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1세기한국교회진단과대안

김병훈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3. 27. 09:38

본문

21세기 한국 교회의 목회적 환경과 대응: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조직신학, 김병훈)지난 20세기 한 백년 동안 성장과 부흥의 영광을 누려온 한국교회는 이제 21세기 동안에 신앙과 목회의 시련기를 겪게 될 듯하다. 한국교회가 부딪히고 있는 목회적 환경이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첫째, 교회 안에서 발생되는 작은 도덕적, 문화적 흠도 여과 없이 그대로 사회에 전파되는 상황에서, 기독교에 대한 악의적 비방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전도의 기회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제한과 압박을 받고 있다. 둘째, 기독교에 대한 영적 저항이 극심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종교다원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을 빙자한 무신론적 자연주의 등이 기독교를 향해 계속해서 사상적이며 종교적 비판의 날을 더욱 거세게 세울 것이다. 셋째, 기독교 내에서 한편에서는 종교다원주의에 상합하는 신학이 더욱 힘을 얻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적 신학에로의 집중이 약해지면서 문화적응을 강조하는 실용적 경향성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넷째, 소셜네트웍서비스(SNS)의 등장과 발달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화적 변화들은 모든 전통적 권위를 재평가하며 새로운 문화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전통과 관습의 이름으로 행하여 오던 목회적 질서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다섯째,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의 취업의 증가 추세이다. 주중 주간에 모였던 신앙교육, 기도, 봉사, 전도와 친교 등이 점차 줄어들 것이며, 주일에도 모임을 갖기가 전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여섯째, 노인 계층의 증가이다. 수명의 연장과 젊은이들의 교회 출석이 전보다 줄어들면서 고령화의 현상이 교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며 가져야 할 목회적 원리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첫째는 바른신학의 확립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 고백을 온전히 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회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기 위한 것이며, 재창조를 통해 새 예루살렘을 세워가기 위한 것임을 굳게 믿고 대망하는 고백에서 조금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목양의 사역은 이러한 초점에서만 선함과 악함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목사는 성경의 바른 해석과 이에 근거한 바른신학에 대한 선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복음과 관련한 변증을 위하여 인접 학문들에 대해서 얼마간의 지식을 갖추도록 공부를 하여야 할 것임을 뜻한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둘째와 셋째 상황에 대한 대응의 기초이다.둘째는 바른교회이다. 이것은 명목상으로는 바른신학을 말하면서도 설교나 목회 활동 등의 실천적 사역에 있어서는 신학에 따른 고백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임을 말한다. 앞서 말한 넷째 상황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SNS의 발달로 인하여 전통적 권위 질서에 대한 변화의 요구는“왜 그렇게 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이 된다. SNS의 사회적 현상에 따른 변화의 요구는 바른신학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바른신학은 파행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불합리한 권위를 수정함으로써 SNS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바른생활이다. 다종교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일은 복음적 신앙의 당연한 요구이다. 바른신학을 따라 복음의 신앙원리들, 회개, 믿음, 칭의, 성화, 선행, 율법의 기능, 심판과 상급 등을 이해하고 믿었다면, 그리하여 바른교회에서 신학이 드러나는 목회 사역을 받은 경험과 이해가 있다면, 교회의 기관이나 개개의 신자의 활동 속에서 도덕적 열매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바른생활은 앞서 말한 첫 번째 상황에 대한 대응이 된다.이처럼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세 가지 목회이념이 이루어진다면, 앞서 말한 다섯 번째 상황, 곧 여성들의 취업으로 인한 신앙교육 및 봉사 기회의 감소 등에 대한 목회적 대응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주일에 신앙교육을 받기에 좀 더 자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평일에도 개인 스스로 경건의 흐름을 이어할 수 있도록 권면하여 지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에 언급한 노인을 섬기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근래에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직분자들을 60세 또는 65세에 은퇴하도록 하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것은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노령화는 좀 더 많은 활동의 기회가 노인들에게도 주어져야 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회의 직분은 능률의 측면이 아니라 경건의 측면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점이 있으므로, 교회 직분자의 은퇴 시기를 앞당기는 것보다는 복음이 다음 세대에 잘 전수가 되도록 시대의 문화적 변화에 좀 더 민감하도록 세대간의 교류를 원할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http://hpchurch.or.kr/words#신앙칼럼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