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고, 말이 아니면 뱉지 않고, 그리고 일이 아니면 행하지 말라! 이와는 반대로 길이 아니면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로 가서라도 길을 개척해야하고, 자리가 아니면 좋은 의자를 구입해서라고 만들면 되고, 말이 아니면 mp3로 들으면 되고, 그리고 일이 아니면 컴퓨터라도 하면 된다고 현대인들 가운데 혹 이렇게 대구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 의도를 모르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의도를 알면 몰라도 . . .
우리가 신앙의 선배들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이 정말이지 옳은 길을 굳건하게 살아갔다는 것에 있습니다. 죽고 난 후에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꼭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은 왕따를 당해본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모두가 행하지 않는데 굳이 바르게 걸어가려면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힘이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40~50대가 되면 몸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의 생활습관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로 잡기 위해 늦게나마 에어로빅을 하거나 물리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쉽지 않죠. 길을 한 번 잘못 들고 나면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기가 매우 힘듭니다. 하물며 신앙의 길을 잘못 들고 나면 제자리로 들어서려고 할 때 매우 힘들 것입니다. 젊을 때는 모든 것에서부터 회복이 빠르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껏 몸을 혹사합니다. 40~50대에 이르러 힘들어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새로 구입한 자동차를 고속도로 선상에서 마음껏 속력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차를 오랫동안 문제없이 타려면 기계를 내 자신처럼 잘 다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먹고 싶고,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마시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가(可)합니다만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모든 것이 가(可)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보기에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방종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마시고 즐길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우울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려서 행하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분의 향기로 이 시대에 남기셨습니다. 나 자신도 지탱하기 어려운데 무슨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습관 때문에 몸이 불편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건강을 위해 힘써 운동하고 몸을 가꾸는 경우를 새벽이나 주말이 되면 등산하는 여러 분들을 봅니다. 이제 신앙의 삶에서도 역시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겠지만 앞으로 바른 삶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학습하여 바른 길을 걷겠다는 다짐과 결심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바르게 사는 것이 자유스럽고 담대해집니다. 바르고 옳게 사는 것이 왕따겠지만 외롭겠지만 훌륭한 삶입니다. 기도의 불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이 그리울 것입니다. 그 시간에 주님의 위로만으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주님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속삭이는 친구처럼 대화했는데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과의 시간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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