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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된 우리에게 필요한 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박동근목사

기독론

by 김경호 진실 2015. 3. 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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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2-15문답 해설


“죄인된 우리에게 필요한 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7:26-28


우리는 이제까지 율법의 요구에 불순종하므로, 인간이 어떠한 비참에 처했는지를 계속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비참을 인정한다면, 우리와 같은 비참한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질문할 때가 되었습니다. 먼저 이 질문에 답한다면,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2문으로부터 15문을 통해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할 것입니다.

12문답을 통해 우리가 살필 바는, 구원을 얻을 길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타락한 인간이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12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땅에서, 또한 영원토록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면, 우리가 그 형벌을 피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가 만족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든 다른 이를 통해서든 그것을 완전히 만족시켜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범죄한 죄인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범한 죄의 형벌을 받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둘째, 형벌만 받아 만족이 다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형벌 받기 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요구하신 완전한 순종도 성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만일 죄인이 형벌을 다 받아 내고, 이전에 실패한 순종을 완전히 성취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원의 원리는 순전히 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러한 무한한 형벌과 완전한 순종을 타락한 상태에서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형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무한한 것이기에, 무한히 받아내야 하는 것이며, 타락한 무능한 우리가 결코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가르치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따라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3문답은 이렇게 묻고 고백합니다.

제13문. 하지만 과연 우리가 스스로 이를 보상할 수 있습니까?
답. 절대로 보상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빚을 더 늘려갈 뿐입니다.

13문답은 하나님의 공의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와 그로 말미암은 전적 무능을 가르쳐 줍니다.

타락 후 인간은 순종으로 하나님께 진 빚을 보상할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은 죄는 무한하신 절대자를 향해 지은 죄이며, 완전한 성품을 가지신 하나님을 배반한 죄입니다. 우리는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신 분의 은택을 배반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대상은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무한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이 땅에서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첫째 사망으로 그치지 않고 내세에 이어지는 영원한 형벌인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로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우리가 지게 된 형벌은 무한한 것이어서 유한한 피조물은 영원히 갚아야 할 빚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 죄책과 형벌에 비해 우리의 순종은 미약하기 그지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형벌은 무한한 것인데, 끊임없이 현재에 갚아야 할 형벌이 주어집니다. 우리의 순종은 현재의 빚을 갚을 수 없을뿐더러, 과거와 미래의 채무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절망적인 것은, 우리가 날마다 죄를 짓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죄를 짓기 때문에, 계속 죄책과 형벌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큰 빚을 진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원금을 갚지만, 이자가 불어나 밑 빠진 독에 물붓 듯 절망스런 상태가 되듯, 죄인들은 영원한 형벌을 지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늘 늘어나는 죄만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 후 인간이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 보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종종 “내가 죽어 죄 값을 치르면 될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책으로부터 벗어나려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한하고 이미 더러워져 오염된 존재가 된 우리가 하나님의 형벌을 우리의 어떤 보상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형벌은 영원한 형벌입니다. 영원한 형벌을 감당하는 길은 영원히 형벌을 받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죄책이 무한하기에, 우리의 형벌도 무한합니다.

우리는 최고선, 절대자를 배신하였고 욕보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대상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책과 형벌은 무한한 것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은 무한한 형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했으며, 죄를 짓는 순간 그는 죽음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식할 수도, 하나님의 뜻을 안다 해도 순종하거나 사모하거나 그 뜻을 따라갈 의지의 선함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죄를 인해 근본적으로 죽은 것은 영혼 안에 선한 성향과 능력과 자질이었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들을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허물과 죄로 죽은 자는 선한 것을 따르는 성향 자체가 죽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세상 풍조를 따르고, 사단을 따랐습니다. 분명 우리도 예수님 밖에 있을 때, 육체의 욕심만을 좇아 살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죄로 죽었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명 죄인은 열심히 삽니다. 죄인들은 활동을 합니다. 그들도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삽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은 선한 것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을 죄 된 것을 추구합니다. 바로 그것이 죽어 있다는 증거요, 성경이 말하는 죽음입니다.

