCC와의 논쟁은 기독교 2000년 동안의 교리적 논쟁에서 발생한 수많은 비성경적 교리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교리적 차이점을 쉽게 찾거나 비판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따라서 WCC의 교리적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WCC의 총회가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영향을 끼친 다양한 교파들의 교리들을 조사하여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리사적 연구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WCC는 창립초기부터 전통기독교와 이질적인 교리적 차이를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WCC의 1차 총회에서 교리적 영향을 끼친 것은 3가지이다. 첫째는 교리를 무시하고 생활만 강조하는 경건주의 영향이다. 1948년 WCC의 창립은 1921년 미국 레이크 몽크에서 개최한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1961년 WCC에 연합)와 1925년 스톡홀름에서 개최한 “삶과 봉사”(Life and Work)와 1927년 로잔에서 개최한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라는 기구들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기구적 성격은 다르지만 이 모든 기구들은 1910년 에딘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대회”(The World Missionary Conference)의 영향으로 발생한 단체들이다. 그리고 에딘버러의 세계선교대회는 19세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모인 대회이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 1792-1875)나 무디로 인한 2차 대각성운동 이후 많은 지역에 교회를 세우며 선교활동이 활발해지자 각 교파들의 선교활동이 중복되며 급기야 서로 충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세계선교대회이다. 따라서 WCC의 1차 총회 창립의 교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경건주의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는 동방교회의 영향이다. 동방교회는 1919년 콘스탄티노플 교회회의에서 국제연맹과 같은 교회연맹에 대한 제안을 하였다. 1차 대전 후 각국의 정치적 불안은 동방교회의 위치를 위협했으며 특히 2차 대각성운동으로 동방교회의 지역까지 선교를 확장하고 있는 서방교회의 도전은 동방교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였다. 따라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의 전도를 중지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써 교회연맹조직을 제안했다. 이런 동방교회의 제안은 신앙과 직제나 삶과 봉사 기구의 연합회의에 반영되어 WCC는 초기부터 유형교회만을 강조하는 동방교회적인 교회관과 개종전도금지와 같은 구원론의 영향을 받았다.

 

셋째는 변증법적 신학을 기초로 한 신정통주의의 영향이다. WCC의 1차 총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칼 바르트(Karl Barth)이다. 바르트는 초대 총무인 비셔트 후프트(Willem A. Visser′tHooft)의 설득으로 1948년 초대 총회의 준비위원회에 참석하였으며, 또한 기조강연도 하였다. 바르트는 실존주의 철학을 자신의 신학에 반영한 변증법적 신학을 완성하여 1934년 5월에 독일교회를 향한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 of Faith)을 제시하였다. 이 바르멘 선언의 교리적 내용이 1948년 WCC 1차 총회 창립 당시 헌법과 모든 분과보고서에 영향을 끼쳤다. 즉 바르멘 선언의 핵심은 기록된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고 현재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므로 성경이 되어져 간다고 하는 변형된 성경론과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앙고백적(kerygam)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 중심의 화해론이다. 화해의 개념도 전통적인 죄와 사망에서 영육이 구원받는 중생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현재보다 더 나은 교제관계를 완성하는 의미로써 화해(reconciliation)이다. 그래서 중생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죄의 개념이 없는 화해라고 한다. 이 화해개념이 1차 총회의 제2분과 보고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교회의 증언”의 핵심이다.

 

이와 같이 설립 초기부터 WCC는 신정통주의나 동방교회, 자유주의 등의 혼합주의적 교리형태를 취했으며 후기에는 로마 카톨릭과 신비주의 교리까지 혼합시켰다. 이제 본 연구는 WCC의 1-9차 총회까지 각 총회의 보고서와 참여 인물들을 분석하여 WCC의 교리와 개혁주의 교리를 조직신학적 구조 속에서 비교하여 WCC의 교리는 혼합주의적 교리이며 정통 기독교와 본질적으로 다른 교리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론

 

1. 조직신학 서론

 

1) 신조론

 

(1) WCC의 신앙고백

 

WCC의 신앙고백은 신조의 역할과 권위를 부정하는 혼합주의적 신앙고백이다. WCC는 1993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5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에서 가시적 교회의 일치를 위한 하나의 신앙고백을 제시했다. 즉 고대신조 중 하나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A. D. 381)를 세계교회가 연합을 위해서 함께 고백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조로 표명한 것이다. 이 신조의 항목에서 고백되는 내용정도만 고백하면 신앙공동체로써 연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이들은 신앙고백 서론에서 사도적 신앙의 공동인정, 공동해석 및 공동고백을 목표로 이 고백을 제시한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인정했다고 해서 정당한 것이 아니라 WCC는 고대 신조들 중 이 신조만 한정시킨 문제와 신조 해석의 다양성과 신조를 수용하는 입장에 대한 다양성을 허용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즉 형식적으로는 이 신조를 인정해도 어떻게 해석해서 받아들일 것인지는 각 교파마다 자유선택에 맡김으로 정통교회의 신조에 대한 객관성과 권위를 제거시켰다. 또한 해석부분에서는 WCC의 혼합주의적 신앙관을 추가시켰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앙고백과 차이가 있다.

 

① 사도적 신앙계승의 곡해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기본 신앙고백으로 제시하면서 자신들은 “사도적 신앙”을 계승한 것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은 형식적으로 고대신조를 고백할뿐만 아니라 이 신조가 사도적 신앙을 표방한다고 말하는 것도 정통교회가 말하는 사도적 신앙고백과 다음과 같이 차이가 난다.

 

첫째, WCC가 말하는 사도적 신앙은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케리그마”(kerygma/신앙적 전승)적 고백이다. 정통기독교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역사적 실체를 인정하며 그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는 사도들의 신앙적 계승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신화로 비판하며 비신화화(dymythologization) 작업을 통한 개인의 주관적인 이해와 재해석을 주장한 불트만처럼 성경 안에서 체험하고 경험하는 주관적 신앙의 고백을 사도적 신앙이라고 제시했다. 이런 고백은 이미 1963년 몬트리올 신앙과 직제 4차 세계대회에서 “성경, 전통, 전통들”을 제시하면서 성경보다는 주관적 신앙체험과 고백으로 받아들인 “전통”(Tradition)이 더 권위가 있으며, 이것이 사도적 신앙이며, 이런 신앙은 각 교파의 많은 “전통들”(traditions)을 통해서 전승된다고 주장한 것에 기초한 것이다. 이같이 기록된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부정하고 자신이 해석하고 체험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자들의 성경관이다. 이처럼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사도적 신앙(케리그마)의 기초라고 제시하면서 정통 기독교가 성경의 요약이며, 사도들의 신앙적 계승의 체계로써 니케아-콘스탄티노플을 고백한 신조관을 파괴했다.

 

둘째, 종교개혁신조들을 부정한다. WCC는 “개혁교회의 정체성은 16,17세기의 신앙고백들에 배타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정의되어질 수 없다”라고 하면서 고대신조 하나만을 제시하여 종교개혁의 정신이 담겨진 수많은 정통 신조들을 제외시켰다. 이들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논쟁이 되었던 “성자로부터”(filioque)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고 두 교파가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 대안으로 이 신조가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고대신조는 주로 기독론과 삼위일체 정도만 집중적으로 정리되었지 그 이후 발생된 수많은 이단들에 대한 정리가 약하다. 따라서 종교개혁가들은 이 두 교리 외에 성경론, 교회론, 구원론 등과 부딪치는 이단들을 막기 위해서 많은 신조들을 작성했으며,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7개의 조직신학 내용을 33개 조항으로 성경론에서부터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체계화 시켰다. 현대에 와서 종교개혁의 신조들을 버리고 고대신조 하나 만을 연합의 조건으로 제시하면 초대교회 이후 등장한 수많은 이단들도 수용할 위험이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나마 고백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대한 권위도 정통 기독교가 고백하는 것과 다르다. 기독교는 “성경->신조->신학”의 체계를 세워 신조를 성경 다음의 신앙과 삶의 규준으로 고백하였으며, 또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객관적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WCC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형식적으로 고백하고 그 권위와 해석은 각 교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제시했다. 이런 문제점이 서론에서 신조에 대한 자세 3가지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신조들이 작성되던 시대의 언어와 철학은 더 이상 현대의 그것이 아니다. 둘째 옛 그리고 새종교들의 영향이 많은 문화들 안에서 점점 더 긍정되고 음미되고 있다. 셋째 세속화의 과정 속에 있는 현대사회들에 있어서 기독교신앙의 기본적인 주장들 가운데 많은 주장들이 의심받고 있다. 이처럼 신조는 더 이상 과거의 단어와 문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고 오늘날 제시하는 수많은 문화와 현대적 삶의 형평에서 해석되어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신조의 객관성과 권위를 제거시켰다.

