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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KBS 1TV 성탄특집, "죽음보다 강한 사랑" 손양원 목사 편 방송예정

손양원목사

by 김경호 진실 2014. 3. 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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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TV1225일 성탄 특집으로 다큐멘트리 손양원을 방영하기로 기획하고 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타이틀이다.  

모두가 외면하고 버린 한센씨병을 앓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손양원 목사, 그리고 두 아들을 죽인 학생을 용서하고 양자로 받아들인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오늘날의 현실은 아비가 지식을 죽는데 내어주고 자식이 그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하는(13:12) 사랑이 메마른 황폐한 사막 같은데 이 성탄 다큐멘트리는 한줄기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교회들의 기대가 크다.  

2013 성탄 특집 다큐멘트리 죽음보다 강한 사랑손양원 편은 1225일 저녁 10시부터 1050까지 KBS 1TV에서 방영된다.  

아랜 그 홍보 게시물이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 사랑의 밀알 손양원 -

   
 

 

방송일 : 2013 12 25 성탄 특집 예정

채널 : KBS 1TV

연출 : 권혁만 (기획제작국)

 


사람이 있었다.

한 시대의 구원을 믿었던 한 사람...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독한 이들을 사랑했던 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들을 죽인 원수마저 사랑했던 한 사람...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곳에서

사랑은 빛나는 유산을 남겼다


1. 기획의도

손양원. 이름은 사랑의 상징이다.

나환자(한센병 환자) 아버지 불린 손양원의 삶은 개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의 상처에서 피고름을 빨아내는 번째 그림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 청년을 양자로 삼은 번째 그림.

그리고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 투쟁으로 옥고를 치르고, 인간이 만든 지옥과도 같았던 한국전쟁 중에 신앙인으로 순명(順命)하며 순교자의 길을 번째 그림이 그것이다. 그의 삶은 마치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 스스로 사랑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

 

한국 교회사에 사랑의 성자 불리는 손양원.

 

그가 한센병 환자들에게 보여준 이웃사랑과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고문을 이겨내며 실천한 나라사랑, 그리고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원수 청년까지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아가페 사랑의 실천은 일찍이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 가운데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시인 윤동주의 <십자가> 연상시키는 정결한 순교의 ,

낮고, 가장 고통 많은 곳을 향하여 사랑의 길을 걸었던

손양원의 삶은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 여전히 깊은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풍요의 편으로는 그림자처럼 짙어지는 가난과 소외...

이상 구원을 꿈꾸지 않는 영혼들...

그리하여 사람을, 시대를 구원할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프로그램은 사랑과 구원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성탄절을 맞아

생애를 사랑으로 밀어간 순교자 손양원의 삶과 죽음을 조명한다.

또한 그가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기까지 극한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인간적인 고뇌와 성찰의 흔적들을 통해 우리 시대를 구원할 사랑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를 향하여 자랑할 있는 것이 가지 있다면 바로 한국 교회가 당당히 내세울 있는 신앙과 사랑의 성자 손양원 목사가 있다는 것이다. - 임택진 (목사, 증경 총회장) -

 

당시 나병 환자들은 어려운 시대적 환경 속에 태어난 자체를 저주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손양원은 그런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낮은 자리에서 섬긴 그의 일생은 한국 목회자들의 표상으로 불릴 만하다. - 김학중 (사회복지법인 굿프랜드 이사장) -

 

헐벗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들을 죽인 사람까지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려는 열정을 가졌다. 그의 열정은 한국의 독특한 정치적 현실과 맞물려 더욱 빛을 발하였다.- 차종순 (호남신학대학 총장) -

 

손양원 목사의 삶과 신앙을 통해 원자탄과 같은 위력을 가진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신앙 선배들이 보여준 순교자적 열정을 깊이 음미할 있을 것이다.      - 김재현 (KIATS;한국고등신학연구원장) -

 

   
▲ 오페라 손양원의 한 장면 사진 천헌옥

2. 주요 내용

 

순정했던 사람이 묻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들 있을까요.

일제에 저항해 신사참배를 거부한 독립운동가, 나환자들의 친구,

혹은 억울하게 순교한 아들의 주검 앞에 감사기도를 올린 이해할 없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성자라고들 할까요?

허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나는 단지 구원이 필요했던 시대를 위해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기도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겠으나

사람의 순정한 기도조차 없이

어떻게 시간을 살아낼 있었을까요?

나는 기도하고 기도하며 알의 밀알이 되고 싶었던 사내였습니다.

, 이제 나를 다시 바라봐 주십시오.

손양원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 손양원을 궁금해 합니까?

 

신화가 되어버린 사람의 죽음

 

손양원은 190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과 함께 한센병 환자들을 두고 피난할 없다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아깝다고 입을 모은 마흔여덟 살의 나이였다. 하지만 정작 손양원 자신에겐 이미 번이나 생명의 유예를 받은 후에야 찾아온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손양원과 함께 했던 48년은 고통 속에 확인한 삶의 축복이자 사랑의 시간이었기에 짧기만 했다. 하지만 손양원 자신에게는 일제 강점기와 혼란스런 해방정국,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대를 껴안으며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삶과 죽음을 오늘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행적에 대해 예수의 심장을 가진 성자라고 칭송하며 우리 곁이 아닌 높은 곳에 올려둔 신화화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대의 구원은 무엇으로 오는가?

