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의 보편적인 유산 이어 받아야
이차식 목사/덕일교회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보편적인 유산이 무엇인가? 우리가 왜 수 백년 혹은 수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교회들의 결정을 연구하고 알아야 하는가? 차라리 오늘날의 다양한 문제들을 연구하고 규명해서 열심히 전도하고 외형적으로 급성장한 교회의 모델을 찾아서 노력을 하는 것이 훨씬 유익이 되지는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하여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우주적인 교회만 있을 뿐이다.
교회는 설립된 초기부터 수 없는 분쟁을 거듭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몸 된 교회를 언약의 역사가운데 진리로 세상과 구별하여 끊임없이 지켜오고 계신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몸된 교회를 보호하시며 지켜 오신 가운데 어떠한 결정들이 있었으며 그것들이 오늘 우리하고는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본고에서는 교회 확장사나 교리적인 발전사나 유명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개혁교회의 사상과 관련하여 개략적으로 피력하고자 한다.
1. 사람의 본성,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 하나님의 주권
기독교 교회역사에 미친 영향가운데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견해가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요 이슈가 되는 내용은 사람의 본성이 선한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에게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또한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어느 정도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된다. 만일 사람이 구원에 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회개와 씻음과 의롭게 됨과 영화를 누릴 수 있다 고 한다면 하나님의 역할과 주권은 인간의 가능성에 의해서 그만큼 제한이 된다.
2. 펠라기우스(Pelagius)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장하였다.
펠라기우스는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담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존재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중립적인 존재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 이다. 그에 의하면 아담은 선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며, 죽음은 죄의 삯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아담의 마음이 부패하지 않았으며 그가 죄악 된 행동을 떠나기를 원한다면 떠날 수 있었다고 가르쳤다. 아담이 죄를 선택했을 때 그는 오직 자기 자신만 상처를 입었고 아담의 타락은 그 후손과 상관없는 혼자만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원죄를 짊어지지 않으며 아담의 후손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담의 후손들이 죄나 부패한 마음이 없이 태어나고 죄를 모르고 자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담이 죄를 선택하여 악을 행한 결과로 타락하거나 죽게 된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사람들 속에서 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닮아가려고 하는 이것때문에 죄가 그들의 삶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닮아갈 훌륭한 모범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이 세상에서 죄를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고 사람이 스스로 구원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아담이 인류의 총수요 대표자로서 죄를 택하였을 때 모든 사람이 아 담 안에 참여하여 함께 죄인이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을 부인한 것이다.
펠라기우스의 이런 사상은 교회에 널리 퍼졌고 16세기에 에라스무스에 의해 한 번 더 부흥되었다. 또한 이런 펠라기안 이단은 17세기에 알미니우스의 교리를 통해 더 크게 부흥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사상은 아직까지도 대단히 활동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장로교회뿐 아니라 온 세계 교회를 휩쓸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펠라기우스는 로마 제시했고 주후 409년 어거스틴의 반대에 부딪혔다.
3. 어거스틴(Augustine)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장했다.
암브로시우스의 강력한 설교를 통해 회심한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의 교리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창조되지 않았으며 죄를 범하지 않으면 죽지 않았다고 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그와 함께 죄 가운데 타락하여 그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죽게 되었다고 한다. 흑암의 권세 아래에 있는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단으로부터 빼어오지 않으면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로 돌아갈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정하신 자들만 구원을 받는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시지
않으시면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행하시고 구원을 이루시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고 했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의 이단 사상을 반대한 결과는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정죄했고, 어거스틴의 견해는 주후 431년 에베소 총회가 성경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지지했으며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했다. 후에 이 결정은 돌트신경의 신학적 배경이 되었다.
돌트신경은 화란 돌트란 도시에서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28일까지 계속된 총회에서 채택한 교리의 진술인데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 내용 은 이미 4-5세기 무렵에도 주요 이슈였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한 내용인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주님의 교회가 바르게 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았다.
4. 로마 천주교회의 공식 신학
로마 카톨릭교회는 펠라기우스를 정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단사상을 전적으로 거부 하지 않고 펠라기우스 사상의 일부를 그들의 신학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계시 진리로부터 벗어났다.
그들은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어거스틴의 가르침은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협을 모색하게 된 것이 반펠라기우스주의이다. 반펠라기우스주의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병들어서 연약할 뿐이지 자유의지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병든 상태이지만 사람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덕을 자신 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만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유의 지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데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 양자의 노력이 결합하여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누군가 구원하시려고 할지라도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일 때만 그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사람이 병든 상태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도움이 성례를 통하여 오는데 이 성례에 참여하므로써 선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와 주권을 제한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신학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만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후에 마틴 루터나 존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을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보내주셨다. 이들은 성경을 읽고 교부들 의 저서를 연구하다가 인간본성과 하나님 은혜의 필요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로마 카
톨릭 교회의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펠라기우스나 반펠라기우스 주의를 반대하고 어거스틴 주의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개혁자들의 입장이 잘 정리된 것이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도 인간의 본성에 있어서 착함이나 사회에 대해 낙천적인 관점을 가지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거스틴의 사상과 칼빈주의를 떠나 펠라기우스나 반펠라기우스 주의를 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http://blog.naver.com/hanway/1000580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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