 

②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해석의 다양성

 

전체는 3부로 다음과 같이 나눠진다. 1부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2부 우리는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부 우리는 성령을 믿사오며, 교회 및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믿습니다. 그리고 각 부에서 각각 신조의 단어를 소개하고 니케아신조 본문과 그것의 성서적 증언과 논평, 그리고 오늘날을 위한 해석과 논평의 구조로 나타난다.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하나님의 고백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을 불신자, 타종교에까지 넓혀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을 자신들의 확신에 따라 유일하게 참된 길이요, 방법으로서 고백하지만, 타종교들 안에 있는 진리의 요소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들을 존경하고 대화를 위해서 개방하는 태도를 갖는다”, “하나님의 부성의 우주적 범위는 인류가족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들이 친구들이든 원수들이든 간에)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이들을 사랑으로 돌봐 주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유주의적 신정통주의적 해석을 수용한다. “현대의 역사적 석의 방법론(고등비평)은 교부들의 ‘신앙고백적’ 접근방법을 제외시킬 필요가 없고, 후자(정통 기독교)는 기독론적 전통의 성장과정에 대한 분석(고등비평)을 제외시키지 않는다. 이 두 접근방법은 양립할 수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풍요롭게 한다. 기독론적 전승발전에 있어서 초기의 암묵적인 내용이 후기에는 명시적 내용으로 발전되는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에 대한 고백에서 신정통주의의 변증법적원리와 로마카톨릭의 교회관을 수용한다. “서방 교회들에 있어서는 신앙진술과 역사적 실체에 대한 진술-신적 신비로서의 교회와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변증법적 언어로 연결시킴으로써 신앙과 역사적 실체의 긴장을 하나의 통일개념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보통이다”, “여러 기독교 전통들은 사도적 승계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있어서 상이하다. … 나머지 전통들은 사도적 승계(apostolic succession)를 주로 감독 안수례의 중단없는 승계로 이해한다”, “고해성사는 세례의 재수용을 뜻한다”, “서방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성유식 행위를 자기네들 류의 견신례(confirmation)로 바꾸게 되었다.” 이와 같이 WCC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형식적으로는 수용하면서도 신조의 권위와 성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적용시켰다. 특히 각 본문에 대한 “논평”과 “오늘날을 위한 해석”은 WCC의 혼합주의적 신앙고백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

 

(2) 개혁주의 신앙고백

 

정통 기독교회와 장로교회는 신조를 성경 다음으로 신앙과 삶의 제2규범으로 삼는다. 신조는 “성경->신조->신학”의 구조를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개관적 기준이기도 하다. 시대별로 정리해 보면 초대교회 시대에는 기독론과 삼위일체와 교회론을 확립한 사도신경(1-2세기), 니케아 신조(325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 그리고 예수님의 이성일인격을 확립한 칼케돈 신조(451), 아타나시우스 신조(4-5세기) 등과 같은 고대 5개 신조가 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제네바 요리문답 (1536, 1541), 제 1, 2 스위스 신앙 고백(1536, 1566), 프랑스 신조(1599), 스코틀랜드 신조(1560), 벨기에 신조(156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도르트 신조 (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1648)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장로교회 헌법의 기준으로 삼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교리교육 규범으로써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중요하게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성경론과 기독론, 구원론 등이 강한 한국장로교회의 최초 신앙고백서인 12신조(1907)도 언급할 수 있다.

 

2) 성경론

 

(1) WCC의 성경론

 

WCC의 성경관은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급진주의 및 로마 카톨릭의 성경관이 혼합되어 있다. 몇 가지 보고서에 소개된 내용을 따라서 WCC의 성경관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 1차 총회 직후에 소개된 “워드햄 문서”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르트는 1949년 영국 옥스퍼드 워드햄대학에서 개최한 에큐메니컬 연구대회에서 작성한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이란 보고서 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워드햄문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험되고 체험될 때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하는 바르트적인 성경관에 따라서 성경을 읽는 자가 해석을 통해서 계시를 경험할 수 있는 해석적 전통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것은 성경 그 자체의 권위와 무오성을 부정하고 해석자에 의해서 제대로 해석되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하는 해석학적 원칙이다.

 

1-2차 총회가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에 기초했다면 3차 총회에서는 로마카톨릭의 성경관이 수용되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3차 총회 이후 신앙과 직제 위원회 제4차 세계대회인 “몬트리올회의(1963년) 보고서”를 통해서 성경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제목을 “성경, 전통(Tradition), 전통들(traditions)”이라고 보고했다. 전통적으로 기록된 성경66권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던 것을 변형시켜서 성경 외에 2가지를 추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통>성경>전통들”이란 순서를 제시하여 성경의 권위를 훼손했다. 특히 “전통”(Tradition)은 “우리는 복음의 전통(복음 선포=kerygma의 전승)에 의해서 기독교인으로서 존재한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정통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했던 성경관임을 알 수 있다.

 

더 심각한 표현은 “문서로서의 성경은 문자에 불과하다. … 큰 글자 전통(Tradition/전승)은 기록된 형식인 성경 안에 있는데, 교회는 이 전통을 항상 새로운 상황에 걸맞게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에 대한 해석은 신조들, 성례전들의 예식서, 다른 형태의 예배, 말씀설교 및 교회의 교리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들과 같은 굳어진 전통들(traditions)에서 발견된다. 성경말씀들을 단순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반역이다”라는 표현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록된 성경 자체보다도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한 신앙고백을 본질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성경 안에서도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통해서 만나는 말씀이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 안에 전통이 많이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 그 자체를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전통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부분만 권위가 있기 때문에 전통은 성경보다 더 권위있는 계시적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전통들”(traditions)이란 전승적인 과정이라고 표현하면서 루터교전통, 개혁교회 전통, 로마 카톨릭 전통, 동방교회 전통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전통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인 전통(Tradition)이 표현되고 전달되기 때문에 전통들(traditions)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써의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성경, 전통, 전통들”의 제시는 기록된 66권의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고 주관적 신앙고백을 성경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성경의 객관성을 주관성으로 변질시켰으며, 또한 로마 카톨릭의 수많은 전통들을 성경과 동등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추가시킴으로써 성경의 권위성을 무너뜨렸다.

 

4차 총회를 전후로 해서는 자유주의의 문학비평이 추가된 브리스톨회의(1967년)가 중요하다.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성경의 석의(exegesis)와 해석(interpretation)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제시했으며, “에큐메니컬운동을 위한 해석학적 문제의 중요성”이란 보고서의 제목 안에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던 문학비평과 같은 고등비평의 방법을 제출하였다. 이들은 성경은 일련의 문학적인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것은 여타 문학적인 자료들의 연구에서 사용되는 방법들과 동일한 방법에 의해 연구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가능한 대로 이스라엘 삶의 상황이나 그것이 사용되고 있는 교회의 “삶의 정황”(the Sitz im Leben)과 연관되어져서 해석하는 “문학비평방법”(literary-critical method)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해석학의 원리는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고등비평의 원리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역사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문학비평, 자료비평 등의 방법을 제시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보다는 인간의 저술작품으로 평가 절하시켜왔는데, WCC는 이 고등비평(성서비평)원리를 자신의 해석학적 원리로 수용한 것이다.

 

WCC는 5차 총회를 전후로 해서 성경관의 중요한 특징은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이 강화된 것과 해방신학적 성경관이 새롭게 추가시켰다. 1971년 신앙과직제위원회는 “성경의 권위”라는 루벵보고서를 통해서 재차 신정통주의의 성경관을 확립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서 WCC는 성경의 권위가 공격적인 개념으로가 아니라 자유로움 속에서 수용되어야하는 증거로서, 압도하는 강제력으로서가 아니라 자유를 향한 출입구로서, 즉 관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신구약 66권을 유일한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정경적인 것과 비정경적인 것을 구분하면서 이 구분이 엄격한 것이 아니며 유동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루뱅 보고서는 성경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감론을 거부한다. 이들은 성경은 신적영감의 권위를 갖지 않고 다만 사람들이 신앙고백 할 때 결과적 체험과 경험을 통해서 권위를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신정통주의의 칼 바르트 주장처럼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성경은 영감되어 간다고 말한다. 또한 미리 영감을 전제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견해로 나갈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 무오설을 부정하며, 성경은 비판적인 책이기 때문에 우리 삶의 표준이나 규범이 될 수 없으며, 교회를 통한 해석적 만남이 없으면 죽은 문자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권위는 사람들이 그것을 권위로서 체험할 때에만 현재적인 실재가 되며, 동시에 그 권위는 인간의 경험을 초월한다고 언급하는 바르트의 계시관을 확대킨 것이다.