 

순교자. 한센병 환자의 아버지. 원수를 사랑한 사람. 손양원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숭고하되 무게가 너무 커서 그와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민족주의자라 하는 것도,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그를 반공주의자로 보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어쩌면 바로 부분에서 손양원의 삶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이유, 신화화 과거로 흘러가버린 이유를 찾을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와 반공이라는 안경을 벗고 인간 손양원의 행적과 내면을 응시할 비로소 그가 보여준 사랑의 의미들이 빛을 찾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그는 좌의 편도 우의 편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편에 있었을 뿐이다. 그가 꿈꾸었던 시대의 구원은 이념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는 , 사랑 자체였다.

 

 

   
▲ 여수 애양원 손양원 목사 유적공원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사랑 - 너는 십자가를 지기를 꺼리지 마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고학으로 일본 동경의 스가모 중학교로 유학을 조선의 청년. 그가 지배자의 나라에서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학공부를 이어가는 편으로 순례자로서의 목회를 시작했다. 그렇게 교회보다는 교회라고 이름 부르기조차 민망한 작은 교회와 시골마을들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그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지 분명한 것은 즈음 손양원이 땅에서의 사명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바로 한센병 환자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기도했다.

 

첫째, 사람들이 병으로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얼굴이 무섭게 변해 있으니 대하기 힘듭니다. 무섭지 않게 하시옵소서.

둘째, 환자들의 살이 썩으니 냄새가 심합니다. 냄새를 느끼게 하시옵소서.

셋째, 처음 나병 환자들을 위한 목회를 시작했으니 나병 환자들을 위한 목회로 끝내게 하여주시옵소서.

 

1926 부산 감만동교회에서 처음 한센병 환자들을 대한 이후 그들을 위한 삶을 꿈꾸었던 손양원은 평양신학교 졸업 여수 애양원에 부임한다. 그곳 또한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부모, 형제로부터도 버림받은 사람들. 세상 어디에서도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며 인간대접을 해주는 곳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애물단지 같은 그들이 발로 걸어오거나 가족들이 수레나 지게로 짐짝처럼 운반해와 내려놓고 도망가는 곳이 애양원이었다.


손양원은 감옥에 갇혔던 년의 시간을 제외하고 1950 순교할 때까지 애양원과 함께 했다. 그는 스스로의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의 삶은 그대로 신앙이란 무엇이며, 삶을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순교자가 남긴 빛나는 유산, 사랑

 

   
 

1948 여순사건에서 손양원은 아들을 잃었다. 반란군에게 죽거나 진압군인 군인들에게 죽거나 소용돌이 속에서 좌우의 이념갈등으로 죽거나 당시 사망자만 2,600. 아비규환의 속에서 손양원은 자신의 아들을 총으로 좌익 청년을 위해 구명운동을 벌이고, 마침내 학생의 목숨을 구해 양자로 삼았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손양원의 행동은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조차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상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도 했다.


그리고 2 , 6.25 터지자 손양원은 애양원의 한센병 환자들을 두고 피난을 없다며 교회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연행돼 순교자가 되었다.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집회의 내용은 죽자라는 . 그의 설교는 마치 윤동주 <십자가> 대목을 연상시켰다.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위에 / 조용히 흘리리라 --- 윤동주, 십자가

 

생을 신에 대한, 그리고 세상의 낮고 그늘진 곳에 대한 사랑으로 밀어간 사람. 그리하여 그의 영혼은 마침내 천국에 닿았을까? 그는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구원하는 영혼, 사랑으로 구원하는 시대를 꿈꾸었다. 이제 사람의 삶과 순교로 인해 남겨진 유산을 다시 기억해야 시점이다. 여전히 구원과 사랑이 절실한 세상이므로 더욱.

 

            행복해지기를 원하면서 의를 위하여 고통 당하기를 꺼리는 ,

            땀도 흘리지 않고 눈물도 뿌리지 않고 피도 쏟지 않으면서

            많은 행복을 탐욕적으로 원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많이 만나는 중에

            혹시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자들 첫째가 아닌가 반성해본다.....

 

            가난을 사랑하는 아내로 삼고

            고통을 선생으로 삼고

            자연을 친구로 삼은 생활이 진정 행복하고 기쁜 생활이 아니더냐.....

 

            몫에 메인 십자가 내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기쁘게 지고 나아가리라.

            너는 십자가 지기를 꺼리지 마라.....     

            - 1934 1 4, 손양원의 신앙고백 -

 

3. 방송계획

프로그램 : 성탄특집, 죽음보다 강한 사랑-손양원

방송 일시 : 12. 25 10 ~10 50 

체널 : KBS1 TV

 

사) 산돌손양원목사기념사업회(회장 정주채 목사)는 손양원 목사의 이 아름다운 정신을 계승하고자 함안군, 경상남도, 국가보훈처와 함께 생가를 매입하여 기념관을 세우고자 하고 있다. 이미 생가 매입과 설계는 끝나있고 어느 정도 재정도 확보되었는데 남은 부분은 교회들이 힘을 보태는 것이다. 기념사업회는 성도 한 분이 1만원의 헌금만 한다면 의미있는 귀한 일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호소한다. 우리의 후손에게 자랑스런 신앙의 선배를 소개하는 일에 오늘 우리가 보리떡 한 개만 보태도 된다.

 

   
   
 

출처 : 말랭이 복음
글쓴이 : 말랭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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