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109) 딤전 6:6
자족하는 경건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나는 독일에서 십 년을 살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유대인 학살에 큰 관심
을 가지고 있다. 내 주위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점잖고,
단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의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다른 민
족을 가스실에 처넣고 그 사체의 살과 뼈로 비누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유대인 학살 관심 갖게 돼
나는 지금 막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일화를 적은 책을 읽었다. 책장을 덮으
며 무겁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만행을 주저하지 않고 해치우는
학대자들의 악질적이며 비인간적인 모습이 마치 내가 스스로 경험한 것처럼
뇌리에서 연출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
해준 셈이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절명의 공간에서 죽임을 바로 눈앞
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에 책읽기를 끝낸 마음이 또
한 심하게 착잡해
진다. 동료에 대한 증오, 눈치보기, 도둑질, 비열함, 요령
피우기, 냉정함...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이런 행위들이 일상화된다. 어
쩌면 이것들은 모두 수용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인 마지막 행동일
수도 있다.
빵 같지도 않은 빵을 배급받는 수용소의 포로들에게 매일같이 동일한 현상
이 반복된다고 책은 말한다. 서로서로 옆의 사람이 받은 빵이 더 커 보여
내 빵과 네 빵을 바꾸고, 불과 몇 초도 안 되어 교환을 후회하면서 다시 바
꾸기를 여러 차례하고 나서야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난다는 것이다. 자족은
없다.
인간이 자족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은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
은 우리가 자주 기만당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환경이 바뀌면 만족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인간이란 존
재는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자족하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가 없고, 가장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늘 무엇인가 부족하여
불행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을 바꾸지 못한다. 그만큼 인간의 속 깊은 곳에는 웬만한 외부적
인 요인으로 고치기 어려운 불
만이 꽉 웅크리고 있다. 환경의 변화는 이런
내재적인 불만을 파내거나 해소하기에 힘이 딸린다.
관건은 영혼의 변화이다. 영혼에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하나님과의 연결로 변
화가 일어날 때 드디어 철옹성 같던 불만이 깨지고 지극히 사소한 것에도 만
족하며 감사하게 된다. 이것은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로, 육의 세계에
서 영의 세계로, 사람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땅과 육과 사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환경의 악화에도 아랑곳하
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편에도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빌 4:11)
는 사도 바울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만일에 진정으로 영혼에 변화를
겪었으면서도 자족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거짓이다.
그래서 자족에 바탕을 둔 경건이야말로 진정한 경건이다. 바로 앞 절과 비교
해 보면 거짓 경건도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익의 방도가 되어버린 경건이
거짓 경건이다. 이것은 신자가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 제1호이다. 사실 이처
럼 무섭고 악한 것이 다시없다. 거짓 경건은 밤톨의 속살을 모조리 파먹고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겨놓는 벌레 같기 때
문이다. 거짓 경건으로 말미암아
신앙은 속이 텅 빈 강정처럼 되고 만다.
이에 반하여 사도 바울은 자족을 동반하는 경건은 큰 유익이 된다고 말한
다. 비록 여기에 그 유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 내
용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그 유익이란 물질에 묶이지 않
는 것이며, 육체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며, 사람에게 매이지 않는 것이다. 바
꾸어 말하자면 자족을 동반하는 경건의 유익은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
며, 영원을 미리 맛보는 것이며,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
다.
만족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은 그다지 굵지 않다. 초가에 살면서도 만족하는 사
람과 보좌에 앉아서도 불만하는 사람을 볼 때 그 경계선이 항상 환경에 의해
서 그어지는 것이 아님은 틀림없다. 사람됨과 사람 아니 됨은 영혼의 문제,
아니 자족하는 영혼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