 

이 외에도 해방신학적인 성경관의 추가는 1977년 신앙과직제위원회의 “로꿈(Loccum)보고서”를 통해서 소개된다. 이 보고서는 “신약과의 관계에 있어서 구약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구약에 대한 새로운 강조와 연구를 제시했다. WCC가 구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전통적인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조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많은 사건들이 해방신학의 실례들로 적합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질문들에 쏟는 관심들이 보다 커짐에 따라,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흑인 기독교인들, 라틴아메리카의 기독교 혁명그룹, 기독교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유렵에서 그들의 기독교 신앙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증가함에 따라, 현대에 구약성경의 역할이 증가해 왔다고 주장한다. 즉 출애굽의 모습이나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에 대한 예언자들의 관심이 민중의 자유와 번영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관점과 일치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구약의 예언과 사건을 신약의 복음에 대한 통일적인 예언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해방사건으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로꿈보고서는 구약의 대한 초점을 타종교인들과의 대화와 연합을 위한 중요한 근거로 삼기도 했다. 구약에서 소개되는 타종교인들과 연합과 동거 등은 현대의 교회일치와 종교일치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구약의 종교연합은 유대-기독교의 기독론, 그리고 후대는 헬라-기독교의 기독론이 전개된 것처럼 흰두-기독교, 불교-기독교 또는 마르크시스트-기독교의 기독론들로 확장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타종교와의 연합을 위한 성경관으로 나아갔다.

 

WCC의 성경관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러 자유주의파들의 성경관이 혼합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증언하는 수단이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또한 성경은 무오한 말씀이 아니라 문학서,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오류있는 인간의 책이며, 전통의 산물이며, 성경은 부수적인 권위만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성경관과 성경해석을 고집하면 다양한 형태로 역사하는 성령의 진리를 상실할 수 있으며, 성경의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교회일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며,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구전, 전승, 전통, 성전을 통해서 전수된다고 한다.

 

(2) 개혁주의 성경론

 

개혁주의 성경론의 핵심은 12신조 1항과 헌법에 수록한 대로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라는 성경의 권위와 관련된 신적 영감성이다. 로마 카톨릭처럼 외경을 추가하지 않으며, 신비주의처럼 직통계시를 수용하지 않고 오직 기록된 66권만을 정경으로 고백한다. 성경영감의 방법으로는 유기적, 축자, 완전영감론을 수용하며, 성경해석방법의 원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9항에 “성경 해석을 위한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라는 고백을 따라서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추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신학적으로 단어, 문맥, 의미를 찾는 문법적 해석과 구약과 신약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역사적 해석과 최종적으로 7개의 조직신학에 기초한 교리적(신학적) 해석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성경을 적용할 때는 십계명을 성도의 예배와 생활 기준으로 삼는다. 즉 구약의 의식법과 제사법, 정치법은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 없고 반드시 십계명의 원리 안에서 적용시킨다.

 

2. 신론

 

1) WCC의 신론

 

WCC의 신론은 성경의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우주 속에 편만한 궁극적 실제를 제시하여 범신론적인 혼합주의적 신관을 갖고 있다. 이런 변화는 후기 총회로 갈수록 심해지는데 각 총회별로 다양한 신론의 변화들은 다음과 같다. 1차 총회-신론(성부) 중심, 2차-6차 총회-기독론 중심, 7차 총회-성령 중심, 8-10차 총회-삼위일체(성부) 중심이다. 표현적으로는 전통적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시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이들이 사용하는 신론은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적 신론에 기초하여 한 위격에 편중되는 일신론(Uniterianism)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1) 기독론 중심이다.

 

1차 총회에서는 성부를 중심으로 한 신론에 기초하여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라는 주제를 잡았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세계교회협의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그리고 구제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교제이다”라는 창립총회 교리헌장에서 보듯이 기독론 중심이다. 그리고 2차-6차 총회까지는 내용과 주제 자체도 기독론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전통 기독교의 제2 위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부정하는 신정통주의에 영향을 받아 신앙적(kerygma) 예수를 제시한다. 칼케돈 신조의 고백을 따라서 일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조화를 이루는 “이성일인격”의 예수가 아니라 신성의 성격만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또한 이들은 예수 안에서 사람이 하나님이 되셨다는 성육신 교리와 함께 사람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존재론적인 신일합일의의 신화(deification)교리를 함께 주장한다. 그리고 성육신과 신화의 관계로부터 신인양성의 연합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가는 형태로 제시한다.

 

(2) 성령 중심이다.

 

WCC는 성령의 개념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우주의 에너지, 물질, 기(氣), 인간정신, 정령들로 변질시켰다. 대표적으로 7차 캔버라 총회에서 “생명을 위한 에너지-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크리스터 스탠달 교수는 성령을 인격이 아닌 온 우주에 생명을 부여하는 에너지로 이해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인간과 우주의 연속성과 동일성을 강조하면서 성령을 인간과 우주를 연대시키고 우주에 생명을 불어넣는 우주적 영으로 간주하였으며, 또한 성령을 온 인류와 종교를 하나로 묶는 에너지로 제시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총회(1991)는 정현경 교수(당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의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불러들이는 초혼제로 시작했다. 그녀는 죽은 자의 혼을 불러들여 위로하는 제사로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WCC가 성령을 우주 만물에 내재하는 에네지와 동일시하고, 나무, 돌, 흙과 같은 모든 물질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물활론(物活論, hylozoism)과 범신론과 같은 종교혼합주의적 성령론으로 표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성령에 대한 이해는 정현경 교수의 기도문 “오소서, 수소폭탄에 의해 죽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이여, 오소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신대에 끌려가 폭력에 굶주린 군인들에 의해 상처입고 죽어간 한국인 여성들의 영이여, … 오소서, 인간의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강간당하고 고문당하고 착취당하는 땅, 공기, 물의 영이여, 오소서, 바로 지금 페르시안 걸프에서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 군인들, 시민들 그리고 바다에서 서식하는 생명들의 영이여”라는 고백에 잘 드러나고 있다.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는 개인의 ‘에피소드’나 ‘해프닝’이 아니라 WCC의 신학적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행사였다. 참가자 전원이 참여하는 기조강연 강단은 사전준비, 합의, 계획없이 아무나 등단하여 아무 것이나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기조강연자 정현경은 그 자리에서 지신(地神)을 성령으로, 한 맺힌 영들을 성령이라면서 불러들이고, 죽은 자들의 ‘혼령’을 성령, 성령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이 총회는 억울하게 죽은 ‘영(ghost)’들을 불러들이는 초혼제, 즉 기독교와 샤머니즘 의식을 혼합하는 종교 행사로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기독교의 성령을 무속신앙이 말하는 죽은 자들의 기(氣), 정령, 혼령, 영, 흔히 혼, 귀신이라고 일컫는 동양 사상 또는 무속신앙의 영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성령이 생명의 에너지이며 바람이며 숨이며, 그것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 간의 조화로운 내적 교통이 이루어질 때 왕성해진다고 제시한 것이다.

 

7차 총회가 성령에 대한 개념을 이렇게 변질시킨 것은 갑작스런 변화가 아니라 WCC의 신학적 발전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선교”, 1975년 5차 총회에서 타종교, 불신앙자들과의 대화 제시, 1979년 “살아 있는 신앙인들과 이데올르기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안내서” 등에서 나타나듯이 성령은 더 이상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모든 종교 속에 내재된 종교적 심성이며, 정치신학, 해방신학에서 나타나듯이 자유와 번영과 평등과 평화 등 사회전체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사회적 운동의 힘, 정신, 에너지, 동기(同氣), 일치감과 같은 사회복음적 가치들이다.

 

이와 같은 성령에 대한 이해는 5차 총회 제1분과 3항 “많은 문화들, 그러나 한 분이신 그리스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 밖에서부터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떠한 형태의 혼합주의에도 반대하지만 상호 이해와 실제적인 협력의 수단으로서 타종교인들 및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자들과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확신한다”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종교 간 대화위원회-살아 있는 신앙인들과의 대화분과’ 위원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가 발표한 기도에 관한 논문에서도 이점을 보여주었다. 그가 말하는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아니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 신자들의 기도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처럼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넘어 종교혼합주의를 지향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삼위일체적 성령의 개념을 벗어나 혼합주의적 신개념으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WCC는 성령을 제3세계와 사회의 구조악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이해했으며, 게다가 성령을 정령과 동일시하고 물활론적으로 이해하는 사상도 수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신론 중심이다.

 

WCC는 8차 총회 이후로부터 기독론 중심의 신학체계를 삼위일체, 특히 창조주에 대한 신론 중심으로 옮겼다. 이런 변화는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신학적 변화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전우주와 역사의 보호자 및 부양자라고 하여 불신자와 타종교 전체를 포함하는 보편적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세계의 공통적인 신개념을 초점으로 맞춘 것이다. 이들은 각 종교의 배후에는 궁극적 신적 실재가 있는데, 모든 종교는 같은 신적 실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동등한 가치의 종교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도교, 힌두교 등은 인간이 각각의 문화 조건하에서 신적 실재를 그린 서로 다른 그림이며, 하나님은 모든 종교들 안에 자신을 계시한다고 제시한다. 즉 종교의 다원성 안에 현존 하고 활동하는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구원 활동이 어느 특정대륙, 문화형태, 민족 그룹에 국한되어 있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9차 총회는 신론체계가 범종교적인 창조주 중심의 형태로 발전한다. 8차 총회에서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라는 주제가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의 방향으로 제시되면서 기존에 기독론 중심의 관점이 신론적 관점으로 변형되었다. 정의와 평화와 생명보전은 창세기에서 소개되는 창조적 활동에 초점을 갖게 했으며, 창조론를 강조하면서 우주적 창조와 돌봄에 대한 신적 활동이 더 큰 주제로 부각된 것이다. 그래서 주제 자체도 “하나님”이란 용어가 앞섰으며, 10차 총회에서는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까지 구체화시켰다. 이런 창조에 대한 신론적 이해는 구원의 역사를 제외시킨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적 신론과 같을 수 없다.

