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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와 여수 애양원

손양원목사

by 김경호 진실 2014. 3. 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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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공항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달렸습니다

애양원과 손양원 목사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여수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센병을 치료하던 애양병원이 있더군요

마치 섬처럼 느껴지던 곳이었습니다

또 여수의 나병환자들 수용소인 애양원(愛養園) 교회에서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하셨다는 손양원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감복시켰던 분으로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신 분을 가까이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애양원 그 주변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가슴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던 느낌...

아주 평화로운 마을 풍경과 그 주변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먼저 손양원 목사님을 알아보겠습니다

 

손양원 목사(1902.6.3 ~ 1950.9.28)

호 산돌. 경남 함안(咸安) 출생. 1910년 아버지와 함께 그리스도교에 입교,  

 1917년 선교사 맹호은(孟晧恩)에게 세례를 받았다. 1923년 일본 스가모중학교[巢鴨中學校]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29년 경남성경학교(慶南聖經學校)를 졸업, 1934년까지 밀양·울산·부산 등지의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였다.

다시 신학을 지망,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여수의 나병환자들의 수용소인 애양원(愛養園) 교회에 부임하여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시작하였다.

일제강점하인 1940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다가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는데,

8·15광복으로 출옥, 1946년에 목사가 되었다.

다시 애양원 교회를 지원하여 시무하던 중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동인(東印)·동신(東信)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으나,

사태 진압 후 가해자들의 구명(救命)을 탄원하여 원수를 양자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감복시켰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동료와 신도들의 피난 권유를 거절하고,

행동이 부자유한 나환자들과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그의 일대기인 《사랑의 원자탄》은 영화화까지 되었다. 저서에 《산돌 손양원 목사 설교집》이 있다.
[출처] 손양원 | 네이버 지식백과

 

 

 

 

 

 

애양원의 역사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00년이 훨씬 넘은 오래전에 목포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오웬 목사를 치료하기 위해

광주에서 길을 떠났던 의사 포사이트가 길에 쓰러진 한센병 여자 환자를 치료한 데서 시작되었답니다

원래는 광주나병원으로 발전했다가 1925년 현재의 여수 율촌면으로 이전되었고

지금의 애양병원을 이루게 된 것이랍니다

이곳 애양교회 건물과 초기 병원으로 쓰였던 지금의 애양박물관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왠지 카메라를 들고 애양원으로 들어서려니 마음이 미안했습니다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아픈 사람들이 있던 흔적들을 차마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병원 겉모습만 바라보고 서 있다 왔습니다

 

애양 교회 앞에서 바라본 도성마을...

육지 끝에 있는 마을

한센병 치료와 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

골목마다 축사가 있고 마을 전체가 축사를 운영해 살아가는 사람들...

또 하나 눈물나는 것은 대부분 노인들이 바퀴가 달린 전동스쿠터로 이동하며 산다는 것,

두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이곳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일 거라는 생각..

 

여수 애양병원이 한센병 치료를 한다는 말에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었고 병원에서 그 환자를 다 수용할 수 없어

바로 옆 이곳에 집을 지어 살게 했답니다

그 당시에는 독신병사, 여자 병사로 구분해 방 4개짜리 집을 짓고

한 방에 7-8명의 환자들이 같이 생활했는데...

이것이 도성마을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손발이 불편한 한센병 환자들이니 일반인들에 비해

몇 배는 힘들게 닭과 돼지를 키우며 살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저절로 뜨거운 눈물을 삼키게 되는 곳입니다

그분들의 말씀중 더 눈물나는 이야기는

지금은 걱정없이 좋은것이라고 예전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고.,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일반사람은 입구에서 면회 신청을 해야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하니 참....

오래전엔 이곳에 전부 한센병 환자였지만

지금 남아있는 한센병 환자들은 100여분이 되는데

대부분 연세가 많은 분들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런 선입견이 없어져 일반인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하다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면서도

그 행복을 모르고 사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이 치료차 찾아오고 있는 현대식 병원 건물입니다

특히 피부병에 탁월한 치료 효과를 보게 된다고 합니다

 

 

 

 

 

 

 

 

 

 

 

 

 

 

 

 

 

 

 

 

 

 

애양교회가 지금 공사중이더군요..

멀리서 담아본 풍경입니다.

 

애양원교회는

손양원 목사님이 1939년 7월 14일부터 1950년 순교하실 때까지 시무하셨던 곳입니다

 "애양원 예배당"이라는 현판이 적혀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곳 하나 가식이 없고

 오로지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검소한 물품들로 단장돼 있답니다

 

애양교회를 보고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는 언덕으로 향하는데

축사에서 나는 향기로운 냄새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표지판 안내를 따라 걸어보면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싶습니다

항상 위만 바라보면 더 힘들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는 시간..

