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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보편성과 분리주의 (3)

김재성박사

by 김경호 진실 2014. 11. 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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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편성의 성경적 기초  

 

 

보편성이 구체적으로 가시화 된 것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강림 때부터다 (행 2:11, 17, 21, 39; 10장 11절). 교회의 원리가 되는 보편성의 성경적 기초가 되는 오순절의 성령선물은 교회의 첫 출발에 나타난 보편적인 축복이었다. 오순절은 성령의 보편적인 선물이 인종적으로 지리적으로 차열없이 내려주셨음을 보여준다. 물론, 언약의 하나님께서 미리 예언한 것이요, 약속하신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씨에서 나온 모든 민족을 향한 축복이다. 창세기 12장부터 17장에 이르는 동안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차별이 없이 모두에게 내리셨음을 보여주셨다.

 

구속역사의 흐름을 놓고서 볼 때에, 오순절 날은 바벨탑 사건이 반대로 역전되어서 선포되었다고 본다. 인류를 흩어버리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시 통일하시고자 동일한 말을 주셨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언어로 흩어버린 것은 사람에 대한 심판이었다. 오순절 날은 정 반대의 날이 되었다. 각기 다른 언어이지만 이날 성령이 부어주신 것은 오직 복음 하나 뿐 이었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이나 다 복음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가 통합되었다.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육체위에 부어졌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다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부족의 언어와 모든 민족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반항적인 죄인들의 심령에도 내려주신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 1장8절에 주신 약속의 성취과정이다. 구원역사의 중대사건이 일어났다. 오순절 날에 무려 3천명이 회개하는 일대 사건이다. 최초로, 회개와 성령의 부어짐이 동시에 발생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회개하였다. 돌판이 아니라 마음판에 새겨져서 결코 없어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엄청난 은혜의 날이었다 (고후 3:3).

 

나는 한국교회에 이런 날이 다시 오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부흥 집회처럼 다시 회개하고, 행복을 회복하며 갱신과 회복의 축복을 얻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사람의 심령을 깨끗하게 씻어서 가능해진 일이었기에, 성령의 갱신사역을 기대한다.

 

그러나 곧바로 사도 바울은 유대 전통주의자들의 배타주의자들의 도전에 직면하고 만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따로 모이는 회당이라는 집회장소가 있었다. 사도들은 그곳과 새로운 교회와의 연계성에 주목하였다. 문제는 교회의 보편성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가 보편적이기에 사도행전 15장에서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예루살렘에서 모인 사도들과 장로들의 총회는 유대인들이 구별해 오던 모든 종교적인 계율들을 이방이들에게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하므로서 위대한 복음의 진가를 드러냈다.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하던 바울 사도가 참가한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또한 고난 속에 있던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헌금을 보태준 사건도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적대적인 분리의 장벽이 무너졌다. 그 후로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도 교회의 보편성이 광범위하게 강조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12:13, 갈 3:28, 엡 2:14-16, 골 3:11 등이다.

 

최근 신학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보편성의 질적인 측면이 더욱 더 강조되는 추세이다. 교회의 보편성이란 외적으로 들어나는 차별철폐보다도, 내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연계된 측면이라는 것이다. 즉, 교회 보편성의 근본은 기독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조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구원과 모든 충만함을 항상 피력하면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164회나 사용하였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하나님의 충만함이 들어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나오는 “충만함” (pleroma)이란 그리스도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일컫는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곳으로서, 모든 것들을 지배하시고 채우신다. 교회는 모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가득 찬 곳이다 (엡 3:19). 에베소서 4장 13-15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도 바울이 질적으로 교회의 보편성을 말하는 가를 알게 된다. 그 의미는 바로를 충만을 해석하는데서 나오는데,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진리와 사랑 안에서 점차 장성하여서 모든 성도들은 결국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간다. 교회의 보편성이란 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충만에 연계되어진다는 말이다. 

 

5. 보편성의 질적인 측면

 

교회가 과연 어떤 영적인 특징을 가지는 곳인가? 이미 앞에서 설명한 교회의 통일성과 거룩성의 원리에서처럼, 개신교 진영에서는 교회의 보편성을 은혜의 선물이자 의무조항이 동시에 함께 내포되어있다고 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보편성을 받기도 했고, 동시에 목표로서 이루어나가야 하는 의무도 갖는다. 교회 보편성의 기초는 성령에 의해서, 그리고 말씀에 의해서 영생을 주시기로 택한 자들을 교회에 불러 모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전 인류 가운데서 민족이나 인종이나 성별이나 언어를 초월해서 자신의 백성들을 불러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하나의 믿음, 곧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언약을 제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에게 통일된 신앙을 주시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참되고 신실한 마음이다. 이것은 질적으로 동질의 것이요,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21문답에서 강조되어져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독교의 보편성과 진리는 항상 함께 결부되어져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도 교회의 보편성이 두가지 내용으로 압축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보편적 교회는 모든 나라로부터 부름받은 자들로 구성되어진다. 한가지 진리는 다양한 지역에, 나뉘어진 상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종교라는 묶음에 서로 결합되어있다는 진리이다.”

 

개신교 교회에서는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보편성의 해석을 단호히 거부한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상하관계로 묶여진 행정조직과 교회정치를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심조직에 한가지로 연계되어야만 한다고 로마 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사법적인 해석이라고 본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다는 성경에 위배된다. 로마 가톨릭의 관점에서 교회의 보편성이란 “교황중심주의적인 행정과 정치 조직체라는”의미이며, 그 머리에 위치하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교회가 중심에 있을 뿐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이런 로마 가톨릭의 견해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http://www.c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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