 

9차 총회의 부제를 보면 이런 방향이 더욱 선명하다. 1분과-세계를 변화시키소서, 2분과 지구를 변화시키소서, 3분과 사회를 변회시키소서, 4분과 교회를 변화시키소, 5분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소서, 6분과 우리의 증거를 변화시키소 등이다. 이처럼 WCC의 관심이 변형된 것은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던 세계화, 기후변화, 자연재해, 테러 등과 같은 사회적 주제들의 반영이다. 범종교적 창조의 신적 행위만이 이런 무질서한 혼돈과 고통에서 인류를 회복하고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1985년 킨샤사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는 성부가 성자와 성령의 신격적 근원이라고 표현하며, 한 신적인 존재와 교제하는 가운데 일치라고 하면서 삼위일체적 교제를 강조하여 성부 하나님을 전 우주의 창조자라고 했다. 따라서 유대교나 이슬람교나 토속 종교나 모두 한 신을 향한 전 우주적 교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신론 중심의 WCC교리는 성부 중심의 단일신론적 양태론의 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개혁주의 신론

 

개혁주의 신론은 크게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역으로 구분한다. 첫째로 존재에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을 다룬다. 즉 하나님의 전능하심, 거룩하심, 보이지 않는 영(靈)이심, 선하심, 공의로우심, 자비하심, 심판하심, 무한하심, 스스로 존재하심 등을 제시한다. 존재의 특성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본체(本體)는 하나이시며 동시에 삼위(三位)이시다. 즉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 따라서 어느 한 위격만을 분리하거나 강조하는 일신론과 다신론 모두를 거부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역에서는 신적작정과 예정과 창조와 섭리를 다룬다. 신적적정은 하나님께서 창조 전부터 종말 이후까지의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계획하시고 준비하셨으며 선과 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에 있다는 고백이다. 예정은 하나님께서 창조 전 선택 자와 유기자(버린 자)를 구분 하셨으며, 이 선택 자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구원하신다는 구원의 계획이다. 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태초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인자하심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무(無)에서부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6일 동안에 창조하셨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섭리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모두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그리고 섭리의 방법에서는 창조물을 보존하시고, 협력하시고, 통치하시는 3가지를 소개한다. 특히 협력의 방법은 인간의 의지적 자유를 방해하지 않으시고 다스림 속에 허용하시는 형태이다.

 

3. 인간론

 

1) WCC의 인간론

 

WCC의 인간론은 정통 기독교가 제시하는 죄의 본질, 전적부패, 지옥의 심판 등과 같은 죄론를 제거하고 죄를 육신적이며 사회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변형시켰다. 즉 개인의 죄와 비참함을 부정하고 사회적인 부조리, 가난, 질병, 정치적 억압, 남녀불평 등을 죄의 본질로 취급한다. 죄의 본질을 “세계교회협의회는 지역 에큐메니칼기구 구성을 고무하였고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상황 속에 있는 기독교공동체의 실제 삶으로부터 ‘맥락신학’(contextual theologies)의 출현을 지지하였다”라는 고백처럼 사회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구원의 본질도 죄와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경제적인 번영과 치료, 정치적인 자유, 전쟁으로부터의 평화, 남녀평등과 같은 사회적 회복으로 주장한다. 또한 8차 총회 이후로부터는 “만물회복설”(萬物歸新說, apokatastasis)을 수용하면서 자연과 생태계,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관계 단절도 죄의 본질로 추가시켰다. 이런 WCC의 죄론은 크게 2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교”와 “해방신학” 등의 영향으로 죄를 “사회구조악”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정통 기독교가 세상을 죄로 가득찬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던 선교방식을 변형시켰다. 세상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돌보시고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죄를 지적하지 말고 오히려 세상의 발전과 회복을 도와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이룩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죄의 본질은 피조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방해하는 사회구조악과 부조리들로 지적했다.

빈곤, 억압, 불평등, 질병, 소외와 같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가 죄이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무질서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둘째는 “환경신학”, “생명신학”(Eco-Theology), “생태신학” 등의 영향으로 죄를 자연과의 단절로 제시한다. 8차 총회 이후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원칙을 확립시킨 WCC는 죄의 개념을 사회구조악에서 한걸음 더 발전시켜서 자연과의 단절과 무질서로 변형시켰다. WCC는 정통 기독교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라는 말씀을 인간중심적 사고로 해석하여 피조물전체와 지구환경 전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결국 인간은 자연질서와 환경과 모든 피조물의 생명체들과 연합을 이루지 못하여 전 인류가 공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바로 이 위기를 불러일으킨 인간의 자연에 대한 폭력이 죄라고 지적한다.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전 우주와 만물의 일부분이며 각각의 생명들과 연합하여 창조세계의 질서를 보존해 가는 것이 참된 구원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같은 죄론과 구원개념은 불교의 세계관과 차이가 없으며 또한 모든 생물 자체가 영적 존재로 보고 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을 죄로 지적하는 물활론과 범신론,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2) 개혁주의 인간론

 

개혁주의 인간론은 죄론이라고 하기도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육간의 범죄와 타락을 다룬다. 죄론은 타락 전과 후, 구원받은 후의 인간의 모습을 3부분으로 나눈다. 타락 전의 인간존재는 몸과 영혼을 가지며(이분설), 자유의지를 가지고, 지(知), 정(情), 의(意)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다. 그리고 이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을 주시고 먹으면 죽는다는 “행위언약”을 맺으신 상태이다. 행위언약은 일반은총의 축복을 포함한다. 일반은총은 가정, 직장, 사회, 국가 등 문화 전반에 걸쳐서 창조적 하나님의 은혜를 살피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직업소명론과 노동명령을 고백하고 이원론을 거부한다. 타락 후 인간존재는 아담은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먹어서 죄에 빠졌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 되었다. 이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본래의 의(義)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게 되었으며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럽혀졌는데 이것을 전적부패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사탄의 종이 되었으며, 죄 때문에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는 영원형벌설을 강조한다. 따라서 개혁주의에서는 죄의 종류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원죄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자범죄(생활죄)로 나누며, 죄의 정의도 윤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불순종으로 본다.

 

구원받은 후 인간존재는 성령의 은혜와 예수님의 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은혜를 얻으며, 몸과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변한다. 그러나 여전히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어서 죄를 범하지만 성령님이 도와주심으로 계속 성장한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언약”의 상태에 있다. 은혜언약은 구원의 은혜를 제시하는 특별은총을 포함한다. 특별은총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며, 신앙과 교회생활의 축복을 포함한다.

 

4. 기독론

 

1) WCC의 기독론

 

WCC의 기독론은 다양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믿는 신앙 위에 서 있다. … 세계교회협의회는 이같은 진리들을 수용하는 교회들의 교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는 교회들이 그 진들을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형식적으로는 예수님을 고백하면서도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개방했다.

 

1차 총회부터 WCC의 기독론은 초대교회 기독론의 이단들처럼 신성과 인성 중 한 성품에 치우친 모습을 보인다.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고백해 온 이성일인격(二性一人格, two natures, one person)과 언약의 중보자인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부인한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여 교사나 모범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구원의 방도들도 인정한다. WCC는 초기에 예수님의 역사성과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에 치우쳤다.

 