내가 힘들 때는 아래를 내려다 보는 마음이 있다면

내가 가진 힘겨움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더군요.

 

 

 

 

 

 

 

 

 

 

 

 

 

 

 

 

 

 

 

 

 

 

기념관이 있는 공원을 걸어보면서

바라본 축사가 가득한 마을 풍경은

무척 평화롭습니다

 

축사에서 배출되는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지는 마을이었답니다.

 

 

 

 

 

 

 

 

 

 

 

 

 

손양원 목사 순교 생애

 

1936년 일제에 항거한 순천노회의 원탁 사건으로 애양원교회를 비롯한 순천노회 대부분 목사와 장로들이 검속되었고

그 당시 애양원교회를 담임하던 손양원목사도 구속되었답니다

그는 원탁회 사건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한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광주형무소에서 줄곧 옥중생활을 했는데

1948년 여순사건때 그의 아들 동인과 동신 형제가 남한 내부의 빨치산에 의해 학살되고 말았답니다

그 학살자 안재선을 살려내어 양아들로 삼는 놀라운 신앙을 보여 주었던 분입니다

 

그러던 중 공산군이 남침 중에 교회 장로들이 배를 준비하고 손목사에게 피난을 권유하였으나

 손목사는 교인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 없다고 끝내 거절하였답니다

공산군 점령 이후에도 후퇴 직전 많은 기독교인, 우익인사들과 함께

 여수에서 가까운 미평 과수원에서 1950년 9월 28일 총살당하심으로

 손양원목사는 1950년 6.25사변으로 인해 순교하셨답니다.

 

 

기념관을 돌아보고

삼부자가 누워있는 묘소를 참배하고

그분들의 고귀한 마음을 엿보는 시간

저에겐 무척 의미 있고 고마웠습니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를 기리는 기념관

 

기념관은 시옷(ㅅ)자 형태인데, 손양원 목사의 성씨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동시에 손양원 목사와 그의 두 아들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건물 벽 12면은 이스라엘 12지파와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한다.

6계단은 안식일에 들어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천정의 원뿔은 신자가 하늘을 향해야 함을 상징한다.

머릿돌은 이 기념관이 종교적 의미로 지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애양원은 일 년 내내 꾸준히 순례객들이 찾는 곳으로, 기념관 건립 요청이 쇄도하여

1989년 안용준 목사가 소장하고 있던 손양원 목사의 유품 150여 점을 기반으로 건립 준비에 착수하였다.

1층 전시실에는 예수의 사도들과 손양원 목사 삼부자의 사진 및 손양원 목사의 유품,

‘예수님 생애의 성지’라는 제목의 신윤식의 사진, 한완석의 서예와 김동일의 서예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손양원 목사 삼부자의 생애 사진과 손양원 목사의 옥중 서신,

 한성신학교 자료들 및 많은 고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연평균 3만 명이 넘는 순례객이 방문하고 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수련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평일에는 철야 기도와 각종 세미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출처: 여수 향토 문화 백과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는 풍경...

왠지 마음 따뜻함이 전해져 오던 시간이었습니다.

 

 

 

 

 

 

 

 

 

 

 

 

 

 

 

 

손양원목사 삼부자 묘소..

 

 

 

 

 

 

 

묘소 옆 소나무 아래 놓인 벤치...

누구나 편안하게 받아주는 느낌...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 기념관 뒤

마을 옆으로 호수가 있어 한참이나 서성여 보고.....

 

 

 

 

 

 

 

 

 

 

 

저 멀리 여천공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모락모락 포근한 느낌이었습니다.

 

호수를 바라보고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았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분 손양원 목사님...

자식을 보냈던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으로 아파하면서 사는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마음에 계속 감동이 남았습니다.

 

 

 

 

 

 

 

 

 

 

 

 

 

 

 

 

 

 

 

 

 

 

 

 

 

 

 

 

 

 

종교를 떠나 가슴으로 다가온 절대자에 대한 사랑을 보는 듯한....

마음에 그 간절함을 담아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여수 애양원 하면 손양원 목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포스팅을 하다보니 애양원, 손양원.. 양원이란 이름이 똑같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뜻이 깊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돌아보면서 저 개인적으로 축복의 성지같은 느낌이었다는...

여수에 가시거든 꼭 한번 들려보면 마음에 울림을 담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마음 가득 받아온 새해 선물 같아 행복했습니다

올해는 이런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던 시간이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출처 : 내 영혼이 아름다운 날들...
글쓴이 : 초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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