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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헤르메니아)

김병훈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3. 2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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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합신 조직신학, 화평교회 담임, 김병훈) 매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인 교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설교를 듣는다. 설교가 없는 예배란 있을 수 없다. 설교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설교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설교가 없어도 충분히 감동어린 느낌과 도전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찬양을 통해서도, 또 기도를 통해서도, 또 간증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항상 설교가 없는 것은 좀 그렇다 할지라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설교가 빠진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설교 대신에 간증의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고백을 나누면서 그것도 커다란 영적인 도전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개진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의 설교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설교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 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교훈을 듣는 시간이며 기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는 우리에게서 하나님께로 올려지거나 우리들끼리 서로 나누는 어떤 시간이 아니다. 설교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갖는다. 설교는 하늘의 교리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 땅으로 내려지는 순간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배 회중에게 그의 선하신 교훈을 내려주시는 은혜의 시간이며 영원한 생명의 복된 양식을 맛보며 누리는 시간이다. 곧 높고 높으며 거룩하고 거룩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앞에 모인 회중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경배하면서 그의 은총의 말씀을 듣는 놀라운 시간이다. 따라서 설교는 어떤 재미있는 재담이나 덕담, 심리 치유 또는 어떤 정치적 견해나 주장들을 그 내용으로 담아 전달하여서는 결코 안 된다. 심지어는 신앙 간증조차도 설교를 대신할 수는 없다. 소위 신앙 간증은 자신의 고백과 경험을 담은 주관적인 것인 반면에, 설교란 매우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즉 설교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가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선포하는 데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구주이시며 그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의 우선적이며 으뜸가는 요소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설교는 바로 이것을 행하였으며, 설교가 어떠한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친다. 베드로의 설교나 바울의 설교나 그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에서 그 내용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은 설교가 객관적이어야 함을 드러내 준다. 그리스도의 객관성을 드러내지 않는 주관적 간증이란 예배 때에 선포될 설교 속에 자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한 고백처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설교와 구분이 되어야 한다. 간증으로서의 역할이 설교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적 객관성을 지켜갈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풀어서 그 교훈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내용으로 담지 않는 노력을 통해서 가능하다. 결국 설교란 성경을 풀어 그 교훈을 전달하며 회중으로 하여금 그 교훈을 듣고 깨달아 순종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선포하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선포하는 것은 단순한 명제를 선포하는 일로 그칠 수가 없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담긴 구속사의 흐름과 성경의 인물과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기독론적인 교훈을 드러내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의 학습이 설교자에게 매우 깊이 요구됨을 뜻한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세의 쓴 글과 시편과 선지서의 글이 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드러내어야 하는 것이 설교자의 책임인 것이다. 한국 교회의 개혁과 부흥을 바란다면, 교회사의 증거들이 말하고 있듯이 강단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스도의 객관성으로 돌아와 성경을 풀어 선포하는 일의 회복, 이것만이 참되며 유일한 개혁과 부흥의 방편이다. 하나님께서는 16세기의 종교개혁, 17세기의 청교도 개혁파들의 신앙, 18세기 요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 등으로 대표되는 대각성 등 교회사의 사건들을 통해 오직 성경을 들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 우리를 개혁하기를 바라시고 우리를 부흥케 하시를 바라신다는 것을 이미 보이시지 않았는가? 설교자는 강단에서 임의로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외에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이미 권한의 남용이며 직무유기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하나님께서 이렇듯이 분명하게 말씀하셨거늘, 오늘 강단에 서 있는 설교자들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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