이것은 바르트의 기독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데 1954년 2차 총회에서는 신정통주의자들인 바르트와 위르겐 몰트만 (Jurgen Moltmann)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바르트는 1차 총회 때에도 중요한 신학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2차 총회에서도 총회의 주제 제안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그리스도-세상의 소망”이란 주제를 이끌어 냈다. “그리스도”라는 주제는 바르트의 기독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세상의 소망”이라는 주제는 몰트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1차 총회 2분과 보고서에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인간을 당신과 화해시키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서로를 화해시키는 것이다”라는 언급이나 2차 총회 1분과에서 “화해의 복음”이라고 표현하는 내용은 바르트의 화해론적 기독론인 “화해신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바르트는 기존의 자유주의자들이 “역사적 예수”만을 강조하면서 인성에 초점을 두어 윤리적 모델로 제시하는 것에 반대하여 “신앙적 예수”(kergma)을 제시했다. 신앙적 예수라는 말은 예수님의 실제 역사와 참된 인성을 부정하는 고백이다. 신정통주의자인 불트만은 사실적(historie) 예수와 선포된 예수(kerygma)로, 바르트는 역사적(historie) 예수와 초역사적(Geschichte) 예수로 구분했다. 이들은 역사적 예수는 신화로 취급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재해석된 케리그마적 예수를 강조했다. 즉 예수님의 실제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를 화해케 하신 존재로 내가 현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신앙고백적 예수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WCC의 초기 기독론은 바르트의 영향을 받았다면 후기 기독론은 자유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역사적 예수, 모범적 윤리적 예수, 정치적 사회적 운동가로서의 예수를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이런 기독론은 “바아르 선언문”(Baar Statement 1990)에 잘 나타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증언의 초점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구원에 모아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을 제한 할 수 없다.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하나님을 이웃 종교 신앙인들의 삶 속에서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에 우리를 개방해야 한다. …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인격적 위임에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를 인식한다.” 이 고백에서 보듯이 WCC는 예수를 훌륭하고 모범적인 종교인으로 소개하며, 더 나아가 이런 예수의 활동은 타종교 속에도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바아르 선언문에 영향을 끼친 로마 카톨릭의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장하며, 라이문도 파스카(Raimundo Panikkar)는 보편적 그리스도와 특수한 예수를 나눈다. 또한 폴 니터의 신중심주적 그리스도를 제시했다. 보편적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예수 밖에도 힌두교의 라마, 크리쉬나, 불교의 석가, 이슬람교의 마호메트, 유교의 공자 등 인류를 위해 헌신한 훌륭한 인물들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 선언문에서 알 수 있듯이 WCC는 전통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변형시켰으며, 또한 구원도 예수님을 통한 것이 아니라 예수 외에 수많은 종교적 활동들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종교다원주의적 구원론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같이 WCC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인류의 위대한 모범자로 본다. 성자에 대한 신앙고백은 기독론적 전승사의 발전과정 의 산물로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참 인성을 완전히 실현한 존재로 소개하며 우리도 그분과 같이 하나님의 현존하는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예수님은 속죄의 죄값을 치루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신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새로운 “삶의 모형”을 보여준 모범자로 이해한다. 이들은 성부만이 모든 신성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성자는 성부의 통치를 받고 단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일하시는 사람으로만 취급한다. WCC는 예수의 창조 전 존재하심을 부인하는 역사비평적 방법론을 수용하여 성자를 성부와 동등한 신격으로 보지 않고 성부와 관계하는 면에서만 신적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이런 이들의 이해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의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4-5차 총회에 영향을 끼친 남미 신학자인 “구티에레츠”(G. Gutierrez)를 통해서 소개된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예수님을 사회구조악으로부터 정치투쟁을 한 정치선동가로도 제시한다. 그는 서구열강들이 약소국을 억압하고, 국가의 독재자들이 백성들을 짓밟는 부조리를 죄의 본질로 파악하고 이 죄로부터 정치적인 해방을 이룩하는 것이 구원의 본질로 보았으며, 예수님도 로마의 정치적 폭력과 억압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정치적 선동가요 민중의 지도자로 제시하는 급진주의적 기독론을 언급했다. 이런 기독론은 5차 총회에서 1분과 “많은 문화들 그러나 한 분이신 그리스도”에서 문화적 그리스도로, 제4분과에서는 교회를 “해방의 징표로서의 기독교 공동체”로, 제5분과는 “구조악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는 사회적 투쟁을 그리스도의 명령과 교회의 사명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6개의 분과 보고서의 각 내용이 투쟁을 위한 복음과 그리스도, 교회의 사명으로 모아지고 있다. 결국 WCC의 기독론은 신정통주의의 케리그마적 예수, 자유주의의 윤리적 예수, 급진주의의 사회운동가, 신비주의의 양태론적 기독론 등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2) 개혁주의 기독론

 

개혁주의 기독론은 예수님 존재와 사역으로 구분한다. 예수님의 존재는 칼케돈 신조의 고백을 따라서 그의 이름을 이름 예수님, 그리스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 주님이라고 하며 삼위(三位) 중에 제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요,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또한 동등하신 분이시며,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분이다. 또한 인간의 본성에 속한 모든 본질적인 성질들과 일반적인 연약함들을 아울러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그녀의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두 개의 온전하고, 완전하고, 구별된 본성인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전환이나 혼합이나 혼동됨이 없이, 한 인격 안에서 분리할 수 없게 서로 결합되었다. 그 인격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시되, 한 분 그리스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즉 조직신학에서는 한 인격에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이성일인격(二性一人格)의 예수님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성을 부정했던 아리우스파, 인성을 부정했던 아폴리나리스, 이성이인격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 변형된 제3격을 주장한 유티커스 등과 같은 성격의 모든 기독론을 거부한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는 신분과 직분으로 구분한다. 신분에는 성육신(탄생), 고난 받으심, 죽으심, 장사됨, 지옥에 내려가심(지옥고통 받으심)으로 이루어지는 5개의 낮아지심(비하)과 부활하심, 하늘로 올라가심(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다시 오심(재림)으로 이루어지는 4개의 높아지심(승귀)으로 구분한다. 예수님의 직분에는 3직을 소개한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며 성경을 주시는 선지자 직분을 언급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 목사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두 번째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시는 제사장 직분이다. 이것은 현재 교회의 집사직을 통해서 구제와 섬김과 봉사로 실천된다. 세 번째로 사탄의 권세와 악한 무리들을 십자가로 깨뜨리시고 우리를 해방시키며,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는 왕직이다. 이것은 현재 교회의 장로직분의 권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5. 구원론

 

1) WCC의 구원론

 

WCC는 기독교의 전통적 고백인 죄와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개념을 사회구원론과 만물구원론으로 변형시켰다. 사회구원론은 구원을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와 구조악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와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며 만물구원론은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를 포함하여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지구 전체가 질서를 회복하고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로 언급할 수 있는 사회구조악으로부터의 구원개념은 3차 총회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신학주제를 제시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1952년 빌링엔 국제선교협의회(IMC) 대회에서 화란의 선교신학자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가 “왜 전통적인 선교이이어야만 하는가?”(Why Missions?)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서 소개된 새로운 선교개념이다. 그는 전통적인 선교의 죄, 심판, 중생이라는 개인 영혼 구원의 교회중심적 구조를 비판하고 교회 밖의 세상적 일들도 하나님의 선교적 활동이기 때문에 중생에 치우친 선교가 아니라 경제, 사회, 정치 전체를 중심으로 삼는 사회중심적 선교를 제시했다. 전통적 선교가 “하나님->교회->세상”의 구조라면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세상->교회”의 형식이다. 이것은 선교의 주체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소개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개혁과 발전을 계획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죄로부터의 중생을 복음의 핵심으로 보는 전통적 구원론을 경제적 부흥, 사회적 발전, 정치적 평등의 회복으로 보는 사회복음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죄, 지옥은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억압,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부조리가 죄의 본질로 소개되었다. 따라서 교회본질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주체로써의 교회가 아니라 사회개혁과 발전을 돕는 하나의 보조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통해서 만들어 가는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제시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국제선교협의회”가 3차 총회 때에 WCC에 가입하면서 일어났는데, 그 후 WCC의 선교정책과 신학적 방향이 “하나님의 선교”방식으로 확립되었다.

 

4차 총회 때도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구원의 초점이 개인 영혼을 구원하는 중생중심의 관점에서 사회개혁과 정치적 발전이란 주제로 옮겨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이미 3차 총회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서 시작되었지만 4차 총회에 와서는 “해방신학”을 통해서 더욱 확고하게 발전하고 체계화되었다. 이런 신학적 시도는 북미를 중심으로 백인들의 억압으로부터 흑인들의 해방과 구원을 동일시하는 “흑인신학”을 태동시켰으며, 남성우월주의 사회 속에서는 여성평등을 구원으로 제시하는 “여성신학”을 등장시켰고, 한국을 중심으로 군사독재로부터 백성들의 자유를 구원으로 제시하는 “민중신학”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해방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원의 본질과 예수님을 사회구원자와 정치지도자로 제시하며 “세속화 신학”, “토착화 신학”, “정치신학” 형태로 변질시켰다. WCC는 이 해방신학의 패러다임을 자신들의 신학적 원리로 채택하였다. 따라서 개인영혼보다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사회구성원 전체가 회복되고 발전하여 만물전체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사회복음을 구원의 본질로 제시했다.

 

5차 총회는 4차 총회를 통해서 제시했던 해방신학이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과 결합하여 사회복음과 정치신학을 더욱 발전시켰다. 1973년 방콕 선교대회에서 남미의 해방신학과 병행하여 J. 몰트만(Moltmann)이 주장하였던 구원론은 성경적 구원관과 관계없는, 현세적이고 집단적인 정치-사회적 해방을 WCC의 구원론으로 더욱 확대시켰다. WCC는 해방신학과 희망의 신학원리를 적용하여 구원은 착취를 항거한 경제적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억압을 항거한 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또한 인간 사회의 소외를 항거한 단결을 위한 투쟁으로, 절망을 항거한 희망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현세적이고 총체적인(holistic) 구원 개념은 1980년 제3차 멜버른(Melbourne) ‘세계 선교와 복음화 대회(CWME)’에서 ‘나라가 임하옵시고’ 라는 대회 제목으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멜버른 대회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는 ‘왕국’으로 교체됐고, 이 왕국은 죽은 후 가는 천국이나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되는 미래적 천국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인 억압에서의 해방과 집단적 평화가 실현된 현세적인 이 땅의 왕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시켰다.

