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의 말(딤전 3:8)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말은 영혼의 길이지만 또한 영혼의 담이기도 하다. 언어가 있기에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또한 언어 때문에 사람들은 의를 끊
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제법 처세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
들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이중언어를 구사함으
로써 요리조리 피하면서 살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에는 일구이언을 즐기는 언어의 마술사들이 한 두 명이 아니
다. 이런 현상이 사회 전반에 유행하는 까닭은 거짓이 사회의 배후에 검은
세력으로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언어란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현
상이 아니다. 언어 뒤에는 생각이 있고, 생각 뒤에는 인격이 있다. 결국 어
떤 사람이 일구이언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
이며, 그리고 더 깊은 속에는 두 가지 인격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감독에 대한 권면을
마치고 집사에 대한 권면을 시작한다. 감
독과 집사에 대한 권면을 비교해보면 유사한 것들이 적지 않다. 교회를 잘
이끌기 위해서 감독이든 집사든 공통적으로 훌륭한 자질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감독
과 달리 집사에게만 해당하는 몇 가지 특이한 자질을 요구한다.
그 가운데 첫째가 집사는 일구이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
울은 집사의 자질과 관련하여 언어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언어는 영혼의
길이며 또한 영혼의 담이다. 만일에 집사가 말에 성공하면 사람들이 좋은 관
계를 유지할 것이고, 만일에 집사가 말에 실수하면 사람들의 관계가 깨어지
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사의 언어에 따라서 교회가 건강해질 수도 있
고 병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구이언을 가장 단순하게 이해하자면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말하는 것
처럼 완전히 상반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이런 현
상을 가리켜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약 3:10-12).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가운데 대
부분은 이런 상
반된 언행에서 비롯된다.
한 사안을 두고 이 쪽에 가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저쪽에 가서는 저렇게 설
명하거나, 한 사람을 놓고 여기에서는 칭찬의 말을 하고, 저기에서는 악평
의 말을 하는 행위는 성도에게 쓰라린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회복할 수 없는
분란으로 이끈다. 교회의 일군은 이런 언어를 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언어의 배후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일구이언이란 두 가지 생각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을 때 나오는 언어 플레이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으로부터 극단적인 경우로는 정신분열적인
횡설수설이 튀어나온다. 꼭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아니더라도, 두 가지 생각
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는 사람에게서는 평범한 사람이 논리적으로 이해하
기 어려운 궤변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는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 범
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 뜻이 될 수도 있
고 저 뜻이 될 수도 있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고도의 일구이언인 셈이다. 이
런 언어 플레이는 교회의
일군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를 조종하는 가장 은밀한 배후세력은 인격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일구이언이란 엄밀하게 말해서 인격의 이중적인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
다. 이중적인 인격으로부터 일구이언이 나오는 것이다. 인격은 대체로 유익
과 손해에 민감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이 말을 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저 말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인격이 손익에 달려있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리를 고백하기 때문에 목숨까지도 내놓는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일구이언이란 이 세
상에서 유익을 얻기 위하여 신앙고백을 버리면서까지 말을 바꾸는 처세이
다. 이런 치사한 일구이언은 진정한 신앙고백 신자에게는 결단코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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