예수님 없이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력 없는 자가 보겠다는 것과 같고, 발 없는 자가 걷겠다는 것과 같으며, 헤엄칠 줄 모르는 자가 바다 한 가운데서 뭍으로 나오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죽은 자는 인식도, 감각도, 의지도 없습니다. 육체는 살아있으나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영혼이 죽어 있어 하나님과 영적 일들에 관해 철저히 무능한 것입니다. 믿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것도 인식할 수 없고, 그에게 속한 선한 일들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망의 노예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12문답에서 “다른 이를 통해서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 되니 우리 밖에서 구원을 찾아야 하는데, 누가 우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14문답에서는 누가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14문답에서는 피조물 가운데 우리를 대신할 자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제14문. 우리를 위하여 보상해 줄 수 있는 자를 과연 그저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 중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답. 그런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저지른 죄에 대해 다른 피조물을 벌하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며, 더 나아가서 그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짐을 감당할 수도 없고, 다른 이들을 거기에서 구원해 낼 수도 없습니다.

다른 피조물들 가운데 우리를 대신해 구속을 이루어줄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14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줍니다. 다른 피조물들이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께 저지른 죄는 무한한 기간, 영원한 형벌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를 속량하는 제물은 무한한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피조물들 중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사도 유한한 피조물일 뿐입니다.

둘째, 인간을 대신하려면, 그의 대리자가 되기 위해, 그와 같은 본성을 지닌 것만이 속량의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도 인간이 아니며, 동물도 인간이 아니기에, 그것들이 인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같은 본성을 지닌 인간이 인간을 대신해야 하는데,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여 흠 없는 제물이 될 수 없고, 무한한 형벌을 상쇄시킬 무한한 가치를 지닌 인간도 존재하지 않으니 인간 역시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타락한 인간을 대신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유한하고 무한한 죄책을 지니고 부패한 인간은 영적으로 그야 말로 죽은 자로서,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타인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편 49:7-8).

그러나 이러한 비참한 상황 중에도 구원을 위해 유일한 한 길이 존재합니다. 15문답은 길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죄인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제15문.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중보자와 구원자를 찾아야 합니까?
답. 참 사람이시고, 의로운 분이면서도 모든 피조물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 즉 참 하나님이신 분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어떤 천사도, 사람도, 피조물들도 죄인을 대신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성취와 만족시키므로 죄인을 구원하는 길을 아시고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대리자를 세우셨습니다. 이 대리자를 우리는 중보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중보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위에서 피조물들이 우리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를 살펴봄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성부께서 세우신 중보자는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첫째,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가져야 합니다. 중보자는 인간이어야 합니다.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15:21).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 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롬 8:3).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4).

둘째,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간의 죄책과 영원한 형벌을 상쇄할 만큼 가치 있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한한 가치는 하나님께만 존재하니, 그 제물은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 그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사 23:6).

셋째, 인성을 가진 중보자는 흠 없는 제물이 되셔야 하니, 중보자에겐 죄가 없어야 합니다.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의를 세우기 위해 모든 율법을 흠 없이 만족시킬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죄책을 자기의 의를 전가하시므로 도말하시고, 그의 자녀로 용납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실 구원의 중보자가 단 한 분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히브리서 7:26-28은 중보자의 완전한 자격을 가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성(divine nature)과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을 한 인격 안에(in one person) 가지신 분으로서 구속자의 자격을 모두 가지셨습니다(두 본성의 내위격적 연합). 제2위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여 신-인(God-man)이 되신 것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예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시되, 우리를 대신해 고통 받고, 죽음을 친히 받아내기 위해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2위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여 신성의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큰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영광이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서 온 누리에 비추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직 참 사람이시며, 참 인간으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대속하실 중보자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제2위 성자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 그리스도, 유일한 중보자가 한 분 뿐이시기에, 오직 그 분만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그 분 안에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자 그리스도만을 붙들어 용서와 변화된 삶속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에게 감사로 응답하는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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