 

7차 총회 이후에는 더 극단적인 구원론으로 치우친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바아르선언문에서 “교회 밖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활동하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이해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질문하고서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신앙들’을 가진 민족들의 삶과 종교 전통 속에서 하나님인 성령께서 일해 오셨다는 것을 단호히 그리고 논의의 여지가 없음을 확언한다고 말했다. 즉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기 때문에 WCC는 “교회를 계속해서 분열시키는 어떠한 종류의 개종에도 개탄한다”라는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종교인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전체에게 진리와 사랑을 공평하게 주셨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힘을 사용하여 강제로 구원하지 않으며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신앙의 자유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도구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개종금지선언을 9가지로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행위를 기독교인은 금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첫째, 다른 교회의 교리, 신앙,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구체적으로 대화하려 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비판하거나 비웃는 행위, 성상을 받드는 모습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하는 행위, 마리아와 성인을 향해 우상이라고 비웃거나 죽은자에 대한 기도를 비난하는 행위, 둘째, 자신의 교회와 교단만을 ‘참된 교회’이며, 또 그 가르침만이 ‘참된 신앙’이요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교회의 세례를 부정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행위, … 여덟 번째, 특정한 교회가 주장하는 구원관을 더 우월한 교리라고 주장하는 행위”

 

둘째로 언급할 수 있는 구원론의 변질은 만물구원론(Apokatastasis)의 형태이다. 이런 변화는 7차 총회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총회는 성령으로부터 구원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했다. WCC는 성령을 타종교의 영적 현상들과 혼동하여 성경의 인격적 구원적 사역을 왜곡시켰으며, 더 나아가 우주 만물에 깃들어 있는 에너지, 힘, 생명, 정령의 구원활동으로 언급한다. 따라서 이들은 각 지역의 토속적 미신, 샤머니즘, 또한 죽은 영들을 부르는 초혼제도 받아들인다. 모든 만물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에너지와 영적인 힘을 회복하여 인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려는 범신론적인 구원관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변질은 8차 총회에서 구원론의 성화에 해당되는 기독교 윤리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면서 더 곡해되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윤리를 구원론의 성화론이나 십계명을 중심으로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윤리, 상황윤리, 일반윤리를 수용하여 성화론으로 제시했다. 그 예로 WCC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를 “폭력극복 10년”(the Decade to Overcom Violence:DOV)의 기간으로 정하여 교회의 본질적 방향을 소개했으며, 또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를 확대시켰다. 이 주제는 이미 1983년 6차 총회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이후 1990년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서울대회”를 통해서 “JPIC”라는 주제로 부각되었다. 이 표어는 JPSS(정의롭게 참여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사회)의 확장이기도 하다. “JPIC”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핵심으로 한다. 첫째 “정의로운 경제 질서 확립과 특히 제3세계가 외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받게하기 위하여”, 둘째 “진정한 안보, 국제관계의 비군사화, 비폭력 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셋째 “지구와 천체의 보전과 생명문화의 고양을 위하여”, 넷째 “인종차별의 근절과 인권신장을 위하여”이다.

 

이처럼 WCC는 구원의 본질과 교회의 핵심적 책임을 죄와 중생의 문제로부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개혁과 발전을 이룩하는 것으로 돌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환경과 생태보전이라는 일반사회윤리로 더욱 확대시켜가고 있다. 이런 관심은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장윤재 교수는 2011년 6월 한국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열린 ‘생명평화마당’ 6월 월례 포럼에서 앞으로 부산총회까지 3년과 그 다음 총회까지 7년, 합쳐서 10년간 생명과 정의, 평화가 세계기독교인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경제정의와 생태정의를 하나의 정의로, 즉 하나님의 정의라는 동전의 양면으로 주장하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WCC의 8차 총회에서 나타난 변화는 10차 총회로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들은 10차 총회의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라고 제시한다. 이것은 “JPIC”(정의, 평화, 환경)의 연속성인 것이다. 오늘날 통합측, 기장측 신학교수들을 중심으로 생태신학, 생명신학, 환경신학이라는 신학적 논의가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는 것도 이런 WCC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파괴와 경제발전으로 인한 생태적 위기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비참한 본질적 위기로 이해한 것이며, 따라서 구원의 본질도 사회정의실천와 생명보존과 자연질서와 환경보존에 두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WCC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의 ‘칭의의 교리 공동선언’(The Joint Decla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Justification, 1999년)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두 교파는 칭의 문제에 관한 한 16세기에 있었던 상호 정죄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였고, 또한 2006년에는 세계감리교협의회 제19차 총회에서 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2007년 한국에서 열린 감리교대회에서 감리교회가 동의하였으며, 이런 구원관을 WCC에서도 적극적으로 수납하므로 바야흐로 구원론에 대한 종교다원주의의 길이 열렸다.

 

이와 같이 WCC는 기독교와 종교개혁의 핵심원리인 성경적 “이신칭의”의 구원관을 제거시키며 상대화시켰다. 인간의 공로를 강조하는 로마교회에 대항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sola gatia), 오직 믿음으로 구원(sola fide) 받는 것을 주장한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인데 이제와서 로마교회가 받아들인 칭의 교리를 받아들인 것과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 까지 개방한 것은 기독교만의 유일구원관을 포기한 행위이다. 결국 WCC의 구원론은 인간해방과 혁명을 구원으로 이해하여 사회구원을 제시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우주와 지구전체의 생명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만물구원론에 빠져있는 것이다.

 

2) 개혁주의 구원론

 

개혁주의 구원론은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과 신비적 연합을 완성하는 구원의 방법론이다. 따라서 구원론(Soteriology)이라고도 하며 성령론(Pneumatology)이라고도 한다. 그 결과 성령론을 조직신학에서 오순절파처럼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구원은 성경에서 소개하는 예수님을 성령의 도와주심으로 믿고 의지하며 신뢰 할 때 일어난다. 즉 인간의 행위와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신칭의이다. 구원의 과정은 “소명, 중생, 회개, 신앙,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의 9단계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째는 죄인인 우리를 죄에서 불러내어 구원으로 초대해 주시는 소명이다. 둘째는 성령의 역사로 죄악 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변화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이다. 셋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고 뉘우치는 회개이다. 넷째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의지할 것을 다짐하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하는 신앙(믿음)이다. 다섯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시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는 칭의이다. 여섯째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고 자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보살핌과 도우심을 약속해 주시는 양자이다.

 

일곱째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범죄하는 모든 죄에서 용서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점점 거룩해져 가는 성화의 단계이다. 성화는 완전성화를 거부하고 불완전 성화를 고백하며 성화의 기준은 십계명이다. 즉 십계명을 기독교 윤리의 규범으로 삼는다. 이것은 1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계명 우상숭배 하지 말라,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지 말라, 4계명 주일(안식일)을 지켜라, 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적질 하지 말라, 9계명 거짓말 하지 말라, 10계명 탐욕하지 말라로 구성된다.

 

여덟째는 성도들이 연약하여 쓰러지지 않도록, 악한 세력들에게 공격받지 않도록 영원히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견인이다. 아홉째는 몸과 영혼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영화의 단계이다.

 

6. 교회론

 

1) WCC의 교회론

 

WCC는 교회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운동과 정치발전을 도모하는 시민단체나 투쟁단체, 저항공동체로 변질시켰으며, 교회의 본질도 가시적 일치의 교제만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이들은 창립 초기부터 자신들은 “협의회적 교제(conciliar fellowship)이지 초대형 교회와 타교회를 통제하는 권한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그리고 “‘참교회, 교회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에 관한 성명서: 세계교회협의회 교회론적 의미”라는 결의문을 통해서 WCC가 생각하는 참교회의 의미를 8가지로 제시했지만 혼합주의적 교회관과 가시적 일치의 교회관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결의문 다섯째 항목에서 “세계교회협의회 회원이 된다는 것은 교회일치의 본질에 관한 어떤 특정 교리의 수용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교리적 교회일치를 거부했다.

 

따라서 이들은 교회에 대한 교리적 일치를 이룩할 수 없기 때문에 공통의 교회 직제에 근거한 성례전적 교제(sacramental communion)로, 즉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성만찬적 사귐 속에서 가시적인 일치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즉 BEM문서에서 나타나듯이 교리적 일치를 버리고 다양한 종류의 세례와 성만찬, 교회직분을 수용하여 가시적 일치를 도모하며 더 나아가 이 교회는 세상의 일치와 사랑, 평화를 위한 임시적인 기구로써 궁극적으로는 신자와 불신자 전체와 자연세계까지도 일치를 이루는 가시적 협력체를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1951년 토론토 성명서-“교회, 교회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1951)에서 각 교회·교파 간의 대립·반목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세계교회연합운동을 추구하는 것이며, 또한 자신들의 연합은 교회도 아니고, 교회에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조직도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위해 봉사하고, 교회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며 기도하고 관용과 상호 이해의 정신으로 협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고 언급하지만 1954년 에반스톤 총회와 1961년 뉴델리 총회의 고백에서는 가시적 교회일치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영적이며 신앙고백적인 보편적 교회를 세상의 국가나 정치체제처럼 가시적인 형태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 각 총회의 보고서 가운데 수많은 내용들이 국가와 사회를 향한 정책방향을 설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교회의 본질과 목적을 개인구원과 예배로부터 사회적 구조악을 해결하는 연합체로 방향을 전환시킨 것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통해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6차 총회를 통해서 나타난 “리마문서”(BEM문서)를 통해서 더 확장되었다. 이 문서는 1982년 1월 페루의 리마에서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채택한 세례와 성찬 및 교회 직무에 관한 문헌을 말한다. 이것은 “세례”(Baptism), “성찬”(Eucharist), “교회직제”(Ministry)의 첫 글자를 인용하여 “BEM 문서”라고도 하며, 이 3가지를 통해서 로마카톨릭과 정교회, 성공회, 기독교의 교회론적 일치를 도모하여 다양한 교파의 교회론를 혼합시킨 문서다. 그 내용은 세례에 관한 21개 항목, 성찬에 관한 33개 항목, 교회직무에 관한 5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례에서 나타난 심각한 교회론의 변질은 로마 카톨릭의 7성례를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은사의 표시가 어디서 발견될 수 있느냐에 관하여 견해들이 다양함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행위들이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되어져 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물세례 그 자체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성유(chrism)를 붓는 것, 또는 안수하는 것인데 많은 교회들은 이것을 견신례(confirmation)라고 주장한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 세례는 교회와 세상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원리이기 때문에 우주 전체와 자연생명을 위한 세례로 넓혔다.

 

성찬에 나타나는 변질은 로마 카톨릭의 미사와 화체설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물론 성찬에 대해서 기념설과 상징설도 받아들인다고 표현하면서도 화체설도 성찬의 본질로 받아들여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 신학이 성만찬을 화목제사로써 언급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중보기도로서의 성만찬이 지니는 의미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찬의식에 있어서 성만찬 제정의 말씀, 그리스도의 약속, 그리고 에피클레시스(epiklesis), 즉 성령 기원 사이에는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한다. 에피클레시스는 사제들이 성령이 기독교공동체뿐만 아니라 떡과 포도주라는 성물 모두에 임하시도록 기도하는 행위를 포함한 의미이다. 따라서 봉헌된 성물에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것은 그 의식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며, 성물을 남겨 두는 관습에 관하여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의 관습과 신앙을 존중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즉 BEM문서는 성찬의 떡 자체의 효력을 인정하여 그것을 남겼다 사용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WCC가 성찬을 교회일치의 중요한 원리로 삼는 것은 다양한 교파의 교리적 일치를 쉽게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의식적 일치의 도구로 성찬을 선택했다. 그리고 성찬을 통해서 거룩한 예수님이 인간과 일치를 이루듯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즉 교회가 타종교와 불신자와 함께 하나 될 수 있는 성육화의 작업이 성찬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세속화적 원리를 주장한다. 또한 “성찬은 삶의 모든 측면을 포함한다. 성찬은 온 세상을 대신하여 감사와 봉헌을 드리는 대표적 행위이다. 성만찬의식은 하나님의 한가족 안에서 형제자매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 간의 화해와 동참을 요구하며 사회, 경제, 정치적 삶 속에서 합당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할 때 모든 종류의 부정의, 인종차별, 인종분리주의, 자유의 결핍이 근본적으로 도전받게 된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성찬을 정치, 사회, 경제 전체를 사회구조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원리로 확대 적용시키고 있다. 결국 성찬은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를 이룩하는 중요한 원리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례중심의 교회는 로마 카톨릭과의 일치를 추구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그 예로 WCC는 리마문서를 통해서 로마 카톨릭의 미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미사가 예수님을 단회적 희생을 부정하는 미신적이고 우상숭배적 제사모습이라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로마 카톨릭의 성만찬을 ‘화목제사’이며, 이것은 ‘중보기도로서의 성만찬’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WCC의 성찬은 로마 카톨릭과의 일치를 위해서 또한 자유주의의 세속화 원리의 반영으로써 성례 중심의 교회 일치를 추구한다.

교회정치인 직제의 문제점은 로마 카톨릭과 정교회의 사제직을 수용한 것이다. WCC는 감독, 장로, 집사의 세 직제로 구별하며, 감독을 목사 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감독의 기능은 로마 카톨릭의 교황제도와 같다라고 한다. 한 편에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제시하는 목사, 장로, 집사의 직제를 인정하면서도 이들은 온 교회의 “사도적 전통”(the apostolic tradition of the whole Church)와 “사도적 직제”(apostolic ministry)의 계승을 구분하여 둘 다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도적 직제”는 사도들에 의해 전달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에 교회가 충실하도록 돕는 직제의 사도적 계승(전승)이 있다는 말이며 사도들에 의해 임명된 사역자들과 그들을 뒤이은 교회의 감독들은 사도적 전통이 이같이 전달되도록 지킨 최초의 사람들이라고 제시하여 로마 카톨릭의 교황권과 사제직을 수용하였다. 즉 사도적 신앙의 전승도 인정하지만 로마 교황처럼 우선적인 권한이 있는 감독의 계승도 인정한다는 말이다.

 

BEM문서 외에도 WCC는 신정통주의와 해방신학과 같은 자유주의신학을 수용하여 교회를 하나님의 택한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억압과 부조리에서 해방된 민중들의 연합과 교제로 변질시켰다. 특히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WCC의 교회론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몰트만은 출애굽의 모델을 교회의 본질로 제시하면서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은 민중들의 연합체로 교회를 소개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개혁과 투쟁, 저항을 위한 민중의 모임인 것이다. 오늘날 경제적 빈곤과 독재정치의 억압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이 이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 함께 연합하고 협력하는 공통체를 교회로 본 것이다. 이와 같은 몰트만의 교회관은 “하나님의 선교”를 주장하는 WCC의 교회관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

 

민중의 연합체로서 교회에 대한 의미는 8-9차 총회(2006,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주제: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에 와서 교회윤리와 교회정치에 대한 더 심각한 변질을 시도했다. 그것은 여성안수와 일부다처제, 동성애를 공적으로 지지한 것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성직으로 세울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안수받은 직제가 한 가지 성(性)에 제한되어 있을 경우에 안수받은 직제로서의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 “제4분과 교회를 변화시키소서”의 내용으로서 교회구조에 대한 완전한 변혁을 제시하였다. 즉 변화는 교회와 사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의, 평화, 평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기독교 전통의 인식론적 구조의 변화, 제도적 구조 등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 “포괄적 언어”(inclusive language)를 사용하도록 제시했다. 포괄적 언어란 편협된 남성 중심의 언어를 배제하고 중도적인 언어를 사용하므로써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 균형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2) 개혁주의 교회론

 

개혁주의 교회론은 교회 본질과 예배와 정치로 구분한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에 두지 않고무형교회와 유형교회로 본다.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것은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무형적이다. 그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들었고, 지금 모여들고 있고, 장차 모여들게 되는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보이는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과 그 자녀들의 공동체로써 교회조직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교회는 말씀의 바른 전파, 올바른 성례전 시행, 신실한 권징이라는 참된 교회의 3대 표지를 따라서 구별한다. 참된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 아무도 없다고 고백하며 그렇기 때문에 장로교의 신앙고백은 로마의 교황 역시 어떠한 의미에서든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교황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및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하여 자신을 높이는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임을 지적했다.

 

유형교회의 구성요소는 예배와 정치로 구분한다. 예배는 주일성수와 함께 교회론의 핵심이다. 주일은 주님께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일들을 미리 정돈한 연후에, 그날에 하루 종일 그들 자신의 일과, 그들의 세상적인 일에 대한 말이나 생각, 그리고 오락을 중단하고 거룩하게 안식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바쳐서 공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과 부득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을 해야 한다.

 

교회 예배의 종류는 설교 중심의 예배와 성례 중심의 예배로 나눈다. 설교중심의 예배요소는 찬송(시편찬송), 기도, 신앙고백(사도신경), 헌금, 설교(강해설교/주제설교), 주기도문, 축도, 금식일, 감사일 등이 있으며, 성례는 세례와 성만찬이 있다. 세례에는 물을 사용하여, 평생 1번 받는 유아세례와 성인세례가 있으며, 세례방법은 침례(침수), 적수, 관수 등이 있다. 성찬식은 로마카톨록의 화체설과 루터파의 공재설과 기념설을 거부하고 칼빈주의의 영적임재설을 기본으로 한다. 성찬방법은 떡과 포도주를 모두 사용하며 1년에 자주 시행한다.

교회정치는 감독정치와 회중정치, 장로정치로 구분하는데 개혁주의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치리회 중심의 장로정치를 기본으로 한다. 치리회는 당회(목사/장로), 노회(지역교회), 총회(전국 교회)로 구성하며, 상회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다. 교회 회의는 당회(목사/장로), 제직회(당회/집사), 공동의회(전체 성도들)로 구성한다.

 

7. 종말론

 

1) WCC의 종말론

 

WCC의 종말론은 현재와 내세적 종말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통적 종말론에서 벗어나 현재적 종말에만 초점을 맞춘다. 재림, 육체부활, 심판, 천국과 지옥과 같은 성경적 종말의 의미들을 부정하고 현재 생활의 발전과 경제적 성장, 정치적 자유, 남녀평등, 사회적 질서, 자연생태계의 보존과 연합 등을 천국의 내용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종말론을 현재적이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고백하는 이유는 이미 앞선 기독론과 구원론 등의 교리들을 사회복음적으로 받아들인 것과 일치한다. WCC의 종말론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중심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1) 바르트의 종말관 영향

 

바르트는 1-2차 총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WCC의 교리체계가 신정통주의신학에 기반하도록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바르트는 일반역사(Historie)와 초(참)역사(Geschichte)를 구분하여 성경에서 소개되는 일반적인 역사들을 부정하고 계시의 사건들을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만나는 해석적(kerygma) 역사를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창세기의 타락이나 최후심판, 예수님의 부활 등을 일종의 신화적 이야기로 취급한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 사건의 요소로 간주된 빈 무덤의 역사적 요소도 분명코 계시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런 종말론적 이야기들은 읽는 독자 자신의 신앙의 발전과 삶의 회복을 위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정도에서 실존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제시했다. 즉 그는 기조연설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과 정의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과 화평케 하는 자들과 인간의 대의명분에 대해 희망을 갖고 그것을 위해 싸우며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과 의로움이 거하는 새하늘과 새땅을 찾는 자들-비록 그것을 모르는 체 찾을지라도-모두에게 대해서는 ‘예’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하면서 공평과 정의의 종말적 완성을 촉구했다.

 

이런 바르트의 현재적 종말관은 1차 총회의 3-4분과 보고서에 잘 드러나고 있다. 즉 3분과의 “사회의 무질서, 경제적 조직체와 정치적 조직체, 책임있는 사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교회의 사회적 기능”, 4분과의 “교회와 국제적 무질서”에서 “전쟁, 평화, 사회법, 국제혼란”에 나타난다. 역시 2차 총회 3분과 보고서에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간의 긴장과의 관련 속에 있는 교회,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의 문제점들”, 그리고 4분과 보고서 “세계공동체를 위하여 투쟁하는 기독교인들”에 “평화, 국제세계, 유엔과 세계공동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런 현재적 종말관은 하나님의 선교적 종말관이나 해방신학적 종말관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2) 하나님의 선교와 해방신학의 종말관 영향

 

하나님의 선교와 해방신학은 죄로부터 중생과 복음의 개념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제시하였고 예수님조차도 가난하고 소외되고 핍박받는 자들을 경제적으로 회복하고 정치적으로 해방하여 종말론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사회운동가이며 정치적 지도자로 소개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께서 세상 전체를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서 각각의 모든 분야들을 최고의 발전과 화목과 평화와 질서로 완성해 가는 것을 종말론적인 천국으로 제시한다. 해방신학 역시 정치적 억압에서 민중들 전체가 참된 자유와 해방을 이룩하여 독립적 삶을 완성하는 것이 천국이라고 제시했다. 즉 종말론적으로 완성된 새로운 도시건설, 사회건설과 자유를 확립한 개인이 해방신학이 말하는 천국이다.

 

특히 이런 종말적 사고는 4차 총회 제3분과 “세계경제 및 사회발전”에서 이들은 “우리는 가슴 부푼 미래가 펼쳐질 새로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인류의 하나됨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세계의 가난에 대한 투쟁과 발전 촉진이 정부정책과 경제, 사회 및 법제도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발전을 위한 정치적 수단 강구가 중요해졌다”라고 언급하면서 사회와 정치 분야의 종말적 완성을 복음의 중요한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종말론적 사고는 8차 총회 이후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JPIC문서 확립이후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전 우주와 피조물의 생명과 일치를 이루며 자연과 인간이 완전한 생태적 조화를 이룩하는 생명과 생태보전적인 종말론으로 발전했다. 10차 총회에서도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라고 주제를 선정하여 환경론적이며 생태학적인 종말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을 제시할 예정이다.

 

(3) 몰트만의 종말관 영향

 

몰트만의 신학을 “희망의 신학”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신학적 체계를 “종말론적 희망”(소망)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은 전통적으로 이해한 죄와 타락으로부터 구원의 희망, 장래의 부활과 천국의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가난과 사회적 억압과 부조리를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개혁하는 미래적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정통주의자들의 현재적 종말에 대한 강조는 과거나 내세에 대한 관심이 없고 단지 현재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실존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몰트만은 하나님조차도 지금 존재하나 사실은 아직 존재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변증적 존재로서 제시한다. 따라서 복음서의 내용들도 당시의 억압된 사회환경 속에서 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는 종말론적 희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회상으로 이해했다. 성경에서 소개하는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부정하고 미래의 발전 가능성 속에 열려 있으며 종말적 희망과 자유 속에서 완성되는 신존재를 제시했다. 이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말을 완성하기 위해서 몰트만은 폭력에 의한 혁명도 수용한다. 그의 희망의 신학은 2차 대전 후 세계가 강대국을 중심으로 약소국을 억압하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WCC의 2차 총회와 아주 밀접한 공감을 형성하였다. 즉 자본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정죄하며 영혼구원보다 사회적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WCC의 2차 총회의 세부항목 주제들은 몰트만의 종말론적 신학에 기초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1973년 방콕에서 열린 8차 세계선교대회 “오늘의 구원”-2분과에서는 몰트만의 종말론을 적극 수용하여 구원을 착취와 반대되는 경제적 정의, 억압과 반대되는 인간의 존엄성, 소외와 반대되는 연대, 인간의 삶에 있는 실망과 반대되는 종말론적 투쟁으로 규정하였다.

 

2) 개혁주의 종말론

 

개혁주의의 종말론은 현재적 종말이나 내세적 종말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둘 다 균형 있게 강조하는 “종합적 종말론”이다. 종말론에는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로 구분한다. 개인적 종말에서는 첫째 개인의 죽음을 다룬다. 모든 사람은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로써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축복된 죽음이며, 죽음 이후는 연옥과 같은 제3의 장소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 둘째로 죽은 후 모습은 육체는 무덤에 묻히고,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천국과 지옥에 거한다. 즉 영혼은 현재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최후 심판을 기다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혼수면설, 영혼멸절설 등을 거부한다.

 

우주적 종말은 예수님의 육체 재림으로 시작한다. 신성과 인성을 가진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육체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신다. 그리고 성도들은 육체 부활을 통해 천국의 축복으로, 불신자는 부활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최후 심판 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는 예수님 재림 시에 죽지 않고 즉시 몸이 변화되어 새로운 부활의 몸을 받는다. 최후 심판에서는 예수님께서 심판의 재판관이 되시며, 믿는 자와 불신자를 영원히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신다.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된 곳으로 성도들이 부활의 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며, 지옥은 영원히 죽지 못하면서 배고픔과 굶주림과 질병과 아픔과 괴로움이 가득한 곳이며, 사탄과 악한 영들이 영원히 형벌을 받는 곳이다.

 

종말론에서는 요한계시록의 1,000년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 전천년주의, 후천년주의, 무(無)천년주의로 나눈다. 이 3가지는 모두 인정하지만 7년 대환란과 이중재림, 이중휴거와 문자적 종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세대주의적 천년주의와 종말날짜를 계산하는 시한부 종말론주의도 거부한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WCC와 개혁주의의 교리적 차이는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메이첸(Gresham Machen)이 자유주의와의 논쟁에서 현대 자유주의 종교의 여러 모양은 모두 그 근원을 자연주의에 두고 있으며, 이와 같은 자연주의적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현대적 적수라고 비판한 것처럼WCC도 그 근원은 자연주의적 자유주의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WCC는 성경론에서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로마 카톨릭, 신비주의, 동방교회, 샤머니즘 등의 교리가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적 기초를 일반은총에 두고 특별은총을 무시하는 방법론은 전형적인 자연주의의 특징이기도 한다. 따라서 WCC는 기독교의 본질을 죄와 심판으로부터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 중생에 두지 않고 개인의 변화와 성장, 사회적 구조악의 개혁과 발전, 정치적 억압에서 자유, 남녀평등을 통한 인권강화, 인종차별로부터 해방, 전쟁과 자연재해로부터 평화, 경제적 빈곤에서 부의 분배와 같은 자연적 변화와 발전에 두었다. 그 결과 WCC의 복음은 사회복음, 정치신학, 해방신학으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생명신학, 생태신학을 주장하며 범신론과 물활론으로 변질되었다.

 

이처럼 WCC의 교리적 특징은 혼합주의적 교리구조를 채택하여 모든 자유주의적 교리들을 종합시켰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 자체가 모순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전체 자유주의의 교리들을 비교분석하여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이들은 정통 기독교와 동일한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각각의 신학적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세밀하게 구별하는 것도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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